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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September 11, 2026

가을날 순창은 장맛, 또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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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여행의 백미로 꼽을 만한 곳은 용궐산 하늘길(사진)과 채계산 출렁다리다. 섬진강을 굽어보며 두 길을 걷다 보면 가을 들판과 산줄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크게보기

순창 여행의 백미로 꼽을 만한 곳은 용궐산 하늘길(사진)과 채계산 출렁다리다. 섬진강을 굽어보며 두 길을 걷다 보면 가을 들판과 산줄기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처서가 지난 지 오래다. 요즘은 이맘때가 여행 갈 곳을 고르기 좋은 때다. 올가을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이에게 전북 순창을 권한다. 고추장의 명성이 워낙 자자해 맛의 고장으로만 알기 쉽지만, 순창의 가을은 먹을거리로 끝나지 않는다. 지난 9월1일에는 섬진강을 굽어보는 암벽 잔도가 다시 열렸다. 10월이면 장류축제가 벌어지고, 11월이면 애기단풍이 절정에 이른다. 양지바른 장독대에서 장이 익어가듯, 순창의 가을도 순서대로 익는다. 서두를 것 없이 달력을 넘기며 하나씩 챙기면 되는 고장이다.

장맛은 장독대에서 익는다

첫 순서는 역시 순창의 본론, 장이다. 순창 고추장의 내력은 만만치 않다. 무학대사가 머물던 만일사를 찾아가던 이성계가 길가 농가에서 맛본 장맛에 반해, 왕이 된 뒤 진상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추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이니, 지금 고추장의 전신 격인 장이었을 것이다. 1809년 문헌 <규합총서>는 순창 고추장을 팔도의 명물로 꼽았고, 오늘날에는 지리적표시제에 등록돼 그 명성을 제도로도 인정받는다. 그 내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시설이 순창읍 백산리 일대에 모여 있다.

이 일대의 중심은 순창발효테마파크다. 발효 미생물이 주인공인 흔치 않은 테마파크로, 홍메관, 팡이관, 효모관이라는 전시관 이름부터 그렇다. 2021년 문을 연 뒤 전시관과 놀이 시설을 꾸준히 늘려 왔다. 바로 옆 순창장류박물관에서 된장과 고추장, 간장이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역사를 먼저 훑고 들어가면 관람이 한결 수월해진다. 아이를 데리고 갔다면 음식을 주제로 한 게임과 퀴즈, 실내 놀이 시설을 갖춘 전시관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실내 시설이 많아 비 오는 날 가도 괜찮다.

고추 전래 전부터 ‘장’ 이름난 고을
10월이면 축제 열리는 민속마을서
장 담그는 법 한번 제대로 배워볼까

거대한 바위벽에 걸린 1096m 잔도
용궐산 오르니 섬진강 절경 한눈에
채계산 출렁다리 90m 허공도 매력

가을 깊어지면 역시 강천산·강천사
애기단풍 붉은빛은 11월 중순 절정

순창에서는 전통 장류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둘러보고, 직접 고추장을 담가보거나 고추장불고기를 맛보며 장맛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순창에서는 전통 장류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둘러보고, 직접 고추장을 담가보거나 고추장불고기를 맛보며 장맛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다.

이웃한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은 전통 제조법을 지키기 위해 순창군이 1997년 조성한 동네로, 30여가구가 대를 이어 장을 담근다. 집집이 마당에 장독대가 가지런한데, 내려오는 비법이 달라 같은 고추장이라도 맛이 조금씩 다르다. 1976년부터 고추장을 담가 2015년 대한민국식품명인 제64호가 된 강순옥씨도 이 마을에 있다.

생산자들의 고추장과 된장, 장아찌를 현장에서 바로 살 수 있다. 여러 집을 돌며 견주어 볼 수 있으니 첫 집에서 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10월15일부터 나흘간은 민속마을과 발효테마파크 일대에서 제21회 순창장류축제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이자 올해 예비 글로벌축제로도 뽑힌 행사다. 고추장 담그기와 메주 빚기 체험이 이어지고, 고추장 진상 행렬 재현도 볼거리다. 장 담그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축제 기간에 여는 장문화학교를 찾으면 된다. 순창이 한 해 가운데 가장 떠들썩한 나흘이니, 가을 여행 날짜를 이 언저리로 맞춰 보는 것도 방법이다.

내 손으로 버무리고, 불에 구워 먹고

구경만으로 아쉽다면 직접 담가 볼 차례다. 회문산 자락 구림면의 ‘순창고추장익는마을’은 전통 고추장 만들기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게 풀어놓은 체험 마을이다. 조청에 소금을 고루 섞고 고춧가루와 메줏가루를 넣어 버무리면 끝. 과정은 단순해도 재료만큼은 깐깐하다. 마을 설명으로는 고추는 섬진강 상류에서 키운 것을 쓰고, 메주는 고추장용으로만 따로 띄운다. 소금도 1년 동안 간수를 뺀 것만 쓴다. 순창 고추장의 비법이 이 체험 한 번에 그대로 들어간다. 그렇게 버무린 고추장은 고스란히 내 몫이다. 잘 익은 고추장으로 즉석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체험은 예약이 먼저다. 인원이 적으면 온라인으로 파는 체험 키트를 미리 사서 숙소에서 만들어 보는 방법도 있다. 이 마을에서 청국장으로 만든 과자도 여행 가방에 넣어 갈 만하다.

장을 담그고 나면 밥때다. 순창의 한 끼는 역시 고추장불고기다. 고추장 양념에 재운 돼지고기를 석쇠에 얹어 불에 바로 구워내는 음식으로, 읍내 곳곳의 식당이 저마다의 손맛을 낸다. 2023년에는 순창군이 이원일 셰프와 손잡고 미나리·파를 더한 순창식 레시피를 선보이기도 했다. 매콤한 양념이 밴 고기 한 점에 순창의 장맛이 그대로 들어 있다.

하늘길에 올라 섬진강을 굽어보다

장을 챙겼으면 이제 산이다. 임실과 경계를 이루는 동계면의 용궐산은 산허리에 거대한 바위벽을 두른 모습으로 이름이 높다. 이 수직에 가까운 바위에 잔도를 낸 것이 용궐산 하늘길이다. 2023년 1096m로 늘어나 국내 최장급 산악 잔도가 됐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덱을 손보고 180m 구간에 그늘막을 더한 뒤 다시 문을 열었다.

본격 등산을 각오하지 않아도 된다. 용궐산자연휴양림 근처 들머리에서 15분쯤 오르면 잔도가 시작되고, 그다음부터는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된다. 난간 너머 발아래로 장군목이라 불리는 섬진강 상류 협곡이 굽이치고, 강 건너로는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진다. 가까운 산은 짙푸르고 먼 산은 희뿌옇다. 일교차가 커지는 요즘이라면 강 안개가 걷혀 가는 이른 아침이 으뜸이고, 늦은 오후 햇살을 받은 바위벽도 그에 못지않다.

잔도를 걸었다면 채계산으로 건너갈 차례다. 책을 차곡차곡 포갠 모양이라 책여산으로도 불리는 해발 342m의 산이다. 국도가 갈라놓은 두 산줄기 사이에 2020년 출렁다리가 놓였는데, 중간에 주탑 하나 없이 270m를 가로지른다. 개통 당시 국내에서 가장 긴 무주탑 산악 현수교로 이름을 올렸다. 주차장에서 다리까지는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하니, 무릎이 걱정이라면 시간을 넉넉히 잡을 일이다. 한가운데 서면 발밑은 최고 90m 허공이고, 눈앞으로는 섬진강과 적성뜰이 펼쳐진다. 들판을 반듯하게 가르는 도로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발을 구르면 그 출렁임이 발끝으로 전해진다. 흔들리는 중에도 눈은 자꾸 들판 쪽으로 간다. 건너편에서 조금 더 오르면 나오는 어드벤처 전망대에서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들판이 누렇게 익는 10월이면 한 번 더 찾을 만하다.

11월의 절정을 기다리는 산

순창의 가을은 강천산에서 끝을 맺는다. 1981년 국내에서 처음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절벽을 타고 두 갈래로 쏟아지는 병풍폭포부터 만난다. 강천사를 거쳐 구장군폭포까지 2.5㎞ 남짓한 계곡 길이 이어진다. 고운 흙길이라 신발을 벗고 걷는 이가 많고, 길 초입에는 발 씻는 자리까지 마련돼 있다. 계곡 안쪽에 이르면 1980년에 걸린 높이 50m 현수교가 나온다. 길 끝의 구장군폭포는 물을 끌어올려 만든 인공폭포로, 두 줄기 물이 120m 높이에서 떨어진다. 다리를 건너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있지만, 계곡 길만 왕복해도 아쉬울 것이 없다. 단풍이 아직이라도 계곡을 따라 천천히 걷기만 해도 좋다. 잎이 유난히 작고 붉게 물드는 애기단풍 군락은 11월 중순에 절정을 이룬다. 현수교에서 구장군폭포까지가 단풍이 가장 볼만한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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