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사람들③] 중독을 처방받은 딸…‘D-15’를 세고 있었다
[끊는 사람들] 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과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약물 중독 문제 취재를 시작한 이후 여러 중독 당사자를 만났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길게는 3년 가까이 지켜보는 중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중독을 끊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열악한 교정 시스템의 문제, 중독의 사회적 요인, 여성 중독자들의 막막한 현실을 전할 예정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이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②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영재(25·가명)의 아버지는 3년 동안 400곳 넘는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하나뿐인 아들 영재는 처방약을 마약처럼 쓴다. 향정신성의약품인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들을 남용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가 병원에서 이 약을 구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심지어 산부인과에서도 약을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갔을 법한 병원이란 병원엔 모조리 전화를 걸어 “약을 처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소용이 있는 경우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영재가 길거리에, 지하철에, 뒷골목에 쓰러진 채 발견되는 날들이 늘어갔다.
학생 이미지. 김상민 화백
두아(15·가명)는 중학교 2학년 들어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날들이 늘었다. 정형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한의원을 전전했지만 이유를 찾지 못했고 두통은 계속됐다. 두아는 “정신과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영 내키지 않았지만 하나뿐인 딸의 머리는 고쳐야 하는 문제였다.
작년 여름, 두아와 엄마는 처음으로 서울의 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찾아 50만원 상당의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주요우울장애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진단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두아는 머리가 아프고 집중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의사는 ADHD 치료에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의 콘서타 20일치를 처방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됐다. 두아가 어딘가 달라졌다. 조퇴가 잦아졌고 병원을 더 자주 갔다. 가을의 어느 날, 그날도 조퇴를 하고 집에 있던 두아가 엄마에게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 사이 문자가 오갔지만 두아가 보내는 건 뜻이 없는 글자들의 조합이었다.
두아가 왜 헛소리를 할까. 집에 있는 건 맞을까. 가슴이 오그라들기 시작한 엄마는 회사를 조퇴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두아는 수면유도제를 여러 알 삼킨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아가 엄마가 모르는 사이 약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콘서타를 처음 처방받고 나서 3개월 뒤 알게 된 일이었다.
징후가 있었다. 날짜별로 소분해 놓은 콘서타가 몇 개씩 비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두아는 “효과가 없어서 여러 알 먹었다”고 답했다. 엄마는 병원에 더 이상 콘서타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두아가 오타투성이의 외계어 같은 문자를 보내기 전까지는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날 엄마는 두아가 처방 없이도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들을 다량으로 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콘서타가 아니어도 두아가 필요한 약을 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약국에서 쉽게 구매 가능한 기침·가래약, 수면유도제를 많이 먹으면 됐다.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이른바 ‘오디’(OD·Overdose)다. 덱스트로메토르판, 디펜히드라민 등 성분을 과복용하면 해리감이나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산 내역은 기록에 남지 않으니 제약이 없다. 약사가 복약지도를 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 적지 않은 10대들이 이 감각으로 내달리기 위한 팁을 인터넷에 모여 공유한다.
어떤 약을 먹으면 효과적인지, 어느 약국이 군말 없이 달라는 대로 약을 판매하는지, 미성년자에게 팔지 않겠다고 할 때 대처법은 무엇인지…. 엑스(X), 텔레그램, 각종 비밀스러운 채팅앱들을 켜기만 하면 정보의 바다였다.
온라인에서 약물 정보가 거래되는 모습을 표현한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부모에게 들켜서 병원에 입원한 이야기도 공유된다. 두아의 ‘오디’ 친구들은 이런 상황을 “병원에서 내성 빼고 다시 하면 된다”고 표현한다. 지난해 처음 문을 연 이후 올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창고형 약국은 또 하나의 물꼬다. 외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두아가 오밤중에도 약국 열 군데를 돌면서 약을 사고 있었다. 두아의 방에서 알루미늄박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문을 열었다. 두아는 알약을 여러 알 삼킬 준비 중이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 됐다.
“너무 모르는 엄마였어요.” 엄마는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처음 ADHD약을 처방받을 때 의존이나 남용 가능성에 관한 주의, 부모가 복용을 관리하는 것이 좋다는 권고를 받지 못한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네요. 정말로요.”
영재의 아버지가 병원 400여곳에 전화한 것처럼(②편 참조) 엄마도 약국 수십 곳에 전화해서 미성년자에게는 요주의 약을 대량 판매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각종 정보공유방에 잠입해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약을 손에 넣는지 적나라한 현실을 지켜본 터였다. “종로에 약국이 많잖아요. 남편이랑 약국 40~50곳씩 각자 나눠서 전화를 했어요. 대표약사님과 얘기하게 해달라고 해서 통화했는데 소용 없더라고요.” 약사가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의무적으로 복약지도를 하고, 구매자의 약 구입 이력을 확인 및 기록하게 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엄마를 정말로 공포스럽게 하는 건 두아가 ‘오디’ 일행과 자살을 계획한다는 사실이다. 두아가 이따금씩 우울하기는 했지만 분명한 건 죽겠다는 결심은 약을 몇십알씩 털어먹기 시작한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피아노를 잘 치던, 시키지 않아도 곧잘 공부하던 외동딸이 약에 손을 대고 1년 만에 목숨을 버리겠다고 한다.
약물이 주는 환각이 청소년기 특유의 충동성, 자극 추구와 위험 회피, 또래 동조 성향과 맞물리면 자살 계획은 더욱 대담하고 구체적이 된다. 자살 위험 때문에 두아는 보호입원했다. 계획은 멈췄지만, 엄마 손에 들린 두아의 휴대폰 화면에는 ‘D-15’가 적혀 있다. 두아는 15일 뒤 죽으려고 했었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눈이 충혈된다.
두아는 언젠가부터 자주 외롭다고 한다. 늘 곁에 있어줬던 것 같은데 왜 외롭다고 하는지 엄마는 알고 싶다. ‘사랑하고 아끼는 두아’. 두아는 엄마의 휴대폰에 이렇게 저장돼 있었다. “두아가 자신을 진짜 이해할 수 있는 건 ‘나처럼 약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게 아닐까요?” 묻는 말에 엄마는 “맞아요. 그거예요”라고 답하며 눈물을 후드득 떨어뜨린다.
의사가 중독을 팔게 된 이유
미나의 엄마 여진도(①편 참조), 영재의 아버지도(②편 참조), 두아의 어머니도 딸·아들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던 날을 끊임 없이 돌이킨다. 그리고 처방전을 써준 의사를 향한 원망을 멈추지 못한다. 미나는, 영재는, 두아는 왜 중독을 처방받게 됐을까.
책 <중독을 파는 의사들>을 쓴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정신의학·중독의학 교수 애나 렘키는 미국을 휩쓴 ‘오피오이드 위기’를 진단한다. 1990년대 들어 미국에서 중독성이 있는 오피오이드 진통제가 대량 처방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1999~2023년 처방 오피오이드 과다복용 관련 사망자 수를 30만8000명으로 집계한다.
의사들이 왜 중독성 있는 약물을 처방하게 되는가. 렘키 교수의 진단은 이렇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인센티브 구조가 그렇게 짜여 있지 않다. 의사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볼수록 이득이다. 환자들은 정신의 불편함을 즉각 해소하기를 원한다. 정신과 진료의 특성상 환자의 말에 의존도가 높다. 의사에게 환자의 약 처방 이력을 확인할 의무가 없다. 성과 중심의 사회 분위기가 집중하지 못하는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맞물려 ‘중독을 파는 의사들’이 탄생한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게 진단할 수 있다. 문제의식에 공감한 ‘중독성 처방약물에 신중을 촉구하는 의사들’ 11명이 <중독을 파는 의사들>을 번역했다. 역자로 참여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장창현 신천연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처방약은 어디까지나 조절제이고 치료제”지만 대다수 의사들이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약으로만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승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즉각적 증상 완화에 집중하는 의료구조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조용혁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장 과장은 수가체계를 언급했다. 장 과장은 “현재의 행위별수가제는 환자를 많이 볼수록 인센티브”라고 했고 조 교수도 “무형의 가치가 수가로 인정되지 않으니 환자들과 면담을 할 이유가 없다”며 “특히 개원의는 약을 아낄 유인이 없다”고 했다. 평점에 민감한 개원의들은 환자의 즉각적 만족과 피드백을 추종하게 된다. “치료자가 아니라 해결자로서의 의사”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직업윤리가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현실이 윤리를 압도할 때 규제가 필요해진다. 처방약 오남용을 막기 위해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 시스템이 있지만 모두 조금씩 부족하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 의약품 안전사용 서비스(DUR) 시스템 비교 분류표. AI 생성
NIMS는 의사·약사가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을 판매·조제 등 취급했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의무 보고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취급일로부터 7일 이내에 보고하면 돼서 마약류 처방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는 없다. 장 과장은 “그마저도 환자가 진료를 마치고 나갈 때 ‘처방’을 눌러야 내역을 볼 수 있다”며 “유명무실한 시스템”이라고 했다. 조 교수는 “환자를 다시 불러 처방을 취소하려고 해도 뒤에 십수 명 환자가 밀려 있다면 의사는 ‘약을 잃어버렸다’는 환자의 말을 믿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은 처방 전에 환자의 이력을 볼 수 있는 기능이지만 병원 처방 프로그램과 연계돼 있지 않으면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 안전도움e에 접속해 일일이 조회해야 한다. 조 교수는 “진료 때 이걸 켜놓는 사람은 1%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펜타닐 정제·패치를 처방할 때만 확인 의무가 있다. DUR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투약이력을 보여준다. 의사나 약사 모두 확인 의무가 없었다. 오는 12월24일부터 의사가 마약·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할 때 정보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약사의 확인 의무는 2027년 8월20일부터 적용된다.
장 과장은 말했다. “정신질환을 약으로 치료한다는 건 ‘미션 임파서블’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망상과 비슷해요. 이제 ‘탈처방’ 논의도 시작해야 합니다. 약물을 쓰더라도, 어떻게 줄여갈지를 함께 말해야 해요.” (④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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