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 나를 삼키지 않게 하려면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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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잊지 못해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배신한 친구, 부당하게 대했던 직장 상사, 오랫동안 마음을 아프게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시의 일을 되짚는다. 끝난 대화를 머릿속에서 다시 시작하고, 그때 하지 못한 말을 떠올린다. 관계는 끝났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그 사람과 다투고 있는 셈이다.
미움은 상대를 밀어내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람에게 마음을 붙잡아둔다. 잘 지내는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지 궁금해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왜 우리는 미운 사람을 계속 생각할까. 먼저 이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면 이유를 찾으려 한다. ‘왜 나에게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얻으면 상처도 정리될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타인의 행동에는 명확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붙들수록 생각은 같은 자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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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도 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사는데 자신만 고통받는다고 느끼면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고,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무너진 공정함을 되찾으려는 자연스러운 심리다. 하지만 사과나 책임이 뒤따르지 않으면 마음속 재판은 판결 없이 계속된다.
심리학에서는 괴로운 사건과 감정을 반복해 되새기는 사고를 ‘반추’라고 한다. 반추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해결책을 찾기보다 같은 장면과 감정을 되풀이한다. 사건은 과거에 끝났지만 몸과 마음은 그때의 분노와 수치심을 현재의 일처럼 다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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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미움을 억지로 없앨 필요는 없다. 미움은 내가 어떤 부당함을 겪었는지, 무엇을 더는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감정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이 내 삶을 얼마나 차지하는지 살펴보는 일이다.
상대를 용서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나는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가”로 바꿔볼 수는 있다. 상대의 소식을 찾아보지 않고, 떠오른 생각을 계속 이어가지 않으며, 그 시간에 내 일상과 관계를 돌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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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을 내려놓는 것은 상대에게 베푸는 관용이 아니다. 더는 그 사람이 내 감정과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용서하지 않아도 앞으로 갈 수 있다. 회복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빼앗겼던 내 삶의 중심을 다시 나에게 가져오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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