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베트남의 숨겨진 산수화...소도시 ‘닌빈’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다

번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소도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 자연의 아름다움과 농촌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곳, 바로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닌빈’이다. 수도 하노이에서 차로 2시간이면 도착한다. 구불구불 흐르는 응오동 강, 초록빛 논과 밭 그리고 드라마틱한 석회암 절벽이 어우러진 닌빈에서 진정한 휴식을 맛봤다.
호아루 옛 시가지를 따라 걷다
닌빈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약 100킬로미터로, 차로 2시간가량 걸린다. 대다수의 베트남 사람들은 이 거리를 오토바이로 오간다. 자동차 외에 두 도시를 잇는 기차나 시외버스, 셰어택시 등의 다양한 이동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의 편리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닌빈 여행을 계획한 날이 베트남의 법정공휴일과 맞물렸는데, 휴가 인파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기차 내부 좌석은 반쯤 비어 있었다. “미리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아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던 호텔 직원의 말이 과연 옳았다.
무궁화호를 떠올리게 하는 예스러운 베트남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번잡한 대도시를 벗어나 소도시에 도착한 기쁨도 잠시, 소박한 닌빈역을 지나 도심에 가까워지자 시끌벅적한 소음과 환경이 귓가를 때렸다. 이틀간의 법정공휴일을 맞아 나들이 온 현지인들의 수만큼이나 길가에 주차된 오토바이가 많다.
닌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닌빈 중심부 끼란 호수에 숨겨진 보석이라 일컬어지는 ‘호아루 옛 시가지’다. 베트남 북부의 가장 영적인 지역 중 하나에 자리잡은 이곳은 호아루 고대 도시 경계 내에 위치한다. ‘호아루(Hoa Lu)’는 968년부터 1010년까지 베트남의 수도였던 곳이다.
닌빈은 수년간의 내전과 격렬한 분리주의 운동 끝에 건립한 베트남 독립 국가의 수도이자 경제, 정치, 문화의 중심지다. 토성과 궁궐, 사원 등이 석회암 산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는 형국인데, 오늘날 고대 성채는 파괴되어 10세기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나무로 된 건물 외관, 붉은 등불, 기와지붕으로 딘 왕조와 레 왕조 시대의 무역 거리를 고스란히 복원해 당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새해나 국경절 등의 주요 명절 기간에는 전통 공연과 왕실 의상 체험 등의 행사가 열리는 주무대이기도 하다.
호아루 옛 시가지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 중 하나는 탑뚜안이다. 반얀트리와 이끼 덮인 오솔길 사이 한적한 장소에 자리잡은 이 탑은 베트남의 기본 도덕적 관념인 네 가지 핵심 요소 ‘부모, 스승, 국가 그리고 인류’에 대한 감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석탑이다. 마음의 평화를 찾거나 얻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또한 보름달이 뜨는 날이나 전통 의식이 있을 때면 지역 승려들과 주민들이 이곳에 모여 신앙심을 기리고 나누는 행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호아루 옛 시가지 일대는 등불이 켜진 산책로를 거닐고, 호숫가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찍기도 하며, 노천식당을 즐기는 등 해가 진 후 한층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다.
가장 오래된 동굴 마을, 탐콕
사실 닌빈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탐콕’이라는 명칭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그만큼 탐콕은 닌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닌빈 중심부인 호아루에서 동남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탐콕은 동굴 복합체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정확한 명칭은 탐콕-비크동(Tam Coc-Bich Dong), ‘세 개의 동굴’이라는 뜻을 가진다. 말 그대로 탐콕은 세 개의 동굴로 이루어진, 닌빈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마을로, 보트 관광 코스가 최초로 개발된 지역이기도 하다.
보트 관광은 구불구불한 응오동 강을 따라 절벽과 물이 가득 찬 동굴, 논밭 사이를 지나는 코스로 유유히 이어진다. 여기에 노 젓는 소리,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새소리 등 자연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시원하고 어둑한 동굴을 지나는 동안 만나는 활기 넘치는 논밭과 잔잔한 수로, 웅장한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며, 고요하며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절로 느끼게 한다.
탐콕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 중 하나는 바로 비크동 사원이다. 이곳은 영적인 의미와 건축미,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1428년 응우낙 산의 석회암 절벽에 지어진 이 고대 사원은 베트남 불교 건축의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이후 1705년 불교 승려가 이 탑을 재발견하기 전까지 전쟁으로 인해 정글로 뒤덮여 거의 잊혀지고 버려진 채로 남았던 비크동 사원은 베트남은 물론 주변국가에서 당시 많은 불교 승려들이 줄지어 방문하며 하탑과 중탑, 상탑의 세 층으로 재건됐다. 여러 세대에 걸친 관리인들은 수 세기 동안 이곳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왔다.
산기슭에 자리한 하탑은 각기 불상이 모셔진 여러 개의 방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에서 약 120개의 계단을 오르면 응우낙 산 중턱에 위치한 중탑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전통적인 기와지붕과 중국 한자로 장식된 벽이 특징이다.
다시 중탑에서 가파른 돌계단 50여 개를 오르면 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상탑에 닿는다. ‘트엉탑’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두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바깥쪽 방에는 앞뜰과 돌 제단이 있고, 안쪽 방에는 보살 사당이 있다. 비크동 사원이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기 시작한 건 1993년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지라는 점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인기 관광명소로 인식되어 ‘승려들의 산속 은둔처’라는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름진 감나무 아래 털썩 주저 앉아 사색에 잠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임에 분명하다.
자연과 함께 덜어내고 비우는 ‘무’의 여행
‘짱안’ 혹은 ‘트랑안(Trang An)’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동굴 마을은 탐콕과 더불어 닌빈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이곳 또한 한때 영화 배경지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차츰 관광명소로 발전했는데, 영화 ‘블러드 레터’, ‘땀깜: 언톨드 스토리’, ‘콩: 스컬 아일랜드’ 등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에 촬영장소로 쓰였다.
짱안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지정한 ‘베트남 최초의 복합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을 가진다. 짱안의 생태 경관 단지는 2,000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걸쳐 수로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 많은 수의 동굴 등이 어우러져 있다. 탐콕과 마찬가지로 짱안 일대 동굴과 수생 생태계를 둘러보는 보트 관광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3만 년이 넘는 석회암 산맥으로 이루어진 짱안 생태 경관 단지의 지질학적 지형은 침수림과 석회암 산, 고고학적 문화 유적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또한 수십 개의 건식 및 수중 동굴로 이루어진 데다 동굴의 모습 또한 관통형부터 지하 통로, 연결된 방의 형태 등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탐콕이 낡고 오래된 작은 농촌마을의 모습을 띠고 있다면, 짱안은 현대적인 테마파크 시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곳 생태 경관 단지 입구에 닿으면 현대적으로 단장된 여러 건물이 자리하고, 그곳 내부에는 인포메이션센터와 박물관, 카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여건상 3시간 이상 소요되는 보트 투어에 참여하기 어렵다면 강으로 둘러싸인 노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잠시나마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보자.
에메랄드 빛 강을 바라보며 고풍스러운 돌길을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산속에서 울려 퍼지는 사찰 종소리를 들으며 잠시 멈춰 서서 자연과 교감하는 강한 울림이 심신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진정한 휴식’이란 욕망을 덜어내는 행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느 순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의 상태로 나아가는 자신을 마주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휴식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짱안에서 덜어내고 비우는 여행을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행복함이 절로 터져 나온 항무아산 전망대
닌빈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고 알려진 항무아산으로 향했다. ‘닌빈의 지붕’이라 불리는 항무아산은 전망대에서 닌빈 지역의 거대 논밭 풍경과 석회암 봉우리가 어우러진 절경을 파노라마 형태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해질 무렵 석회암 산맥 너머로 지는 석양이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항무아산 전망대는 높이 142미터, 폭 800미터로 2000년 보수공사를 마치고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현재에 이른다.
전망대의 역할은 1226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원나라가 몽골 침략군을 추적하고 격퇴하는 데 있어서 이곳 전망대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수 세기 동안에는 왕조들이 국정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이곳은 베트남 불교 승려들의 명상 수행의 장소로도 인식되었으며, 산 정상과 주변 동굴 등지에서 불교 축제나 잔치가 열리기도 했다.
항무아산 입구에 들어서면 드넓은 연꽃 연못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연꽃이 무성하게 핀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대나무 산책로는 산책과 동시에 포토존을 위한 곳이다.
초록빛 연꽃 세상을 지나쳐 몇 미터 걷다 보면 정상으로 향하는 돌계단이 용 조각상과 함께 시야에 담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약 500개의 돌계단이 이어져 있다. 그중 약 3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산 중턱에 다다르고 길이 양쪽 두 개로 갈라진다. 두 길 모두 전망대로 이어지는데, 둘 중 더 높은 봉우리는 왼쪽에 위치한다.
나머지 돌계단을 하나도 빠짐없이 올라간 뒤 바위 틈에 우뚝 솟은 불교 탑을 마주 바라봤다. 마을 전역을 굽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 자리한 작은 불교 탑은 예로부터 마을과 마을사람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
불교 탑의 시선대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절경은 마치 붓으로 그린 ‘산수화’의 한 작품 같았다. 탐콕과 짱안에서 보았던 울창한 논과 밭, 구불구불 흐르는 강과 석회암 산맥의 경치와는 또다른 거대한 풍경이 닌빈 여행의 마지막 코스를 완벽하게 장식했다.
전망대를 가득 메운 인파를 피해 구석진 한편에서 일몰을 간절히 기다렸다. 허나 맑았던 하늘이 일순간 구름으로 뒤덮여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일몰을 두 눈에 담지 못했지만 실망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오히려 구름이 잔잔한 바람을 일으켜 피부에 닿는 기압의 변화와 공기의 움직임을 체감하는 순간이 호사로 느껴졌다. 그 순간 절로 ‘행복하다’는 말을 읊조리며, 자연의 위대함에 다시금 머리를 숙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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