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원리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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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피터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969년 펴낸 책 ‘피터의 원리’를 통해, 관료제에서 사람은 자신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승진은 해당 직책과 직무에 걸맞은 능력이 아니라 이전 성과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한 보상이어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간 고위직은 무능해진다고 지적했다.
피터의 원리가 주는 교훈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와 일맥상통한다. 어떤 자리를 제안받았다고, 자신의 그릇을 알지 못한 채 덥석 수락한다면 자신은 물론 조직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하다못해 취미 모임에서조차 흔히 보는 풍경이다.
정치권에서 이런 일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번 개각도 마찬가지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보라. 김 후보자의 ‘코로나19 신약 임상시험 신속처리 부정청탁 의혹’은 김 후보자가 브로커 양아무개씨, 제약사 대주주의 구속영장 기각 판사와 함께 찍은 사진까지 공개되며 더욱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과거 변호사 시절 성범죄 변호 논란도 거세다. 용 후보자는 ‘위성정당 비례대표 재선’이라는 점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선거제도의 허점을 파고든 편법·특혜 아니냐는 비판이다. 게다가 용 후보자는 장관·의원 겸직을 고집하고 있어, 과거 자신의 주장과 달리 소속인 기본소득당의 국고보조금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해당 장관직을 수행하기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들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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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일이다. 장관 후보자 등 ‘예비 고위공직자’가 되면 ‘과거’가 탈탈 털리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이미지가 좋았던 정치인들조차 ‘나락 엔딩’을 겪는 걸 이들 역시 수없이 봤을 텐데 어째서 ‘난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앞서 같은 길을 갔던 이들처럼, 두 사람 역시 ‘메타인지’가 안 돼서일 수 있다. 자신이 법과 여론의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지, 장관 자리에 적합한지,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거절할 용기는커녕 자신을 돌아볼 눈조차 갖지 못한 이들이 자리를 차지한다면 피터의 원리는 진리가 된다. 당사자가 받는 따가운 시선이나 거센 비판은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니 그들이 감당하는 게 당연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그들이나 사람을 잘못 고른 인사권자 때문에 국민들은 언제까지 고통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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