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맹 의존·몰입 벗어나 자강 중심 국제연대 고민해야”
한겨레가 주최하는 제17회 아시아미래포럼이 28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주제는 ‘격변의 시대, 리딩국가로 가는 길’. 국제 질서 변동과 인공지능(AI) 전환이 겹치는 격변 속에서 공동체 공존을 위한 한국의 길과 선택을 모색한다. 포럼에 앞서 주요 연사 인터뷰와 기고를 잇달아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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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미중은 올해만 두차례 정상회담을 하며 ‘관계 관리’에 들어갔지만, 첨단산업을 포함한 전략 경쟁이 치열하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굳히고 남북 대화의 문을 닫고 있다. 김흥규 국립외교원장은 1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격변과 혼돈의 시대”라며 “한국이 자강을 중심으로 동맹과 국제 연대를 어떻게 결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응 전략과 관련해선 “아무리 좋은 외교 원칙과 구상을 세워도 국내 정치가 분열되면 외교가 힘을 쓰기 어렵다”며 국내 합의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주대 교수로 미중 관계와 국제 외교안보를 연구하다 지난 8월 국립외교원장에 임명된 그는 제17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흔들리는 국제질서, 한국의 생존전략’ 주제로 기조 연설을 한다. 인터뷰는 박민희 정치부 통일외교팀 선임기자가 진행했다.

—지난 9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봤나. 미중은 ‘건설적 전략적 안정 관계’라는 일종의 시간 벌기 휴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까.
“이번 회담을 보면서 미-중의 일시 휴전 또는 관리 모드가 더 오래가겠다고 생각했다. 미중이 서로의 취약성을 인정한 것 같고, 두 나라 모두 지금은 전면전이나 서로 배제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결과가 예상되지만, 국제 외교의 주도권은 트럼프가 계속 쥘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민심이 더 이반되지 않도록 경제 안정이 필요하다. 미-이란 전쟁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중국이 이란을 노골적으로 지원하면 미국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이 이란 비핵화와 자유 항행 원칙을 지지한 것은 상당한 선물이었다. 트럼프가 중국과 경쟁을 극대화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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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2027년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네 번째 연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도 미중 관계 안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대만 문제에서도 미국의 협력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은 세계 경제 파국보다 관리 가능한 수준의 점진적 갈등을 선호한다.”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할 노력과 비용을 더 이상 부담하지 않으려 한다. 중국이 세계질서 유지자 역할을 대신 할까, 세계가 혼란스러운 다극체제의 수십년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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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전략경쟁을 포함해 지금은 격변과 혼돈의 시대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했던 ‘인터레그넘 시대’, 즉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 질서가 들어서지 않은 중간 시기다. 어느 누구도 세계적 공공재에 책임지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미국은 그 책임에서 후퇴하고 있고, 중국은 그 책임을 대신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 국제적으로 큰 혼돈 상태가 지속될 것이고, 미중 이외의 국가들은 엄청난 위기 의식과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미중 첨단기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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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이 세계 정치·경제를 주도하는 힘과 역량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절묘한 한 방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인데, 그것을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를 결합한 능력이라고 본 것 같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미국이, 휴머노이드는 중국이 앞선다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 미국이 급하다. 이를 위해 미국은 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반도체·배터리·철강 산업 등을 키워야 한다. 이를 제공할 수 있는 한국에 대한 압박이 강해질 것이다. 한미 간에는 인공지능 역량 강화 협력을 추진하고, 위험 관리 협력 채널을 제도화해야 한다. 중국과는 인공지능 역량 협력이 어렵겠지만, 인공지능 리스크를 줄이는 대화가 필요하다.”

—최근 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가 미국이 제1도련선(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을 잇는 선)에서 물러나 제2도련선(일본 오가사와라제도-괌-사이판~파푸아뉴기니를 잇는 가상의 경계선)으로 후퇴해야하며, 이를 위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대만에 대해선 불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나.
“미국의 현실적인 군사력 투사 능력(군사력을 멀리 보내는 능력)을 냉정하게 반영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비용을 늘리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따져 보면, 미국이 지금처럼 군사력을 투사할 수는 없다. 제1도련선은 이미 방어 불능이고, 제2도련선도 방어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드론과 무인 능력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중국이고, 그런 중국과 미국의 싸움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실제로 전쟁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전술핵을 사용하는 방안에 대한 고려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현재 군수 능력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나마 미국이 유리한 것은 아직 핵 전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군사 전략의 변화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미국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면 제2도련선 밖으로 물러나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이 실제로 이런 전략을 실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다만 한국은 그런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에는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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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내에도 외교안보 라인에서 고립주의, 우선주의, 전통적 동맹 유지 등 여러 세력들이 경합하고 있다.
“백악관에는 적어도 다섯 갈래 세력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제이디 밴스 부통령 같은 고립주의 그룹이다. 둘째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차관처럼 미국의 힘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중국 대응에 집중하자는 그룹이다. 셋째는 외곽의 정치적 포퓰리스트들, 넷째는 재무부 장관 같은 경제적 이익 중심 인사들이다. 다섯째는 트럼프 자신인데, 미국 우선주의와 거래 중심으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큰 그림은 갖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정 안 되면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중심으로 갈 수 있지만, 거대한 미국이 그렇게 빠르게 (세계 질서에서) 후퇴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부수는 동맹으로부터 자금과 산업 능력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 미국 사회를 빠르게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가 활용되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을 벌고, 미중 관계를 관리하고, 동맹들을 최대한 압박해 원하는 것을 받아내려는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한국에도 호르무즈 파병 요구를 포함해 더 많은 압박을 할 것이라는 게 나의 예측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동맹들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면서 캐나다 총리 등을 중심으로 중견국 연대 구상이 나온다. 한국에 의미 있는 길이 될까
“우리에겐 여전히 한미동맹이 근간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동맹에 의존하고 몰입하는 구조는 벗어나야 한다. 국력 요소를 자강의 역량, 동맹, 국제 연대의 결합이라고 한다면, 이젠 자강을 중심에 두고 동맹과 국제 연대의 결합을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연대의 비중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다. 그 비중은 때로는 0이 될 수도, 30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을 혼돈의 시기라고 하는 이유는 조건과 과정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미중 관계도 예측하기 어렵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연대는 결국 필요하다.”
—중국이 올해 ‘한반도 질서 관리자’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한중은 서로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것 같다. 서로의 체질 차이를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두 나라는 지금도 갈등할 여지가 많고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솔직하게 서로 인정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그럼에도 공통분모가 있다. 하나는 한국과 중국이 적대적 관계로 들어서면 안 된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한반도의 불안정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주변 강대국과는 절대 적대적 관계로 돌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표방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지정학적 무게다. 적어도 그런 원칙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중국과 필요하다. 중국과는 협력해 북한 도발 같은 문제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동북아의 불안을 확대하는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함께 관리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어떤 장기적 정책을 취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 때는 민족 중심의 공조 정책, 윤석열 정부 때는 동맹 중심의 압박 정책을 썼다. 두 전략이 실패한 자리에 국익 중심 실용주의가 들어왔다고 본다. 현 정부는 공존을 먼저 전제하고 단계적으로 상호 도움이 되는 발전을 추구하며, 비핵화를 통해 통일을 지향한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북한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남북 간 직접적인 양자 접근은 어렵고, 다자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또 비정치·비군사적인 방식으로 공존을 위한 신뢰를 쌓고 접촉을 늘려 다음 단계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지혜, 인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정권마다 극과 극을 오가는 외교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외교를 잘 하려면 먼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한다. 한국은 자원이 없는 통상국가이고 분단국가다. 이미 중상위 선진국 혹은 중강국 규모라 할 수 있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다. 이를 결합하면 우리가 지향할 바가 나온다. 통상국가이니 공급망을 중시하고 안정성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쟁이나 충돌보다 화해와 소통, 대화, 안정과 평화를 중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지정학적 숙명을 갖고 있다. 지정학에서 말하는 ‘림랜드’,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맞닿는 지역이다. 지정학적 격동이나 강대국 간 세력 전이, 패권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안보가 취약해지고, 외부 영향력이 국내 정치에 깊이 침투해 국론 분열로 이어지곤 했다. 주변 강대국의 압력과 개입이 심해지고 국내에서도 그들과 연결된 세력들이 분열해 싸우면서 위기에 대응할 역량 자체를 스스로 소진시키는 상황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다. 아무리 좋은 원칙과 구상을 세워도 국내 정치가 불안정하고 극심하게 분열되면, 100의 능력을 가졌다 해도 외교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국가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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