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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October 20, 2026

반민특위 습격, 이것은 내란의 일종으로 처단받지 않겠소? [금자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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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공포일인 1948년 7월17일 국회가 있는 중앙청 앞에서 제헌국회의원들이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 첫줄 이승만에서 한 줄 건너 위로 강욱중(검은 양복 입은 이)의 모습이 보인다. 한겨레 자료
대한민국 헌법공포일인 1948년 7월17일 국회가 있는 중앙청 앞에서 제헌국회의원들이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 첫줄 이승만에서 한 줄 건너 위로 강욱중(검은 양복 입은 이)의 모습이 보인다.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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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아버지의 ‘아’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어요.”

“누가요?”

“큰오빠죠. 금기였어요.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욱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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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떤 정치인이었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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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청 출신 소장파이고, 평화통일·외군철수 주장하다 이승만에게 밉보였다는 정도만 알아요.”

“아버지가 국회에서 어떤 발언 했는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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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죠. 언젠가 차 안에서 사위가 발언록 읽어준 적은 있는 거 같은데….”

강금자 여사님과의 4월 첫 만남에서 오간 대화다. 어린 시절 다정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주의·주장을 하는 정치인이었는지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7남매는 평생 아버지를 화제에 올릴 기회가 없었다. 큰오빠 호걸의 엄명이었다. 아버지가 겪은 사건을 일기장에 적었다가 함안 인근 피난지에서 발각돼 감옥에 다녀오고, 이후에도 경찰 감시를 받은 일은 트라우마가 됐다. 동생들이 아버지에 관해 말하면 역정을 냈다.

정치인 강욱중은 누구인가. 제헌국회에서의 의정 생활은 1년 남짓 짧았다. 그를 조명한 글이나 논문은 찾기 힘들다. 국회 누리집에서 내려받기가 가능한 국회 본회의 회의록이 정치성향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국회 회의록을 읽으며, 그가 강경 소장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장파는 제헌국회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며 이승만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던 젊은 신예 정치인 집단을 일컫는다. 무소속 출신이 많았으나, 강욱중 같은 족청(조선민족청년단)이나 노일환 같은 한민당 소속도 없지 않았다. 소장파는 이합집산 속에서 많을 때는 전체 198명 중 70명 선으로 불어나기도 했다. 친일파 청산과 농지개혁, 민족통합·외군철퇴로 요약되는 이들의 슬로건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눈엣가시였다 소장파는 패기가 넘치고 피가 끓었다. 국회 회의록에서 강욱중의 끓는 피를 본다.

강욱중 의원 : 하필 사찰과장이 들어가니까 이것을 불법이라고 해서 해산시킬 이유가 나변에(어디에) 있는가, 대체로 내무부에서는 반민법 실행에 대해서 얼마나한 성의를 가졌는가 알 수가 없습니다. (중략) 국법이 문란해도 정도가 있지 남한 2천만의 생명과 재산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치안기관이 총칼을 가지고 국가기관을 위협하고 그것도 자손만대의 민족정기를 바로잡을려고 하는 우리 반민법의 운영기관을 갖다가 말살하려고 하지 않었습니까.(“옳소”하는 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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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일개의 순경이 최고기관의 검찰총장의 가슴에다가 총을 대는 이러한 법이 어데 있습니까. (중략) 비상사태이에요. 과거의 우리들은 정부가 거부권을 남용한다고 해서 헌법 정신의 위기를 염려했습니다마는 지금 그야말로 민족적인 국가적인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나간다면 내일에 오는 것이 암흑천지가 될지 공포천지가 될지 모릅니다.

(중략)최후에 한마디 묻고 싶은 것은 이번 폭거라고 하는 것이 저 여수·순천 지대에서 일어난 반란군과 마찬가지로 경찰은 반란의 일종이라고 규정한다면 그 경찰국은 드디어 국회를 습격하고, 재판소를 습격하고, 대통령 관저까지도 습격할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기우라고 단지 웃어버리고 말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을 반란이라고 하면 형법으로 처단받지 않을 것인가, 즉 내란죄의 일종으로 처단을 받게 되지 않을 것인가 이것을 묻고 싶습니다.

내무부 차관 장경근 : (앞 생략) 강욱중 의원이 이번 해산 사건을 경찰 반란이라고 이렇게 칭호했습니다. 이것은 중대한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부 지시에 의해서 질서정연하게 경찰권 행사를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불법을 제거하기 위해서 경찰권 행사를 한 것을 경찰의 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의도가 나변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후 이 점은 삼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49년 6월6일 서울 중구 세종로 중앙청 제헌의사당에서 열린 제3회 임시국회 13차 본회의에서 강욱중 의원은 이날 아침 벌어진 ‘반민특위 경찰 습격사건’과 관련해 성토를 이어나갔다.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장이자 검찰총장 권승렬이 일개 순경에게 권총을 압수당했으니, 강욱중의 말대로 ‘비상사태’였다. 그러면서 든 비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여수·순천 사건이었다.

1948년 10월19일 여수 주둔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하면서 시작된 여순사건으로 반란군뿐 아니라 부역자로 몰린 일대 주민 수천 명이 진압군에게 대량 학살당했다. 여순사건은 그해 12월 국회가 국가보안법을 급하게 제정·공포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가 언급한 여순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이 자신마저 찌르는 흉기가 될 줄은 이때만 해도 알 수 없었다.

이날 강욱중이 입에 올린 말 중에서는 ‘내란’과 ‘처단’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형법에 따르면, 내란은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다. 국헌문란이란 헌법이 정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강욱중 의원은 국회 내 설립된 반민특위에 대한 습격을 국회에 대한 권능 무력화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나간다면 내일에 오는 것이 암흑천지가 될지 공포천지가 될지 모른다”고 했는데, 정확한 예언이었다.

강욱중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의 체포 소식을 전하는 1949년 6월23일자 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강욱중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의 체포 소식을 전하는 1949년 6월23일자 동아일보. 지면 갈무리

그로부터 16일 만인 6월22일, 그는 수색역 앞에서 헌병대에 의해 체포됐다. 경찰도 검찰도 아닌 헌병이라니. 3회 임시국회가 폐원하고 이틀이 지난 때였다. 노일환·박윤원·황윤호 의원도 같은 날, 김병회·김옥주 의원은 전날 체포돼 대부분 헌병대로 압송됐다(황윤호만 경찰에 체포). 25일엔 김약수 국회부의장이 종로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됐다. 7명이 붙잡힌 이때를 ‘2차 검거’라 한다. 이문원 의원이 4월, 최태규·이구수 의원이 5월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구속됐는데, 이때가 1차 검거였다. 1차 때 국회의원을 잡아들이는데 주동적 역할을 한 인물이 최운하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장이었다. “하필 사찰과장이 들어가니까 이것을 불법이라고 해서 해산시킬 이유가 나변(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던 강욱중의 국회 발언에 등장하는 그 사찰과장 최운하였다.

강욱중의 말처럼 반민특위 습격이 내란이었다면, 그것은 예고편이었다. 강욱중을 비롯한 제헌국회 의원들은 내란 본편에서 직격탄을 맞은 주인공이라 할만 했다. 예고편을 거쳐 본편으로 이어지기 직전의 길목에는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제헌국회 빨갱이 의원을 규탄한다는 우익단체 계몽협회의 종로 파고다공원 집회(5월31일), 반민특위 사무실 난입(6월3일), 그리고 여기에 역공을 편 반민특위 특경대의 최운하 사찰과장과 조응선 종로경찰서 사찰주임 체포 및 서대문형무소 수감(6월4일). 최운하는 일제강점기 고등계 형사를 지낸 친일파 경찰의 대명사였다. 최운하 구속은 친일파들의 위기의식에 불을 질렀다. 이미 공격거리를 찾던 그들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사건이 6월 내내 이어졌다. 그 어느 해보다 뜨겁고 잔혹한 6월이었다.

국회에서 강욱중 의원과 논쟁을 한 장경근 내무부 차관도 거물급 친일파로 꼽히던 이였다. 일제강점기 경성지방법원 판사를 지냈다. 그는 강욱중 의원이 ‘경찰의 반란’ 운운하자 ‘중대한 발언’이라며 맞받아치더니 “상부 지시에 의해서 질서정연하게 경찰권 행사를 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반민특위 습격을 정당화했다. 이 습격이 본인 지시 때문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당시 내무부 장관은 김효석이었으나, 편도선염을 핑계로 입원해 국회에 나오지 않았다. 이승만과 직접 교감하는 내무부의 실세는 장경근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정치인 강욱중의 의정생활은 여기까지였다. 6일 이후에도 18일까지 몇 차례 국회본회의 단상에 올랐으나 6일만큼 길고 인상적인 발언은 없었다. 강욱중에 대한 추가 정보가 없을까 하여 인터넷 검색을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2018년에 나온 의미 있는 신문 칼럼 하나를 찾아냈다. 고향이 강욱중과 같은 함안이라는 원로 역사학자였다. 자신이 초등학생일 때의 5·10총선거를 추억하며 강욱중의 실물 선거 포스터를 기억한다고 했다. 태어난 해를 찾아보니 강금자 여사님과 같은 1938년생이었다. 오래 전 인터뷰한 인연도 있는지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대신 문자메시지가 왔다.

“제가 귀가 좋지 않습니다. 문자를 보내주세요.”

“강욱중 의원 관련해서 여쭈려고 합니다.”

“제가 칼럼에 쓴 것 이상으로 더 없어요.”

“제가 강욱중 의원 따님을 아는데요. 교수님과 동갑이세요.”

“아 그래요?”

노학자가 비로소 호기심을 보였다. 여사님과 함께 셋이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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