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먹일지 결정해야 하는 어머니를 생각해 달라”···가자 활동가들이 전한 ‘삶과 죽음’ 사이의 비상사태
가자에서 하루하루 살아남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 팔레스타인 활동가 살람가 자문한 뒤 말했다. “먹을 것을 차자 아이들에게 먹이고, 깨끗한 물을 구하고, 상처가 감염되지 않게 하고, 바람의 기세가 달라질 때(날씨가 나빠질 때) 텐트에서 잠드는 겁니다.” 살람(가명)은 이매진피스와 팔레스타인대화모임이 지난 7일 오후 7시 개최한 ‘가자 학살 3주년 ’추모·연대 - 경청과 대화의 밤, 가자의 시간’에 나와 가자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이날 ‘줌’ 대화는 서울 구로구 두레생협연합회에서 2시간 30분 이어졌다.
살람이 이날 강조한 건 사망자 수 같은 각종 수치 뒤로 빠져 잘 드러나지 않는 개별의 삶과 죽음, 고통이다. “숫자 뒤에 수년째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0일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휴전이 발효됐지만, 이스라엘은 공습, 포격 등을 멈추지 않았다. 살람은 “휴전은 회복 같은 말도, 정상 같은 말도 아니다. 공습은 계속됐다. 기반시설은 여전히 파괴된 상태”라며 이렇게 말했다. “비상사태가 이어집니다. 이전보다 눈에 덜 띄게 됐을 뿐입니다.”
‘비상사태’는 비유가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유엔아동기금(UNICEF) 등이 참여하는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2025년 5월 가자지구 전체를 ‘비상사태’ 단계로 분류했다.
가자 활동가들이 2025년 4번의 홍수를 겪은 가자 난민캠프에 담요를 전달하고 있다. 이매진피스와 개척자들은 100여 명(단체 포함)의 겨울나기 기금 연대로 500장의 담요를 마련했다. 이매진피스 제공
살람이 비상사태에 놓은 사람들을 생활을 전했다. “가족들은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임시 캠프로, 다시 다른 임시 거처로 내몰렸습니다. 그곳마저 안전하지 않습니다. 침수되면 또 떠나야 했습니다. 강제이주는 일시적인 일이 아닙니다. 임시 캠프와 비공식 피란민 거처에서 사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전기도 극도로 부족하다. 음식과 의약품을 냉장 보관하기 어렵다. 폭우와 강풍, 침수에 취약한 텐트 한 동에서 6~10명의 사람들이 사생활도 없이 지낸다. “이런 상황은 여성과 소녀들에게 특히 굴욕적입니다. 씻거나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에 가는 일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어 말했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날 대화에 참석한 다른 활동가 스무드(가명)도 “깨끗한 물과 비누에 접근하지 못해 질병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른바 휴전” 이후 가자에 구호 식량 등이 들어오면서 한때 극심했던 기아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살람은 “하지만 지금도 대략 4가구 가운데 1가구가 하루 한 끼로 버틴다. 음식을 즐기기보다는 남은 양을 확인한다”고 했다.
물 문제도 여전하다. 5가구 중 4가구 이상이 물 부족을 겪는다. 10곳 중 7곳은 식수와 조리에 필요한, 비상상황을 기준으로 한 최소 권장량의 물도 확보하지 못한다. “여성과 아이들은 흔히 먼 거리를 걸어가 몇 시간씩 줄을 서고, 무거운 물통을 가족에게 가져온다”고 했다. 위생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수와 오수 처리시설은 광범위하게 파괴됐다. 쓰레기가 거처 주변에 쌓이면서 설치류와 해충이 들끓는다”고 했다.
가자 사람들은 구호물자만 기다리는 건 아니다. 살람이 속한 단체는 물을 직접 운반한다. 비공식 피란민 거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한다. 겨울을 대비해 텐트도 보강한다. 농경지 회복 작업도 진행한다. 자원을 공정하게 나누는 걸 원칙으로 삼아 일들을 진행하다.
이조차 어렵다. 이스라엘의 봉쇄와 공격 때문이다. 살람은 “구호물자 수송과 구호 활동가들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 직원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사무실도 파괴됐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이 우리 단체 활동을 중단시켰다”고 했다. 그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정의와 인류애를 믿는 팔레스타인 구호 활동가들이 지역 사회에서 매일 활동한다”고 전했다.
‘가자 학살 3주년 추모·연대 - 경청과 대화의 밤, 가자의 시간’ 참석자들이 지난 7일 밤 서울 구로구 두레생협연합회에서 팔레스타인 참석자들 측의 통계 분석 화면을 보고 있다. 이매진피스 제공
스무드는 가자지구 보건부와 팔레스타인 통신(WAFA),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등이 분석한 여러 통계를 전했다. 식량과 위생, 농업에 관한 각종 수치엔 ‘마비’, ‘악화’, ‘미작동’ ‘오염’, ‘고립’ ‘부족’ ‘감소’ ‘불충’ ‘질환’ ‘감염’ ‘통제’ 같은 죽음과 고통에 관한 단어들이 거듭 나왔다.
지난 9월 27일 기준 전쟁 이후 사망자는 7만4018명, 그중 어린이는 2만1638명이다. 부상자 17만5079명 중 어린이가 4만4143명이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은 4만7019명. 스무드는 “휴전 이후에도 1317명이 죽었다”고 했다. 스무드의 아들도 전쟁 중 사망했다. 지난 9월 17일이 기일이었다. 그는 이날 대화 때 담담하게 아들의 죽음을 전했다.
살람은 전쟁 때문에 헤어진 아내와 자녀를 3년 넘게 못 만나고 있다. 그가 다시 ‘숫자 너머’에 관해 말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지면 대량학살과 굶주림, 파괴, 강제이주 등 인도주의적 참상의 규모에 압도되곤 한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너무 크고, 어려우며, 복잡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거리는 규모만 보게 하고, 그 현실에서 사는 사람들 삶은 보지 못하게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자기 아이들 중 누구를 먹일지 결정해야 하는 어머니를, 빈 물통 두 개를 들고 물을 구하러 한 시간 동안 걸어가는 아버지를, 배터리가 4%밖에 남지 않은 전화기로 숙제를 하려는 10대 아이를, 더는 학교 구실을 못하는 학교에서 40명의 낯선 사람들과 화장실을 함께 쓰며 그저 견디는 할머니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는 “견뎌내는 것 자체가 조용한 저항의 한 형태”라고 했다.
살람은 “구호물자가 들어오고 필요한 자원이 확보되면 상황은 개선될 수 있다”면서도 “세계가 다시 외면하는 순간, 그 진전은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전쟁 해결과 학살 중단 같은 거창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바라는 건 물 공급, 화장실 건설, 대피소 수리, 식량 배급에 대한 지원과 응원이었다. “그저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가자를 이야기할 때 단지 통계보단 물 위기, 하루 한 끼만 먹는 사람들, 겨울을 견디지 못하는 텐트에서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가족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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