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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September 15, 2026

한반도 평화 위한 여성들의 ‘DMZ 횡단’에 결정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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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2019년 9월 디엠지 평화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크리스틴 안 제공
고인이 2019년 9월 디엠지 평화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크리스틴 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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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횡단 참석 가능한지 묻자
한 시간도 채 안 돼 “참여하겠다”
박근혜 한국정부 승인 얻는 데도
고인 경험과 폭넓은 인맥이 큰 도움
2019년 다시 한국 찾아 평화포럼 연설

“정전 73년 지난 한국전쟁 끝내는 데
여성이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죠”

지난 2일 미국 여성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활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뉴욕 자택에서 9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다수는 글로리아가 여성 인권을 위해 평생 바친 헌신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에 남긴 그의 유산을 아는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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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백만명에게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내가 그를 부르던 별명은 ‘슈퍼(Super)’였다. 영웅이라는 뜻의 ‘슈퍼’라기보다는, 수많은 문을 열 수 있는 거대한 열쇠 꾸러미를 가진 건물 관리인(superintendent)의 ‘슈퍼’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이 평생 쌓아온 정치적 영향력을 실제로 사용했고, 그 수많은 열쇠 중 상당수를 한반도 평화를 위해 썼다.

글로리아와 나의 인연은 2011년 제주 강정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이 한국을 넘어 국외 평화·여성운동계에서도 주목받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반도 평화운동을 해온 나와 글로리아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는 강정마을 문제를 계기로 처음 전화 통화를 했고, 곧바로 마음이 통했다. 그는 막 강정마을을 다녀온 참이었고, 나는 멀리서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뉴욕타임스에 잇달아 기고문을 실어 강정 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훗날 내가 딸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글로리아는 평화와 여성의 섬인 제주의 정신이 내 뱃속에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딸의 이름을 ‘제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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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엔 글로리아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전쟁 종식과 남북 화해를 촉구하기 위해 세계 각국 여성 지도자들이 비무장지대(DMZ)를 가로지르는 ‘위민 크로스 디엠지’ 평화행진에 참여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참여할게요. 내 고교 동창들이 그 전쟁에 참전했거든요.” 그는 한국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마침표를 찍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 했다.

그가 참여하기로 한 뒤, 나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을 해온 박혜정과 함께 2014년 2월 평양을 방문했다. 우리는 현지에서 비무장지대 횡단 문제를 협의해 여성 평화 심포지엄과 비무장지대 횡단에 대한 북한 당국의 승인을 받아냈다. 이후 30명 규모의 국제 여성 대표단을 꾸리고 남북한에서 함께할 협력 단체와 관계자들을 연결하는 등 1년간의 준비 작업이 이어졌고, 글로리아는 거의 모든 과정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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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려운 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끌던 한국 정부의 승인을 얻는 것이었다. 북한과의 어떤 형태의 접촉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수반하던 때였다. 이때 글로리아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과 폭넓은 인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당시 유엔 사무부총장이었던 얀 엘리아손에게 연락해 “국제 여성 대표단이 남북의 여성과 민중을 잇는 인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비무장지대 횡단을 허가해 달라”는 서한을 박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엘리아손은 이를 “흥미롭고, 심지어 장관을 이룰 만한 프로젝트”라고 평가했지만 박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2015 위민 크로스 디엠지 행사 때 모습. 앞줄 왼쪽 넷째가 고인, 다섯째가 필자.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15 위민 크로스 디엠지 행사 때 모습. 앞줄 왼쪽 넷째가 고인, 다섯째가 필자.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반도 분단 70년이 다가오자 우리는 언론을 통한 돌파구를 모색했다. 고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도움으로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을 확보한 뒤, 2015년 3월11일 유엔출입기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무장지대 횡단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리아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이 평화의 물꼬를 트고 이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분단과 적대를 넘어 상대편 여성들과 관계를 맺기가 더 쉽습니다.”

베이징에서 평양, 개성, 도라산역, 서울로 이어진 행진 내내 글로리아는 우리의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였다. 우리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의 메시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다. 횡단 전날 밤, 글로리아는 나를 안아주며 다른 사안에는 결코 뜻을 모으지 못하던 남·북·미 3국 정부로부터 이 횡단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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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의 참여는 비무장지대 횡단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그는 미국 의회와 유엔에서 연설했다. 2017년과 2024년, 훗날 모두 탄핵되고 수감된 박근혜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정부가 내가 한국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했을 때도 가장 먼저 전화를 돌리고 나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한 사람이 글로리아였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평양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 글로리아는 우리를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 될 예정이던 맷 포틴저와 연결해줬다. 글로리아는 포틴저가 어렸을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포틴저는 한국전쟁 미군 포로·실종자 가족을 비롯한 평화운동 인사들을 면담하고, 남북한을 포함한 40여개국 여성들이 서명한 편지를 전달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였다.

2019년 글로리아와 나는 다시 한국을 방문했고, 그는 비무장지대 평화포럼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뉴욕 타운하우스로 평화운동 활동가들을 초대했고, 성명서를 검토했으며, 기금을 모으고 중요한 순간마다 전화를 걸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이 여성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소녀상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크리스틴 안 제공
고인이 여성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소녀상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있다. 크리스틴 안 제공

우리의 우정은 단순한 사회운동을 넘어섰다. 글로리아는 내가 개인적인 해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힘이 되어줬다. 출장을 떠나며 어린 딸 제주를 집에 두고 가는 것이 미안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 울면서 전화를 걸었을 때, 글로리아는 제주가 나를 자신의 꿈을 좇는 엄마로 기억할 것이며, 아빠가 요리하고 청소하며 자신을 돌보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것 역시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다독였다. 결혼 생활을 정리하며 힘들어할 때도, 훗날 제주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건강한 관계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해줬다.

고인이 크리스틴 안과 그의 딸 제주와 함께 찍었다. 크리스틴 안 제공
고인이 크리스틴 안과 그의 딸 제주와 함께 찍었다. 크리스틴 안 제공

대부분의 부고 기사는 미국 페미니즘 운동을 일군 글로리아의 업적을 다룰 것이며, 이는 마땅한 일이다. 한반도와 관련된 그의 행적을 언급하는 기사는 극소수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글로리아 자신은 비무장지대 횡단을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2019년 그는 이렇게 썼다. “전세계 30인의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남북한 사이의 비무장지대를 평화롭게 걸었던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 중 하나였다.”

정전협정 체결 73년이 지났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로리아는 여성들이 이 전쟁을 끝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그 일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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