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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eptember 20, 2026

갈라서야 함께 살 수 있다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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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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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부부 상담에서는 이따금 뜻밖의 처방이 나온다. 갈라서라,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관계가 붙든다고 구제되지는 않고, 어떤 관계는 놓아줄 때 비로소 숨을 쉰다는 깨달음이다. 불편한 비유이지만, 2026년 한반도의 처지를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정확히 담고 있다. 북한은 이미 갈라섰다. 2023년 이래 북한은 한국을 별개의 주권 국가로 대하고 있다. 정작 눈여겨볼 것은 공식 호칭이다. 북은 오래 쓰던 ‘남조선’을 버리고 남을 ‘대한민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상대를 제 이름으로 부르는 쪽은 이미 북이고, 남은 여태 ‘북한’을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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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을 공식 국호인 ‘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일은 그 체제를 승인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이르는 일이다. 어떤 국가를 인정하는 것과 그 정권을 좋게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실, 이미 여러 논자가 일깨웠듯, 한국과 ‘조선’이 맺어온 수많은 공식 문서에서 서로의 공식 국호를 나란히 적는 일은 드문 것이 아니라 흔하다. 이름 하나가 충성의 시금석이 되고, 자명한 것을 입에 올리는 순간 불온을 의심받는 풍경이야말로, 냉전이 우리 안에 제도가 아니라 사고방식으로 살아남았음을 증언한다. 그 점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문제 제기는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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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국의 헌법이 앞을 막는다. 영토를 규정한 제3조, 평화통일을 의무로 못 박은 제4조, 그 위에 얹힌 국가보안법이 맞물려 ‘조선’ 정부를 ‘반국가단체’로 붙들어 둔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국과 ‘조선’은 역전되어 있다. ‘조선’은 2026년 3월 헌법에 영토 조항을 신설해 제 영역을 한국과의 경계까지로 스스로 한정한 반면에 한국은 여태 한반도 전체를 제 영토로 선언한 조문을 끌어안고 있다. 게다가 개헌의 필요성은 모두가 알면서도, 상대 진영에 승리를 안기지 않으려는 한국의 양극화된 국내 정치가 근본적 개혁을 붙들어 맨다.

바로 여기에 정부 방식의 맹점이 있다. 한 부처가 한 낱말로 선언한다고 패러다임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준비 없이 쟁점을 광장에 던지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정쟁의 탄약이 되기에 십상이다. 이름을 바꾸고 헌법을 고치는 일은 위에서 하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더디고 고통스럽더라도 시민이 함께 통과해야 하는 민주적 합의의 과정을 요구한다.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조차 없으면 ‘조선’과 맺은 무엇도 다음 정권에서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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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으레 독일이 소환된다. 그러나 독일의 길은 더는 본보기가 되지 못한다. 두 분단이 같은 세계사적 균열에서 비롯한 것은 사실이나, 그 결은 처음부터 상이하고, 또한 그 조건은 최근 더욱 달라졌다. 가해국의 분단과 피해국의 분단이 같을 수 없고, 무엇보다 독일인은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눈 전쟁을 겪지 않았다. 두 독일은 끝까지 서로를 온전한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채 ‘특수 관계’를 고집했다. 그것은 독일의 조건에서 나온 선택이었을 뿐, 조건이 전혀 다른 동아시아가 따를 공식이 아니다. 냉전이 저물던 1989년의 세계는 신냉전이 짙어가는 오늘의 세계가 아니다. 한마디로, 푸틴은 고르바초프가 아니고, 트럼프는 레이건이나 부시도 아니다.

물론 국호는 시작일 뿐이다. 정작 어려운 일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하나의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두개의 낡은 시선을 함께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는 남과 북을 언젠가 반드시 하나 될 한 핏줄로 보는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무조건 무찔러야 할 악으로 보는 시선이다. 두 시선 모두 평화로는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인도, 개헌도, ‘조선’이라는 이름도 ‘조선’에 건네는 선물이 아니다. 지속 가능하고 냉정한 공존을 진정 원한다면, 그것은 한국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갈라서기로 합의한 부부만이 비로소 좋은 벗으로 남을 수 있는 경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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