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 젊은 연출가 강훈구 “연극은 메시지 아닌 질문이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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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메시지로 환원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질문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연출가 겸 극작가 강훈구(36)가 가장 경계하는 건 작품을 특정 메시지로 단정하거나 인물의 삶을 섣불리 결론 내리는 일이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강훈구는 자신의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묻는 말에 “연극으로 어떤 결론을 보여주는 건 오만이라 생각한다”며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최대한 솔직하게 내가 알게 된 것을 말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2017년 ‘미인도 위작 논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제2학예실에서 벌어진 일들’로 데뷔한 이후 극작과 연출, 번역과 각색을 넘나들며 30여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데뷔 직후 극단 공놀이클럽을 창립해 영어덜트(10대 후반~20대 초반) 연극을 만들어온 그는 지난해 가족과 청년의 불안을 다룬 창작극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으로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도 수상했다. 최근 서울시극단과 ‘에너미’, 국립극장과 ‘옹옹옹’ 등을 협업하며 활동 영역을 더욱 넓히고 있다. 마포문화재단과 함께 3년째 젊은 창작자의 작품 개발을 돕는 ‘안 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도 운영한다.

그에게 연극은 과연 무엇인지 물었다. “연극의 기본 형식도 모르고 시작해서 지금도 ‘연극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없어요.” 뜻밖의 답변이다.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활동 등에 관심을 가졌지만, 계속할 깜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4학년 때 다들 졸업할 준비를 하는데 저는 대학 연극 동아리로 돌아가 희곡을 쓰기 시작했죠. 그 일이 더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만든 게 2016년 쓴 ‘미인도 위작 논란…’이다.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을 엮어,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현실을 다뤘다. 작품은 서울연극센터의 극작가 재교육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2017년 무대에 올리면서 엉겁결에 데뷔했다. 그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대학원에서 공부했지만, 현장에 먼저 발을 들인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라는 놀림도 받았다. 하지만 낯선 이력은 자유로운 창작의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연극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이 작품에 가장 잘 맞는 놀이 방식이 뭘까를 찾으면서 작업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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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그의 작품엔 대부분 ‘형식 파괴’와 ‘청소년극’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이런 평가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청소년극’으로 규정하는 시각엔 거부감을 드러냈다. “청소년극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오염됐어요. ‘햄릿’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해리 포터’처럼 젊은 인물의 이야기도 인간과 사회에 관한 큰 질문을 담을 수 있어요. 젊은 사람의 삶도 큰 이야기잖아요.”

그가 영어덜트 연극 창작을 지향하는 극단 공놀이클럽을 만든 것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당시 연극계의 위계적 선후배 관계와 도제식 시스템이 낯설었고요. 저는 (기타) 코드 네마디로도 시작할 수 있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공놀이 같은 연극을 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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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와 배우를 발굴하고 연출가와 연결하는 ‘안 착한 청소년극 페스티벌’을 계속 이어가는 것도 혼자만의 실험에 머물지 않으려는 시도다. 3년차인 지난 17일 공개 오디션에는 작가 180명, 배우 660명이 지원했다. 그는 보수를 받지 않고, 창작지원금 일부를 페스티벌에 보탠다. “고전이나 외국 작가의 창작물을 주로 무대에 올리는 연극판에서 우리 극단만으로는 분위기를 바꾸기 어렵겠더라고요. 젊은 사람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공연화할 기회가 없는 이들과 함께 그런 판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쉴 새 없이 작품을 만들고 연출하며, 창작자를 연결하는 생활은 녹록지 않다. 요즘 자신을 “빚쟁이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실에 머물고 새벽에 글을 쓰기도 한다. 다작하는 이유는 단순히 많은 작품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연출가도 계속 연습해야 근육이 살아나는 운동선수와 같아요. 1년에 한두 작품만 하면 9개월은 연출을 하지 않는 셈이잖아요. 최근 작품을 많이 하면서 대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배우의 말과 움직임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정립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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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분명하다. 주인공이 되기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집 밖으로 나가 타인과 만나는 이야기다. ‘폰팔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미미의 미미한 연애’를 그는 ‘방문판매 3부작’이라고 부른다. 모두 방문판매 여성의 이야기다. “자기 집, 방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들이 좋은 작품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될 수도 있지만 카프카 수준으로 쓰든가 해야겠죠. 방문판매는 결국 밖으로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는 이야기잖아요. 저는 나와 남이 만났을 때 생기는 일을 보여주는 게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작품 자체보다 유명 배우 캐스팅이 흥행을 좌우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현실을 가장 우려했다. “대학로 공연 포스터를 보면 작품보다 배우들 사진의 조합으로만 이뤄져 있어요. 아이피(IP·지식재산권)가 중요하지 않은 거죠. 그러면 창작자들이 발붙일 데가 없어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그 역시 이런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좀 더 솔직해지고 싶어서 연극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면 저도 현실 때문에 솔직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겨요. 요즘 더 열심히 만들고, 더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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