자신의 생각을 의심해보자 [하종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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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강의실 조명이 모두 꺼지더니 학생 한명이 촛불을 밝힌 케이크를 손에 받쳐 들고 들어왔고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됐다. 조교가 “올해 칠순이셔서 특별히 축하해드리는 겁니다. 다른 해 생일까지 챙기지는 않습니다”라고 했다. 꽃다발까지 받은 뒤 내가 말했다. “이런 이벤트가 있으면 제가 거의 100% 미리 눈치챕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몰랐습니다. 아, 내가 이제 감이 많이 떨어졌구나, 물러날 때가 되었구나, 그런 자각을 하게 됩니다.” 진실로 고맙다는 인사를 몇마디 덧붙인 뒤 인사말을 마쳤다.
조교가 조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학교 앞 뚜○○○가 오늘 문을 안 열어서요, 하는 수 없이 파○○○○ 케이크를 샀어요.” 나는 “어쩔 수 없지 뭐.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러나 ‘전혀 괜찮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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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몇명이 그날 사진 몇장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짐작하는 바와 같다. “하종강이 파○○○○ 케이크 받으며 웃더라.” “파○○○○ 케이크 받으니까 좋냐?” 비난하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그 학기의 과제물을 그 ‘사건’에 관한 해명을 촉구하는 문건으로 제출한 수강생도 있었다. 공개적 해명을 원하는지, 아니면 개인적 답변을 원하는지 물었더니 “원하는 대로 하시라”고 해서 나름 성실하게 해명했다. 내가 칠순이 되는 해였으니 벌써 2년 전 일이다.
그 회사가 많은 비난을 받고 소비자들 사이에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던 이유는 관련 회사 노동자들이 노동재해로 잇달아 사망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마땅히 비난받을 일을 했고,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사실 그 회사는 오랜 기간 노동조합을 집요하게 탄압했고, 그 강도는 ‘악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심각한 것이었다. 사업부별로 민주노총 조합원의 탈퇴 목표를 정한 뒤 실적을 비교했고, 탈퇴 실적에 따른 관리자 포상을 했고,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배제했고, 조합원에 관한 정보를 다른 계열 노조 관계자에게 제공해 탈퇴 권유에 활용하도록 했다는 것 등이 노동자들의 주장이고, 노조 대표자는 목숨을 건 53일 동안의 단식을 했다. 단식 일기가 매일 인터넷에 올라왔지만 그 일에 관심을 가진 시민이나 언론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룹 회장은 2024년 4월 구속기소되기에 이르렀고, 현재 보석 허가를 받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데, 지난달 100회 1심 공판이 열렸다. 회사의 노조 탄압 행위 역시 노동재해 사망 사고 못지않게 중대한 일이었지만, 부당노동행위를 이유로 한 불매운동 주장에 대한 반응은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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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론조사 기업 한국리서치의 ‘노동조합과 파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 ‘긍정적이다’라고 답한 비율이 13%인 반면, ‘부정적이다’라고 답한 비율이 45%나 됐다. 파업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라고 답한 이가 14%인 반면, ‘부정적이다’라고 답한 이가 52%나 됐다.
노동조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다른 나라와 달리 이렇게 부정적인 이유는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이 특별히 잘못해서라기보다 줄잡아 식민지 40년 뒤에 분단 80년을 겪는 와중에 군사정부 30년의 기간을 거친 산업화 과정에서 노동조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기회를 철저히 봉쇄당한 채 부정적 인식만 확대 재생산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노동조합에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잘못이 노동조합 활동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할 만큼에 이른다고 볼 수는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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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선행을 많이 베풀어 언론에 칭찬이 자자한 경영자 중에도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몰지각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직원에게 선처를 했던 경영자의 기업이 그 공단에서 노동조합 혐오하기로 오래전부터 소문난 사업장이었다든지, 모교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한 출판사 대표가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차마 듣기 민망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자수성가한 기업인일수록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수십년 동안 피땀 흘려 키운 기업에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우선 정서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우니 노동조합을 경영상 파트너로 존중하는 일은 꿈도 꾸기 어렵다. ‘노동조합’ ‘민주노총’ ‘파업’ 등의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왜곡된 산업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주입된 잘못된 시각이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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