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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September 28, 2026

쓰러진 말뚝이라도 세우자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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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휴전 직후 비무장지대에 한국군이 군사분계선 표지판을 세우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한국전쟁 휴전 직후 비무장지대에 한국군이 군사분계선 표지판을 세우고 있다. 국방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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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 통일외교팀장

지난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 이후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고를 두고 ‘북한군이 휴전선 철조망을 뚫고 내려와 지뢰를 묻었다’고 주장한다.

군사분계선과 휴전선은 같은 말이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문에 등장하는 공식용어다. 사람들은 군사분계선보다 짧고 쉬운 휴전선이란 단어를 자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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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휴전선에는 철조망이 없다. 정전협정은 서쪽 경기 파주 임진강변부터 동쪽 강원 고성 동해안까지 모두 1292개의 표지판(말뚝)을 세워두고 이 말뚝을 쭉 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했다. 군사분계선은 철책으로 연결된 선이 아니라 정전협정문에 첨부된 지도 위에 수작업으로 그린 선으로만 표시됐다. 당시 유엔군사령부(유엔사)와 북한·중국은 1:50000 지도에 군사분계선을 그렸는데, 군사분계선 선 너비가 땅에선 50m가량이라 군사분계선 위치가 남북으로 수십미터가량 오차가 생겼다.

유엔사와 북한군은 정확한 경계를 표시하려고 지상에 말뚝 1292개를 박고 말뚝 사이의 가상의 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았다. 이후 말뚝 관리가 군사분계선 관리의 핵심이 됐다. 이 말뚝 가운데 696개는 유엔군이, 596개는 북한군이 관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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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 관리는 1973년 이후 중단됐다. 1973년 3월7일 육군 제3사단 장병 7명이 강원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훼손된 654번 말뚝 교체 작업을 하는데 북한군이 갑자기 사격해 사상자 3명이 발생했다. 당시 박정인 3사단장은 105㎜와 155㎜ 곡사포로 도발 원점인 북한군 최전방 초소(GP)를 포격해 초토화시켰다.

이 사건 이후 유엔군사령관은 군사분계선 표지판 수리를 전면 금지시켰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50년 넘게 방치된 1292개의 말뚝은 낡고 녹슬고 홍수에 떠내려가고 181개만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뚝들이 넘어지고 사라지면서 말뚝 사이를 잇는 군사분계선도 끊어지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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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이 사라진 비무장지대에는 한국군, 유엔사, 북한군이 설정한 3개의 군사분계선이 존재한다. 한국군은 군사분계선 말뚝을 우선 적용하되, 말뚝 식별이 어려울 경우 군사지도 군사분계선 좌표선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 2004년 미국 국가지리공간정보국(NGA)과 함께 원본 지도상 군사분계선을 실제 지형과 일치시키는 작업을 추진해 현재 지도에 적용 중이다. 유엔사는 2014~2016년 말뚝 위치를 위성항법장치(GPS) 좌표로 변환했다. 이 결과 한국군과 유엔사의 군사분계선 지도가 다르게 됐다.

말뚝이 무너진 뒤 북한군 군사분계선도 한국군과 달라졌다. 한국군과 유엔사는 지피에스 위성항법체계를 사용하지만 북한은 러시아 위성항법체계(글로나스)를 사용해, 위성항법장치 좌표로도 군사분계선을 확인하기 어렵게 됐다.

정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군사분계선은 ‘국경선’이 아니라 전쟁의 일시적 중단과 양쪽 군대 분리를 위해 설정된 군사적 통제선이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라고 선포하고 2024년 10월 이후 군사분계선을 ‘남부국경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군사분계선을 남부국경선으로 규정함에 따라 북한군이 지뢰 매설, 철책 설치 등 ‘국경 요새화’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군사분계선 침범과 한국군의 경고방송, 경고사격이 지속되면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과 각종 사건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21일 발생한 비무장지대 지뢰 추정 폭발 사고는 육군 25사단 장병들이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의심되는 지뢰를 확인하려고 수색로를 개척하다 일어났다. 이 사고의 바탕에는 군사분계선 위치에 대한 남북의 인식 차이가 깔려 있다. 남북, 유엔사가 비무장지대 사고와 우발적 충돌을 막으려면 군사분계선 기준선 설정 논의를 빨리 해야 한다. 쓰러진 말뚝이라도 다시 세우기로 합의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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