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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6, 2026

[창간 80주년 특집]사주·정신과·보톡스, 이토록 불안한 쇼핑···왜 지금이 ‘춘추정병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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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이용해 지난 10년간 SNS·커뮤니티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16년엔 ‘헬조선’이 급증했다. 이후에는 2018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2022년 ‘갓생’(God+인생), 2024년 ‘누칼협/알빠노’가 차례로 급증했다. 2026년에는 ‘정병’(정신병의 줄이말)이 모든 유행어를 압도했다. 일러스트|클로드

경향신문이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이용해 지난 10년간 SNS·커뮤니티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16년엔 ‘헬조선’이 급증했다. 이후에는 2018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2022년 ‘갓생’(God+인생), 2024년 ‘누칼협/알빠노’가 차례로 급증했다. 2026년에는 ‘정병’(정신병의 줄이말)이 모든 유행어를 압도했다. 일러스트|클로드

불안은 불현듯 찾아온다. 지나온 오늘과 내일 할 일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 때(윤혜원·26·가명), 20대 끝자락에 월급 220만원+α를 받아 들었을 때(이정호·29·가명), 인스타그램 속 누군가보다 유독 튀어나온 것 같은 나의 광대뼈가 떠오를 때(윤유진·24), 회사에서 종일 긴장과 피곤 사이 외줄을 탈 때(이은세·25)…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74명은 불안을 말했다. 삶에 스며든 배경음이 돼버린 불안은 초조, 소진, 무망함 같은 말들로 전해진다. 청년들은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려운 이 감정에 ‘정병’(정신병의 줄임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외모정병, 몸무게정병, 중안부정병, 학벌정병, 시골정병, 정병연애… 사회가 ‘정답’이라며 잣대를 들이대는 곳마다 정병이 생긴다. ‘나의 병’으로 압축된 불안은 청년 스스로 관리하고 해결해야 할 약점이 된다. 청년들은 ‘불안 방어’ 처방전을 찾아 헤맨다.

불안의 값

문준혁(26)은 “불안을 조절하려고” 심리상담을 찾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지방대를 다닌 그는 ‘주류에서 벗어났다’는 감각에 오래 짓눌렸다. 당시 상담으로 쓴 돈은 적어도 400만원. 1년 반 동안 일주일에 한 번, 회당 5만원씩 들었다. 김예은(26·가명)은 “살이 빠질수록 대우가 좋아지다 보니” 6개월간 토마토만 먹고 20㎏을 뺐다. 머리카락이 빠질 즈음 항우울제를 먹기 시작했다. 심리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받아본 적 있는 청년은 100명 중 43명에 달했다.

값비싼 처방이 불안을 무조건 막아주는 것은 아니다. 강지혜(26·익명)는 최근 ‘나이정병’이 왔다. 5년째 복용하던 정신과 약도 막지 못했다. 입시, 취업, 결혼 등 인생의 ‘퀘스트’(임무)를 제때 이루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하는 사회가 정병을 부추겼다. 어쩌면 약 처방을 받아야 할 건 사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고, 강지혜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병원보다 문턱이 낮은 처방은 유행이 됐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휩쓴 사주와 점이다. 11년째 배달 일을 하는 박진우(33·가명)는 보험을 못 들고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로 정신과 상담을 포기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신당에 간다. “불안한 삶에 방법을 알려주는 느낌”에 마음이 편해진다.

청년 100명 중 사주나 신점을 본 이들은 69명에 달한다. 청년들이 사주를 통해 사려는 건 예언 같은 게 아니다. “확신”과 “용기” “마음의 평화”다. 그래서 좋은 것만 골라 믿는다.‘9 to 11’ 독서실에 있지만 한 시간이라도 쉬면 불안해지는 삼수생 한소율(20·가명)은 사주에 적힌 ‘좋은 말’ 하나에 안정감이 든다. “나 결국 성공하는구나” 싶다. 온라인 사주 사이트, 챗GPT를 이용하면 단돈 1000원 이하로 불안을 달래는 데 필요한 말을 골라 살 수도 있다.

요즘 “외모정병 최고치”라는 윤유진은 불안을 떨칠 처방을 보톡스에서 찾는다. ‘착실히 살면 더 나은 미래가 올까’란 질문에 “아뇨!”라고 딱 잘라 말한 그에게 외모는 몇 안 되는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다. “더 열심히 한다고 더 받는 것도 아닌”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그의 월급은 노력한다고 쉽게 바꿀 수 없다. 반면, 사각턱은 10만원이면 바뀐다.

사각턱, 자갈턱, 침샘, 이마, 입꼬리, 콧볼, 미간, 측두… 윤유진은 사회가 정한 ‘예쁨’이 잘게 구분한 얼굴 곳곳에 보톡스를 맞았다. 피부과에만 가면 “뭔가에 씐 것처럼” 돈을 쓴다. 비교적 직관적인 ‘불안 처방’ 같지만, 정작 만족한 건 사각턱뿐이었다. 그마저도 6개월이면 효과가 사라진다. 어느 날 갑자기 동안 공식으로 자리 잡은 ‘짧은 중안부’처럼 예쁨의 기준이 어떻게 또 바뀔지 모른다.

[창간 80주년 특집]사주·정신과·보톡스, 이토록 불안한 쇼핑···왜 지금이 ‘춘추정병시대’인가

사라진 헬조선

불안은 사회가 정한 정답에서 나만 벗어나 있다는 감각이다. 그러나 ‘정병’이 되는 순간 사회적 맥락은 제거된다. 10년간 유행어 변천을 보면 사회 구조를 향하던 조명이 개인을 비추는 쪽으로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향신문은 2016년 청년을 주제로 한 기획 기사 <부들부들 청년>을 보도했다. 당시 청년들은 좁은 취업문, 주거난 등에 분노했다. 그즈음 등장한 유행어는 ‘헬조선’과 ‘흙수저’였다. 자조가 섞였지만 바탕에는 구조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그러나 ‘탈조선’은 실패했고,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에너지는 ‘일단 나라도 잘살아보자’는 개인 동력으로 치환됐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이용해 지난 10년간 SNS·커뮤니티 언급량을 분석한 결과 2016년 급증한 ‘헬조선’ ‘탈조선’은 이듬해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8년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욜로’(YOLO·인생은 한 번뿐)가, 2022년엔 ‘갓생’(God+인생) 언급량이 차례로 정점을 찍었다. 구조가 어떻든 개인의 내면과 능력을 갈고닦는 법이 중요해졌다.

2024년 언급량이 대폭 늘어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함?)과 ‘알빠노’(내 알 바 아니다)는 한발 더 나아갔다. 구조 얘기를 꺼내는 사람을 남 탓한다고 힐난했다. 불안은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 됐다. 그 끝에 도착한 유행어가 2026년 ‘정병’이다. 병명으로 진단해야 하는 불안에는 도무지 구조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나 구조를 생략한 처방전은 불안을 없애지 못한다. 청년은 진통제로 노력을 끌어쓴다. 윤혜원은 수면제를 먹고 사주를 봐도 “쫓기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내비게이션으로 좌표 찍듯 대학원 과제, 자기계발, 아르바이트 등을 쳐내며 산다. 방향이 없더라도 일단 노력하는 동안에는 불안이 잠잠해진다.

최후의 수단도 있다. 불안을 감지하는 스위치를 끄는 법이다. 청년들은 이를 ‘절전 모드’라고 부른다. “빨리 닳지 않으려고”(최윤정·35·가명)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취준생 이채원(24·가명)도 최대한 감정 없이 지내려 한다. 불안이 끼어들 틈 없게 오전 3시간, 오후 5시간씩 필기전형을 공부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앱으로 공부 시간도 잰다. 그의 감정 스위치가 원치 않게 켜지는 건 딴짓할 때 드는 죄책감이다. 생존하기 위해 하루를 ‘절전 모드’로 보내는 청년은 5명 중 1명(19명)에 달했다.

온갖 ‘정병’이 난무하는 춘추정병시대. 청년은 처방을 받고, 감정 스위치를 꺼버린 채 오늘을 넘긴다. 세상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SNS·커뮤니티 언급량으로 보는 유행어 변천사 (자료: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 2015년1월~2026년8월 기준)

헬조선에서 춘추정병시대로

SNS·커뮤니티 언급량으로 보는 유행어 변천사 (자료: 소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 2015년1월~2026년8월 기준)

창간기획팀
이효상·배재흥·김희진·김나현·권도현·손버들·유미정·이 령·엄희삼·김덕기·이수민
학생기자
강윤희·서지수·서혜원·이예은·임채민·전수현·정수연·조수민씨 및 고려대 크림슨 저널리즘랩과 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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