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의 대통령과 농어민 대화, 정책 전환 이어지길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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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도 |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
대통령과 농어민의 대화가 8년 만에 지난달 26일 열렸다. 8년 전 대화가 보여주기식 행사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대통령의 적극적인 경청과 소통 의지가 돋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농어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이하 협정)에 대해 대통령은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협정 가입을 회피할 수는 없고, 언제, 어떻게 할 것이냐, 또 어떻게 보완대책을 만들 것이냐가 남은 문제”라고 말했다.
첫번째 의문은 과연 협정 가입이 불가피한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과 50여개 이상의 양자·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개방형 통상국가다. 정부 연구기관들의 합동연구에 따르면 협정 가입 시 10년간 누적 지디피는 0.37~0.38%(약 10조원), 소비자 후생은 45억~46억달러(약 6조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농림수산업 생산액은 15년간 연평균 85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연관 산업 피해를 제외한 직접 피해액이다. 이미 충분히 개방된 우리나라가 협정 가입으로 얻을 추가 이익은 크지 않은 반면, 기존 에프티에이에서 보호해 온 농축수산물 예외 품목이 거의 인정되지 않아 농어업 피해는 클 수밖에 없다. 지디피 증가율 0.3%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농어업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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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의문은 보완대책의 실효성이다. 대통령은 사실상의 무역이득공유제를 제안했지만, 기존 농어촌상생협력기금부터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수출기업들은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출연하기로 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성과급과 주주환원 금액은 올해 250조원가량 되는데, 정부는 국민 세금 6745억원으로 부족분을 대신 부담하겠다고 한다. 과연 온당한 일인가. 대통령은 새로운 방안으로 ‘수출부담금’을 제시했다. 통상 개방의 혜택을 얻는 수출 제조업 분야가 이익 일부를 농어업에 보전하는 방식이다. 기존 자율기부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취지지만, 정권 교체와 재계의 반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의 충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무엇보다 법적 강제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자칫 농어촌상생협력기금처럼 흐지부지되거나 국가 예산으로 농어민에게 시혜를 베푸는 일회성 정책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세번째 의문은 보완대책을 넘어 농어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수출부담금과 직불금 확대로 피해를 일부 보상할 수는 있지만, 값싼 외국산 농수산물의 대량 수입 속에서 우리 농어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식량안보와 식량주권은 지켜질 수 있을까? 농어업과 농어촌의 쇠퇴는 농어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량안보 약화와 지역 쇠퇴는 국민 전체의 피해로 이어진다. 협정 가입은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에도 역행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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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의문은 정부가 왜 농산물 가격 정책에 소극적인가 하는 점이다. 시장 개방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법은 국내 농산물 가격을 보장하는 것이다. 농민들이 생산비를 반영한 최저가격인 ‘공정가격’을 요구하자 대통령은 “이상적이긴 한데 가능할지 걱정”이라고 답했다. 물론 공정가격 보장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소비자 물가 안정에 치우쳐 생산자 가격 보전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미국의 가격손실보전제도(Price Loss Coverage·PLC)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생산자의 소득과 경영 안정을 뒷받침하겠다는 적극적인 답변이 아쉬웠다.
다섯번째 의문은 시장 개방에 대응할 핵심 과제인 농업구조 개혁을 왜 대통령도 농어민단체도 언급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경지면적 1㏊ 미만 농가가 81.5%에 달하고 농축산물 판매액이 1천만원 미만인 농가도 73.9%인 영세농 구조에서는 농산물 가격 보장만으로 농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영농 규모와 생산구조의 개선 없이는 농업의 지속가능성도 담보하기 힘들다. 따라서 농지 전수조사로 확보한 소유·이용 실태 데이터를 농업구조 개혁에 활용해야 한다. 실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농민들이 농업의 주체가 되는 영농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농지 조사에 그치지 않고 농업구조 개혁으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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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술 밥에 배부르겠는가. 대통령과 농어민단체의 대화가 한번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자주 열리기 바란다. 재계와의 만남에 비하면 적어도 그 10분의 1 정도의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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