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생애설계] 퇴직 후에는 ‘돈 안되는 직업’을 갖자

퇴직을 앞둔 사람들에게 노후 준비를 물으면 대부분 돈 이야기를 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활비는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한다. 가능하면 일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성공적인 노후 준비의 목표처럼 여겨진다.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나면 꿈꾸는 노후의 모습도 대체로 비슷하다. 부부가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고, 골프를 치며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상 중 하나가 ‘부부 교사’나 ‘부부 공무원’이다. 두 사람이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으니 얼마나 마음 편한 노후일까 싶다.
얼마 전 퇴직한 부부 교사를 상담한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연금을 받으니 경제적인 걱정은 없었다. 퇴직 후 1년 동안은 그동안 못 다녔던 여행을 다니며 신나게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여행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일상이 무료해졌다. 다시 일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없었고, 노인일자리나 돌봄 관련 일자리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결국 다시 여행이나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여행을 갈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왜 여행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좋아한다면 스스로를 ‘여행작가’라고 부르면 어떨까.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현지 사람을 만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여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것이다.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내거나 많은 독자를 확보할 필요는 없다. 수입이 없어도 괜찮다. 단순히 여행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업을 흔히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직업이 돈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퇴직 후에야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관계, 인정, 정체성이다. 그런데 퇴직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흔들린다. 수입이 사라짐과 동시에 사람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경험도 사라진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퇴직 후 우연히 지인을 만났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 중 하나가 “요즘 뭐 하세요?”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놀아요. 평생 일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죠”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대답이 궁색해지기도 한다. 가정에서도 “집에서 놀지만 말고 단돈 100만 원이라도 벌어오면 좋잖아요”라는 배우자의 재촉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퇴직 후에는 역설적으로 ‘돈 안 되는 직업’을 하나쯤 가져보자고 권하고 싶다. 직업 선택의 기준에서 ‘돈’을 빼면 선택지가 훨씬 많아진다.
물론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연금이나 자산 등 경제적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생계가 급한 사람에게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오랫동안 해왔던 일,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모두 직업의 후보가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도, 채용공고도, 면접관의 선택도 필요 없다. 내가 나를 임명하면 된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면 ‘생활기록 작가’, 동네 역사를 좋아한다면 ‘우리 동네 역사해설가’, 식물을 좋아한다면 ‘동네 정원사’, 사진을 좋아한다면 ‘마을 사진기록가’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쌓은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누는 ‘경험 멘토’도 좋다. 요즘은 AI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직업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자신의 경력과 관심사,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알려주고, 수익이 목적이 아닌 나만의 직업 이름을 지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퇴직을 준비하면서 연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만큼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퇴직 후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
그 답이 반드시 재취업이나 창업일 필요는 없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좋다. 아니, 한 푼도 벌지 못해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사람을 만나게 하고,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만들어준다면 충분하다. 퇴직 후 누군가 “요즘 뭐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저요? 여행작가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독자가 아내 한 명뿐이라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퇴직은 월급을 받던 직업이 끝나는 날일 수는 있어도,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역할까지 끝나는 날일 필요는 없다. 퇴직 후에는 돈 되는 직업을 찾느라 너무 애쓰지 말자. 대신 나를 다시 설명해 줄 수 있는 ‘돈 안 되는 직업’을 하나 만들어보자.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