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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30, 2026

책은 책, 나는 나? 책 한권이 ‘기후정의 편지’로!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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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진행된 ‘이유 그린데이(EU Greenday) 페스티벌’에서 기후정의팀은 부스를 운영했다. 김민주 활동가가 참여자들의 관심사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도심 녹지’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시가 발전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워진 녹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기후정의팀 제공
지난 17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진행된 ‘이유 그린데이(EU Greenday) 페스티벌’에서 기후정의팀은 부스를 운영했다. 김민주 활동가가 참여자들의 관심사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도심 녹지’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시가 발전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워진 녹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기후정의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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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에 새기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일 것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 중 ‘독서장’에 나오는 말이다. ‘몽매함을 깨우치는 핵심 가르침’이라는 뜻의 이 책은 학문을 시작하는 이에게 진정한 배움을 위해 일상의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학문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독서가라면 율곡의 말에 뜨끔함을 느끼는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지식과 정보, 삶의 지혜가 가득한 책은 가까이하지만,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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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청년단체 긱(GEYK)의 기후정의팀 팀원들이라면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듯하다. 긱은 2014년부터 기후위기 대응과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여온 청년 중심 비영리단체다. 단체 안에는 ‘당사국총회팀’ ‘도시농업팀’ ‘생물다양성팀’ 등 여러 팀이 있다. 그중 ‘기후정의팀’은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불평등한 사회·경제 구조가 굳어지고 재생산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팀이다. 그동안 연구보고서 발간, 사진전·퍼포먼스 진행, 시민 토론장 만들기 등 다양한 형태로 기후부정의 문제를 알려왔다.

기후정의 l 메리 로빈슨 지음, 서민아 옮김, 필로소픽(2020)
기후정의 l 메리 로빈슨 지음, 서민아 옮김, 필로소픽(2020)

이 팀의 올해 프로젝트는 책 한권에서 출발했다. 인권 변호사이자 페미니스트이며, 아일랜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메리 로빈슨이 쓴 ‘기후정의’(필로소픽)가 그 주인공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기후위기가 왜 불평등한 문제인지, 그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비용으로 처리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서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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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월 기후정의팀 6명 중 5명(손유진, 서은수, 오연우, 김민주, 최인정)은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개념을 익히고 인상 깊은 대목을 서로 나눴다. 추가 조사를 하고, 각자 떠오르는 사례를 이야기했다. 한번 만나면 3시간씩 토론이 이어졌다. 단체 안에서 “이 팀은 허구한 날 회의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이들은 독서 토론으로 ‘기후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을 좀 더 명료화했다. 시야도 좀 더 넓어졌다.

“작년에 폭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후정의가 결국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맞닿아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기후정의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었어요. 기후위기로 겪는 일들을 설명할 단어조차 없던 여성들이 스스로 그 경험에 이름을 붙이고 언어를 만들어가는 장면이 그랬죠. 책이 저희 팀에 ‘등대 역할’을 해준 거죠.”(손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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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팀원들이 모두 밑줄을 그은 대목이 있다.

“조직되지 않은 유일한 집단은 빈곤층뿐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 무척 많았지만 발언권이 전혀 없었어요.”

팀원들은 이 구절을 통해 기후부정의의 핵심엔 ‘피해의 불균형’뿐만 아니라, 자신의 피해를 ‘말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조차 불균등하게 주어지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그래서 “기후정의 활동은 누군가를 돕거나 계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말하고 해결의 주체가 되도록 ‘조직과 관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 생각은 네가지 소주제로 이어졌다. 폭염 속 이동장애인(교통약자)의 일상을 다룬 ‘장애’, 더위 속 노동과 주거를 견디는 ‘청년의 일상’, 동네마다 다른 그늘을 살핀 ‘녹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지 묻는 ‘공공 공간’이 그것이다. 팀원들은 소주제를 나눠 더 탐구하고, 관련 인터뷰도 했다. 그렇게 모은 이야기가 편지가 됐다. 프로젝트 이름은 ‘앤트레일’(Antrail). 개미가 페로몬으로 길을 만들듯 편지로 시민들과 ‘기후정의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취지다.

지난 2월 비대면(줌)으로 ‘기후정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 기후정의팀 제공
지난 2월 비대면(줌)으로 ‘기후정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 기후정의팀 제공

지난 9월7일부터 4주간 매주 월요일, 기후정의팀은 사전 참여 신청을 한 시민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오면 팀원 모두 읽고 그 이야기를 재료 삼아 다음 편지를 썼다. 편지와 답장은 웹 아카이브(antrail.netlify.app)로 정리해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수 있게 했다. 올해 연말에는 워크숍과 활동 전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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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들은 책을 다시 펼쳐보기도 했다. 서은수씨는 “3장에서 샤론이 허리케인 피해를 겪은 주민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2천개 이상의 서명을 모으는 장면이 있다”며 “처음엔 기후정의를 실현한 하나의 사례로 읽었는데,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람들이 함께 말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 일 자체가 중요한 실천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인정씨는 독서 모임에서 나눈 ‘시추에이티드 포지션’(situated position, 서 있는 자리)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의 태도를 돌아봤다. 이 개념은 사회적 조건과 관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씨는 올해 경북 산불 현장에서 만난 이재민들을 자신이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기후정의팀 활동을 하면서 내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말하거나 해석하기보다는, 그 개인의 경험과 목소리가 더 많이 드러날 수 있도록 수면 위로 올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민주씨는 기후정의팀을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며 ‘복작복작’을 꿈꾸는 팀이라고 표현했다. ‘기후정의’ 문제에 대해 책을 매개로 오랫동안 팀원끼리 이야기를 나눴고, 그 자리에 다른 시민들도 함께하도록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팀에게 “책은 책대로, 나는 나대로”가 아니었다. 다섯명이 꼭꼭 씹고 읽은 책 한권이 ‘편지 프로젝트’가 됐고, 그 편지는 시민들에게 ‘기후정의’를 알리는 행동과 실천이 됐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한겨레와 재단법인 지관은 공동기획으로 책을 매개로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독서 모임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내며, ‘사회적 독서’가 지닌 가치와 효능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함께 읽고 대화하는 독서 문화의 의미를 확산시키고, 일상 속에서 독서를 매개로 한 새로운 공동체 문화가 자리 잡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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