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부터 갖추세요” 구마모토가 전남광주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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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 피지컬 인공지능,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발표하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2030년 양산을 목표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 중이다. 국가와 글로벌 선도 기업이 손잡고 하는 천문학적인 투자는 전남광주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그 답을 찾기 위해 한겨레21이 전남광주보다 먼저 그 길을 간 도시들을 찾았다. 한국처럼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티에스엠시(TSMC)를 유치한 일본 구마모토현, 그리고 1987년 2월 티에스엠시 설립 이후 세계적인 반도체 도시로 성장한 대만 신주과학단지다. 공장이 들어선 뒤 두 도시가 맞닥뜨린 변화가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를 전한다.
“광주는 인프라가 돼 있습니까?”
9월11일 찾은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의 재즘(JASM: 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 티에스엠시의 일본 자회사) 1공장 주변은 2공장 건설로 분주했다. 공장 부지 남쪽엔 신축 고급 주택과 맨션이 줄지어 들어섰다. 공장이 들어선 뒤 생긴 변화다. 출퇴근 시간이면 좁은 시골길에 전에 없던 러시아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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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에게 불쑥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을 들려주니 돌아온 물음은 한결같았다. 그들이 구마모토의 티에스엠시 유치 경험을 바탕으로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무조건 인프라’였다.
일본 정부는 한국·대만·미국 등에 밀린 반도체 산업을 되살리겠다는 목표로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티에스엠시 공장 유치에 나섰다. 티에스엠시는 2021년 11월 구마모토현 진출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1조2080억엔(약 10조4천억원)의 보조금을 투입해 2030년까지 반도체 매출을 3배 이상 늘리겠다는 파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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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조건 인프라”
2022년 4월 재즘 1공장 건설이 시작되자 상인들 추산으로 건설 인력 약 5천명이 동네로 들어왔다. 재즘 1공장은 착공 20개월 만인 2023년 12월 완공됐다. 반도체 양산은 2024년 12월 시작했다. 음식점 매출이 20%나 뛰었다. 늘어난 세수 덕분에 기쿠요마치는 2025년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하고 기반 시설도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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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장이 건설된 뒤 인구가 많이 유입됐음에도 도로와 철도, 주택과 상업시설 등 생활 인프라는 그것에 맞게 확대되지 못했다. 한겨레21이 지역의 한 상인에게 “티에스엠시가 온 뒤 삶이 좋아졌냐”고 묻자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나빠졌다. 길이 막힌다.”
재즘 1공장 건설 때부터 예견된 상황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당시에도 “티에스엠시의 첫 공장은 극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즘 공장이 들어선 구마모토 세미콘테크노파크엔 이미 소니그룹의 반도체 공장을 비롯한 30개 가까운 기업이 들어와 있었다. 노동자만 1만명이 넘었다. 여기에다 재즘 공장 건설에 필요한 중장비와 건설 노동자들을 태운 차들이 늘면서 인구 4만3천명의 농촌 마을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보조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물리적 인프라 확충 속도가 공장 신설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일본 ‘재팬타임스’는 2023년 6월20일 “도로를 넓히거나 신설하기 위한 토지 매입이나 주민 동의, 입찰 절차 등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공장 인근 철도도 단선 노선이라 대중교통을 통한 출퇴근 분산에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별법을 활용한 ‘패스트트랙’ 도입과 함께, 추진 과정에서 주민 소통을 원활히 끌어내는 것 또한 정부와 지자체의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준다.

인프라난은 도로나 철도 같은 교통망에 국한되지 않았다. 구마모토의 경우 공장과 함께 대만인 기술자들과 가족이 대거 유입됐지만 이들을 위한 교육·의료 지원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3년 10월15일 “대만인 가족 1천여가구가 유입되면서 현 내 유일한 국제학교 학생 수가 급증했지만 늘어난 입학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대기자가 속출했고 대만 기술자 가족들이 자녀를 보낼 학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도 2024년 2월21일 “일본어 소통이 불가능한 대만인 초등학생들이 입학했으나 통역 보조교사가 턱없이 부족해 수업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통역 시스템이 부족하긴 병원이나 관공서 등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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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전남광주 클러스터가 완성되면 10만명 안팎의 인구가 정착할 것으로 예상한다. 전남광주 클러스터보다 규모가 작았던 혁신도시들 대부분이 교육·의료·문화 등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가족 동반 이주가 저조했다. “필수의료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의료계 지적처럼, 각 분야에서 제시하는 요구 사항들을 공장 건설과 함께 진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구마모토 못지않은 속도전”을 지시한 이재명 대통령도 “정주 여건 조성이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이라며 “첨단 산업과 주거·교육·의료·문화가 어우러진 지역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반도체 팹은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까
재즘은 양산을 시작한 이듬해인 2025년 573억1300만엔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2026년 1분기(1~3월)에는 47억8천만엔의 흑자를 냈다. 티에스엠시는 대만 공장의 장비·부재·공정을 그대로 옮겨 오는 ‘카피 이그잭틀리’(Copy Exactly) 정책을 실행했다. 그래서 지역 기업이 핵심 부품 공급망에 새로 진입하긴 어려웠다. 대신 소모품이나 유지 보수 자재 등 간접 재료 공급에 치중했다. 그 결과 간접 재료의 일본 국내 조달 비율은 2024년 기준 45% 수준이었다. 재즘은 이를 2030년까지 60%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구마모토 내 조달 비율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종합금융지주회사인 규슈파이낸셜그룹이 2024년 9월 펴낸 자료를 보면, 티에스엠시 진출을 계기로 새로 지출한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조달액 3188억엔 가운데 구마모토현 내 조달액은 약 12%(388억엔) 정도였다.
재즘 사례는 지역 기업들과의 공급망이 단순히 대기업의 공장을 현지에 새로 짓는 것만으로는 구축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국경을 넘어 해외에 진출한 티에스엠시의 사례와 국내에 공장을 신설하는 전남광주 클러스터의 상황은 다르다. 가시마 히로시 구마모토대학 교수(경제지리학)는 한겨레21에 “전남광주는 국내 기업(삼성전자·SK하이닉스)과 국내 공급망과의 결합이 주요 과제로 보인다”며 “기존 수도권의 소부장 기업과 새로 조성될 지역의 공급 업체들 사이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역 내 양극화나 자원 쏠림 현상의 해소도 중요 과제다. 일본 구마모토은행이 2025년 1월에 발간한 ‘티에스엠시 진출에 따른 구마모토·규슈로의 파급 효과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를 보면, 티에스엠시 진출 이후 반도체 관련 기업의 구마모토현 내 신규 입지 또는 증설은 84개사, 90건에 달했다. 그러나 재즘 공장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의 중소 도시 야쓰시로를 포함한 남부 쪽의 신규 입지·증설은 3건에 그쳤다.
지역 내 인프라 격차도 우려되는 점 중 하나다. 구마모토의 경우 티에스엠시 공장이 들어선 기쿠요마치와 인접 지역은 법인세 등이 늘면서 재정 자립도가 크게 상승했지만 인근 중소 지자체는 인프라 예산이나 기업 유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북부 지역인 기쿠요마치의 고토 가즈키 상공회 회장조차 “혜택은 이쪽 현 북쪽뿐이고 예산도 이쪽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세수가 급증한 기쿠요마치와 달리 주변 지자체는 정비 부담만 커진 셈이다.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가 성공하기 위해선 개발 이익의 공유와 세수 공동 분배 같은 지방 상생 메커니즘을 기획 단계부터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준다.

■ “재즘 효과는 이제 시작”
구마모토현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파급 효과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마모토현은 한겨레21에 “신규 민간 투자로 기업 간 거래 활성화에 따른 매출 확대, 원자재·제품 운송 증가에 따른 물류 촉진 등이 예상돼 추가적인 경제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며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어 현 내 대학·고교 신규 졸업자의 현 내 취업률 증가, 생산 가능 연령층의 이주·정착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구마모토의 장밋빛 전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전남광주도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가시마 교수는 “반도체는 변화가 매우 심한 산업이다. 지속해서 성장한다는 게 쉽지 않다”며 “인공지능용 반도체의 폭발적 수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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