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SNS를 끄고 피해자의 책을 읽으시라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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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의 읽고사니즘
우리집에는 ‘책방’이 있다. 말 그대로 책을 쌓아두는 방이다. 문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이 방의 사면에는 여러 차례 이사를 거치면서도 내가 기어코 끌고 다닌 온갖 책이 가득 꽂혀 있다. 그중 한 벽면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 페미니즘과 성평등 관련 도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페미니즘 리부트’라 이름 붙인 2015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이 섹션은 지금도 꾸준히 자기 영역을 늘리며 다른 분야의 책들을 방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 섹션 책의 저자들은 주로 젠더 폭력과 차별의 피해자이거나 연대자, 혹은 이들의 투쟁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유난히 붉게 소리치는 표지가 많은 이 서가의 책들은 입을 모아 ‘기록이야말로 투쟁의 시작’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한쪽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온갖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쓴 책이 그렇다. 피해자인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피해 이후 일상의 회복이다. 회복의 시작은 가해자를 비롯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의 피해 인정, 가해자의 사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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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그것이 쉽지가 않다. 권력형 성폭력처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의 피해자라면 더욱 그렇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인정과 사죄는커녕 사실무근의 온갖 억측과 비방이 뒤따른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속해 있던 조직의 책임은 어느새 간데없고, 피해자가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그렇기에 많은 피해자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책으로 쓴다. 왜곡과 억측이 난무하는 세계에 맞서 실제로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그럼에도 이를 이겨내고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자신의 언어로 분명히 정의한다. 집단 기억의 풍화작용에 기대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사회에 맞서 사관(史官)을 자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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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전 시장의 성희롱 피해자가 쓴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도 그런 책이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비아냥과 욕설을 차단하는 것도 소통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뜬금없이 박 전 시장을 소통의 아이콘으로 추켜세우는 글을 보고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답답했기 때문이다. 또 어디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다시 한번 말해야 할 때마다 느끼는 갑갑함은 얼음이 다 녹은 냉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나아지지 않는다.
책에서 저자는 놀랍게도 용서를 말한다. 자신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서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게 먼저”다. 그러나 용서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가로막혔다. “제가 겪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받는 것, 그 기본적인 일을 이루는 과정은 굉장히 험난했습니다. 극단적 선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저라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 속에서 제 피해 사실을 왜곡해 저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저는 쉽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라는 사실입니다.” 2021년 3월, 저자가 처음으로 용기 내어 기자들 앞에 서서 한 발언 원고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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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저는 이번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잊혀가는 이 현실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저라는 존재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전임 시장의 업적에 대해 박수 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며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받습니다.” “여성과 약자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 진영과 상관없이 사회적 흐름임을 인정하고 그를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피해자가 조심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좋게 에둘러 불편함을 호소해야 바뀌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박 전 시장에 의한 성희롱이 있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에 불복하며 이어진 권고 결정 취소 소송은 지난해 6월에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족 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럼에도 저자가 입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음모론을 퍼뜨리는 이들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에스엔에스로 직접 성추행 가해자를 ‘아이디어 맨’이라느니 소통의 귀재로 호명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그리고 피해자를 공격해 온 이들에게 대체 어떤 메시지가 될 것인지 이재명 대통령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대통령과 그가 대표하는 주권자들간의 소통은 중요하다. 그러나 소통은 에스엔에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높은 권좌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이들의 목소리는 대통령의 에스엔에스 피드 밖에도 있다.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대통령에게까지 가닿지 않는 이야기, 말해도 말해도 도무지 울려 퍼지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이 행여 잊혀질세라 차곡차곡 정리되어 담긴 수많은 책들이 있다.
김잔디의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권한다. 진정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원하신다면 에스엔에스를 끄고 피해자의 책을 읽으시라. 당신의 글이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이었을지를 헤아리시라. 소통은 바로 그 헤아림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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