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스타→여성운동 선구자’ 로빈 모건 별세…향년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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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타계한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함께 현대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던 로비 모건이 5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85.
아역 배우로 시작해 시인이자 편집자로 여성운동에 매진했던 모건이 5일 숨졌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모건은 최근 몇 주간 건강이 악화되다가 뉴욕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그의 아들 블레이크 모건이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모건과 함께 활동했던 현대 여성운동의 대모라 불리던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92살로 별세했다.
모건은 2차대전 전 여성참정권 운동의 성과를 이어받는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중심적 활동가로서 여성의 삶과 사고에 큰 영향을 남겼다. 그는 1968년 미스 아메리카 미인대회에 반대하는 최초의 시위 조직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고, 브래지어를 ‘자유의 쓰레기통’에 던져넣는 퍼포먼스 등으로 유명해졌다. 그가 1970년에 편집한 ‘자매애는 강력하다’는 책은 현대 여성운동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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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은 시인이자 예술가로서 작업이 바로 활동가 삶으로 이어졌다. 역사(history)는 남성 역사만이 아니라 여성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허스토리’(herstory)라는 말을 만들었다. 여성을 뜻하는 금성 심볼 안에 투쟁과 연대를 의미하는 움켜쥔 주먹을 결합한 도안은 그가 대중화시킨 여성해방운동의 상징이다.

그는 1960년대 ‘뉴욕 급진적 여성들’과 ‘지옥에서 온 여성 국제 테러리스트 음모단’(W.I.T.C.H.) 등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창립을 도왔다. 급진적 반전 사회운동가였던 애비 호프먼과 제리 루빈 등이 이끄는 좌파 ‘청년국제당’의 일원이었으나, 이들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곧 탈퇴했다.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기득권에 맞선 그의 행동주의는 정부로부터 ‘무정부주의 주부’라는 낙인을 받고, 체포나 구속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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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은 개인적으로도도 기존의 젠더 질서를 전복하는 삶을 살았다. 모건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연인으로 두었다. 남성으로 동성애자 시인 케네스 피치포드와 2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하며,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낙인찍히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신이 레즈비언이기를 바랐던 페미니스트 및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단정하는 보수주의자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평생 20권이 넘는 여성운동 관련 저서를 출판했고, 대표적인 여성운동 잡지 미즈의 편집장도 지냈다. 2005년에는 글로리아 스타이넘, 배우 제인 폰다와 함께 ‘여성미디어센터’를 공동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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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플로리다주 레이크 워스에서 태어나 편모 슬하에서 자란 모건은 3살 때부터 모델 일을 시작했고, 5살 때 자신의 라디오 쇼인 ‘리틀 로빈 모건’을 진행했다. 1940∼50년대에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해 ‘로빈 모건 인형’이 나올 정도로 상업적 인기를 얻었다. 10대 후반에 컬럼비아대에서 청강하고 워크숍 등에 출석하면서 사회 참여운동을 시작했다. 민권운동과 베트남전 반전 시위에 참여했고, 사회 참여 시인들을 만나 문학적 재능을 개발했다.
모건은 16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으나, 최근까지도 라디오 쇼를 진행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귀여운 금발 아역스타가 파킨슨병에 맞서며 사회의 기존 가치에 가장 가열차게 도전한 활동가로 삶을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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