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미국 ‘사형 집행 생중계’ 겨냥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격”
레오 14세 교황(사진)이 세계 사형제도반대의날인 10일(현지시간) 사형제도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미 국방부의 총기 난사범에 대한 사형 집행 생중계 결정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교황은 이날 엑스에서 “사형제도는 인간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다”며 “공익을 보호하고 정의의 요구를 충족하는 데 사형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서 갱생의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하지 않으면서도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구금제도가 이미 마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미국이나 총기 난사 사건 등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 국방부 결정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지난 8일 미 국방부는 오는 12월3일 예정된 총기 난사범 니달 말릭 하산의 사형 집행을 온라인 생중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도 “이런 행위에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이 생중계를 승인했다며 “그가 어떻게 죽든 상관없다. 죽기만 하면 된다. 사형은 그에게 아주 합당한 최후”라고 했다.
최초의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가 트럼프 대통령과 견해차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을 비판하고 대이란 전쟁에 반대했으며, 인공지능(AI)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인 지난 4월에는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 “힘의 과시와 전쟁을 멈추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이 “좌파에 영합한다”고 비난하고 자신을 예수에 빗댄 AI 합성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며 맞섰다.
다만 올해 초 양측 대립이 최고조에 이른 뒤 교황이 미국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에도 9일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이 먼저 기자들에게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누군가 이런 방식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무슨 목적인지도 모르겠다”며 “죽음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은 분명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미국을 직접 겨냥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이튿날 나왔다.
미 국방부 결정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J D 밴스 부통령은 9일 기자들에게 “(생중계가) 실제로 일어날지 모르겠다”며 “만약 최종적으로 생중계된다면 나는 시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의원들도 “공개 처형은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억압적인 독재 국가에서나 하는 짓”(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이러한 야만적인 관행에 가담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며 반발했다.
폴 코클리 미국 가톨릭주교회 의장도 같은 날 “하산의 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죽음의 문화를 야만적으로 조장하는 것이며 재고돼야 한다”면서 공개 처형은 “미국의 도덕적 기반을 더욱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신과 군의관이었던 하산은 2009년 포트후드 기지에서 근무 중 총기를 난사해 장병과 민간인 13명을 숨지게 하고 3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슬람 신도인 하산은 당시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앞두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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