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년 고찰에 웬 출셋길? 걷다 보니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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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와 수행 도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거나 이름이 유명해졌다는 뜻의 ‘출세’는 다분히 세속을 상징한다. 반면, 도량은 세속을 버리거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경남 양산시에 있는 고찰 통도사에 가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출세길’이 있기 때문이다.
646년 신라 선덕여왕 때 승려 자장 율사가 창건한 통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절이다.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와 함께 국내 3대 사찰로 꼽힌다. 2018년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다. 절 이름을 통도사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세가지다. 중생이나 수행자가 대웅전 뒤에 있는 금강계단을 통해 ‘통도’(법도가 통하다, 득도하다)하는 절이란다.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열반 뒤 남은 유골이나 구슬 등)를 담은 구조물이다. 사람의 법을 통달해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도 담은 이름이다. 여기에 통도사를 끼고 있는 영축산의 형세가 인도의 영축(영취)산과 통한다는 뜻도 있다. 인도 비하르주 인근에 있는 영축산은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한 곳으로 유명하다.

통도사는 여느 절과는 견줄 수 없는 웅장미를 갖춘 건축물이다. 통도사가 지켜낸 시간 앞에서 여행자는 숙연해진다. 낡아 보이는 절 기둥이나 지붕에서 인간의 고뇌와 이를 벗어던지려는 인간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구조가 각각 다른 17개의 암자를 끼고 있어 사찰 전체가 사람과 짐승이 서로 내외하지 않고 우정을 나누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통도사 여행객 대부분은 대웅전과 삼층 석탑 등 여느 절에 있는 건축물만 돌아보고 나오기 십상이다. 물론 이것들도 다른 절에 견줘 큰 감흥을 준다. 하지만 그러면 진짜 보물을 못 보고 떠나는 셈이 된다. 통도사의 출세길이 보물이다. 보물이 별거인가.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거짓 없이, 허세 없이 들여다보게 하는 게 보물이다. 보물은 미래를 일구는 반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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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출세길에 발 디뎠다. 놓칠 뻔한 이 길 여행은 스쳐가는 인연이 난데없이 알려줬다. 처음 본 이가 소매를 붙잡았다. “꼭 가보시라. (통도사 옆) 개울 따라가면 만난다”고 했다. 그의 간청에 감동받아 출세길에 들어섰다. 나무 데크로 조성된 산책로였다. 이 길만 따로 떼어 사진 찍는다면 사찰 안 공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구불구불 이어지다 낮게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출세길. 멀리 영축산 능선이 걷는 내내 시야를 사로잡는다. ‘이리 평온해서야 어디 강퍅한 세상에서 출세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탄한 길이다. 무릇 출세길이라면 걷는 이를 힘겹게도 하고 나락 같은 구간도 만나게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얼추 20여분 걸었을까. 아치형 다리가 나타났다. 그 다리를 건너자 보경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실 출세길의 진짜 매력은 여기에 있다. 길 끝에 만난 평온한 호수. 그 호수에 부처의 자비 같은 햇살이 밀가루 반죽처럼 얇게 덮여 있었다. 비로소 이유 모를 안도의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뭘까. ‘휴~.’ 입술을 모으고 아랫배에 힘을 실어 내뱉은 한음절이 모든 것을 깨닫게 했다. 이 길은 세속적인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속세를 떠나 부처의 가르침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뜻이라는 걸 알게 했다. 굳이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그 누구라도 이 길 끝에서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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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가운데엔 장미셸 오토니엘 작품 같은 바위가 있다. 5개의 바위가 붙어 있는데, 새 두마리가 각각 다른 바위에 앉아 있었다. 미동도 없는 새들이다. 움직임이 전혀 없다 보니 조형물이구나 싶었다. 바람이 스쳐가도 조형물은 끄떡없었다. 바위에 조형물을 굳이 왜 설치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착각이었다. 실제 새였다. 수행에 몰입한 승려 같은 새들이었다. 도에 몰입해 있었다. 이곳에서 진짜 여행 고수도 만났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캠핑 의자를 놓고 책을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보였다. 통도사 진짜 여행을 아는 이들이었다. 통도사의 숨겨지다시피 한, 보석 같은 여행지인 출세길과 보경호수. 여기가 끝이 아니다. 바로 옆엔 메밀밭이 있었다.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기 시작한 메밀꽃은 낭만과 아련함을 동반하며 여행객을 흔들었다. 인근에 있는 암자 극락암은 마치 극락에 입성한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이름 때문인가 싶지만, 아니다. 연잎이 융단처럼 깔린 작은 호수와 우아한 아치형 다리, 그 다리를 한눈에 담은 쉼터 공간 등은 평화 제조 공장 같았다. 눈에 담을수록 마음에 안온함이 깃들었다. 통도사엔 17개의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암자가 있다. 통도사 암자 투어만 하는 이도 있다.


통도사에서 차로 20여분 가면 닿는 울산은 통도사 여행과 한 묶음이다. 현대자동차,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 에스케이(SK)에너지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국내 최대 공업 도시 울산. 그래서 이곳을 여행지로 여기는 이는 적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잘 정비된 도로와 편리한 교통은 울산을 최적화된 여행지로 꼽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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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암공원이 대표 여행지다. 여기엔 출렁다리가 있다. 대왕암공원 출렁다리는 2021년 6월 완공된 무주탑 현수교로, 길이가 303m다. 광활한 울산 앞바다를 시야에 담으며 걸을 수 있는 다리다. 울산 도심의 마천루가 배경처럼 깔린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대왕암공원 여행이 시작된다.


울산 동쪽에 있는 대왕암공원은 등대까지 송림이 우거진 600m 길을 품고 있다. 100년은 족히 넘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며 여행객을 맞는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해안 공원이다. 대왕암, 울기바위, 남근바위, 탕건바위, 처녀봉, 용굴 등을 모두 품고 있다. 지루할 틈 없이 눈이 호강한다. 이런 기암괴석의 기기묘묘한 형태 때문에 ‘제2의 해금강’이란 소리를 듣는다. 본래 울기공원으로 불린 이곳은 2004년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대왕이 죽자 왕비가 호국룡이 되어 승천했다가 대왕암 아래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울주군 간절곶과 쌍벽을 이룬다. 송림길, 전설바위길, 사계절길 등 산책 코스들이 조성돼 있다. 송림과 바위를 지나 도착한 대왕암. 송곳 같은 빛이 지천으로 널렸다. 대왕암을 뚫고도 남을 듯한 뾰족한 빛이다. 하지만 자연의 은혜라고 생각하니 그저 반갑다. 대왕암 아래 형성된 먹거리 해녀촌에서 성게, 멍게 등을 한 접시 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한 해녀는 “예전엔 해녀가 200명도 넘었다”고 증언했다.


대왕암에서 슬도로 향했다. 도착한 슬도는 대왕암공원과는 100% 다른 별천지였다. 세련된 카페와 밥집이 넘쳐났다. 빈티지 감성의 카페에선 모델 같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프랑스 마르세유 바다처럼 나무 구조물 아래에서 낚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디를 가든 예상을 뛰어넘는 풍광이 넘쳐나는 데가 울산이다.
‘자수정 동굴나라’도 이 범주에 든다. 울산을 대표하는 테마공원이다. 울주군 언양읍에 있다. 과거 자수정을 채광하던 광산을 관광동굴로 만들었다. 이곳에는 두가지 여행이 준비돼 있다. 갱도 보트 투어와 갱도 걷기 여행이다. 전자는 개미집처럼 연결된 갱도 사이에 흐르는 물 위를 보트로 둘러보는 여행이다. 후자는 갖가지 조형물과 볼거리가 설치된 갱도 안을 자박자박 걸으며 놀멍쉬멍하는 투어다. 갱도 내부 면적은 약 1만6500㎡다. 차량이 드나들 정도로 넓다. 동굴 내부 온도는 연중 12~16℃를 벗어나지 않는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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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도 보트 투어는 동굴의 어둠이 배를 잡아끄는 듯해 공포마저 든다. 어둠은 공포다. 하지만 갱도 벽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조명을 만나는 순간 공포는 사라지고 마음은 누그러진다. 공룡, 별을 형상화한 구조물, 불상, 원시인 조형물 등은 하나같이 특이하다. 처음엔 국내 동굴 특유의 알록달록한 조명과 맥락 없이 전시한 조형물에 피식 웃음이 난다. 하지만 볼수록 정이 가고 감탄하게 된다. 중간중간에 따스한 온돌로 만든 자수정 쉼터도 있다. 소원동굴엔 사람들이 저마다 간절하게 적은 소원 카드가 벽에 가득하다. 이 밖에 십리대숲길이 있는 태화강 국가정원, 장생포고래문화마을,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등이 울산을 알리는 여행지다.


여행은 어쩌면 신비를 만나러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상 못 한 색다른 것, 맞닥뜨릴지 몰랐던 뭔가에 빠져드는 것, 그게 신비다. 울산에서 신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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