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음악’은 옛말···태연·이수현도 부르는 J팝, 한국 대중음악 한복판으로
태연의 ‘만찬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그룹 리센느 원이(왼쪽)과 미나미. SHgold네트웍스 제공
일본 가수의 노래를 한국 가수가 리메이크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지난 6월 발매된 태연의 ‘만찬가’는 일본 가수 츠키(tuki.)의 동명곡을 한국어로 번안한 곡으로, 지난달 멜론 일간차트 최고 6위를 기록한 뒤 지금까지 10위권을 지키고 있다. 여기에 J팝 페스티벌 흥행, 일본 대형 아티스트들의 내한이 이어지며 과거 ‘오타쿠’라고 불리는 일부 팬층의 문화로 인식됐던 J팝이 이제는 국내 대중음악 시장의 한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수현 ‘푸른 산호초’ 앨범 커버. SHgold네트웍스 제공
‘만찬가’는 가수 겸 방송인 강남이 총괄을 맡은 ‘J팝 리메이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일본의 히트곡을 한국어로 개사해 선보이는 프로젝트로 태연, 한로로, 악뮤(AKMU) 이수현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한로로는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OST ‘잔혹한 천사의 테제’를 리메이크했고, 이수현은 1980년 발매된 마츠다 세이코의 곡 ‘푸른 산호초’를 재해석했다. 강남은 프로젝트에 대해 “좋은 J팝을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의 명곡도 일본에 소개하고 싶다”며 “음악을 통해 양국을 잇는 문화사절단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국내 J팝 시장은 코로나 이후 성장세를 그리고 있다. 일본 가수 이마세의 ‘나이트 댄서’가 2023년 J팝 최초로 한국 음원차트 톱100에 진입한 것을 기점으로 국내 J팝 소비량이 늘어났다. 지난 6월 음원 플랫폼 KT 지니뮤직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17일) J팝 장르의 스트리밍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5% 증가했다. 2년 전인 2024년과 비교하면 57.5%가 늘어났다. 국내 연간 음원 이용량(써클차트 기준)이 2019년을 정점으로 매년 내림세를 그리는 가운데, J팝 음원 이용량이 30% 가까이 급증한 것은 이례적이다.
엠넷 음악방송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한 일본 걸그룹 큐티스트리트. 엠넷 유튜브 갈무리
J팝이 한국에 들어오는 경로도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일본 음반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특정 팬층이 음악을 찾아 들었다면, 최근에는 숏폼 플랫폼에서 먼저 노래를 접한 뒤 원곡과 아티스트를 찾아 듣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아이돌 그룹 큐티 스트리트가 엠넷의 음악 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해 무대를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큐티 스트리트는 곡 ‘카와이이다케쟈 다메데스카?’(귀엽기만 하면 안 되나요?)의 쇼트폼 영상이 크게 유행하며 한국을 찾았다.
스노우맨은 지금까지 발매한 모든 앨범이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일본의 최정상급 보이그룹으로 지난해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하고,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내 바이럴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룹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서 J팝 아티스트에 대한 수요가 커지며 한국이 일종의 해외 진출의 시험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굵직한 아티스트들의 내한도 이어지고 있다. 2024년 후지이 가제는 J팝 아티스트 최초로 2만석 규모의 고척스카이돔을 채웠다. 아이묭, 바운디, 오피셜 히게 단디즘 등의 밴드는 약 1만5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매진시켰다. 오는 12일에는 고양시 킨텍스에서 일본의 국민밴드 백넘버의 첫 내한 공연이, 26일에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기무라 타쿠야의 데뷔 후 첫 내한이 예정되어있다.
J팝은 국내 음악 페스티벌로까지 무대를 넓히고 있다. 일본 아티스트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음악을 함께 즐기는 페스티벌에서 J팝 아티스트가 헤드라이너(주요 출연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5~6일 개최된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2026’은 국내 아티스트로만 채워졌던 지난해와 다르게, 헤드라이너로 일본 밴드 즛토마요가 등장했다. 지난달 열린 ‘2026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는 일본의 시티팝 밴드 오리지널 러브와 걸그룹 하나(HANA)가 출연하기도 했다.
‘원더리벳 2026’ 라인업과 ‘XMF 페스티벌’ 라인업. 주요출연자 대부분이 J팝 아티스트로 구성됐다. 공식 홈페이지갈무리
J팝을 전면에 내세운 페스티벌도 성황을 이루고 있다. 2024년 신설된 국내 최초 J팝 페스티벌 ‘원더리벳’은 2025년 관객 수가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키모노가카리, 범프 오브 치킨, 스파이 에어 등 일본 현지서도 보기 어려운 팀들이 한대 출연했다.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는 J팝 아티스트의 페스티벌 출연이 잦아지는 것에 대해 “주최 측은 서양 중심의 헤드라이너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고, J팝 아티스트들입장에서도 한국이 하나의 시험대 역할이 되고 있다”며 “‘원더리벳’이나 각종 내한 공연에서 보여준 티켓 파워가 한국의 시장 가능성을 이미 충분히 검증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 J팝 인기가 커진 이유에 대해서는 “코로나 이후 SNS를 통해 음악을 접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쇼트폼 챌린지를 자주 접하는 잘파세대를 중심으로 J팝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과거 소수 마니아층이 일본 음악을 듣는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이나 <체인소맨>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음악으로는 이마세의 ‘나이트 댄서’ 요아소비의 ‘아이돌’ 등이 히트하며 J팝도 하나의 대중적인 장르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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