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상속설계 시대 [바른 상속·기업승계 리포트]

유산 상속계획(Estate Planning)은 내가 일군 자산을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무리한 절세는 탈세가 되고, 심각하게 편향된 재산 분배는 상속분쟁으로 이어진다. 최선의 승계 계획도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 테두리가 유독 좁다는 데 있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최대주주 할증평가까지 더해지면 60%에 이른다. 여기에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유류분 제도가 겹친다.
최근 자산가들의 해외 이주가 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이민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는 전세계 자산가들의 이민 현황을 추정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최근 수년간 상위에 랭크되어 왔다. 국세청이 올해 2월 국회에 제출한 공식 통계를 보더라도 재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해외이주 신고자는 2022년 102명에서 2023년 139명, 2024년 175명으로 3년 사이 70% 넘게 늘어났다.
해외 이주의 목적이 자산승계라면, 높은 상속·증여세와 자유로운 재산 분배를 가로막는 유류분을 피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실제로 국경을 넘는 상속설계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수천억원대 자산가가 싱가포르로 이주해 패밀리오피스를 운영한다고 해보자. 싱가포르는 2008년 상속세를 폐지했고 증여세와 자본이득세도 없다. 일정 요건을 갖춘 패밀리오피스에는 지정된 투자소득에 대한 면세 혜택까지 부여하기 때문에, 같은 수익을 냈을 때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는 국내와 현저하게 달라진다.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자산가가 모이는 도시에서는 국내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투자처가 열려 운용수익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증식된 재산을 상속·증여세 없이 승계할 수 있는 것이다.
상속세 가르는 기준은 영주권 아닌 ‘사망 당시 거주지’
먼저 세금에 관하여 살펴본다. 상속세와 증여세는 거주자인지 여부에 따라 과세범위가 달라진다. 대한민국 거주자로 인정되면, 국내 재산은 물론 국외 재산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상속세가 부과된다. 반면 비거주자라면 국내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만 상속세가 부과된다. 따라서 해외로 이주하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국외로 옮기고 비거주자 지위에서 사망하면 우리나라 상속세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비거주자라도 국내에 있는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부담하는데, 그 책임 범위 역시 국내 상속재산으로 한정된다. 대법원도 “피상속인이 비거주자인 경우 구 상증세법 제3조의2 제1항 및 제3항의 ‘상속인 각자가 받았거나 받을 재산’에는 상속세 과세대상인 ‘국내에 있는 상속재산’만 포함된다고 보아야 하고, 상속세 과세대상이 되지 않는 ‘국외에 있는 상속재산’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대법원 2024. 9. 12. 선고 2022두64143 판결).”고 판시해, 비거주자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된 경우 상속세 연대납세의무 한도가 국내에 소재한 재산에 한정된다고 판단했다.
거주자와 비거주자는 외국 영주권을 취득했는지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세법상 거주자성은 국내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소(居所)를 둔 사실이 있는지 여부 등 다양한 사정을 고려해서 판단한다. 따라서 해외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도 대한민국에서 장기 체류하거나 주소를 두고 경제활동을 한다면 거주자로 인정될 수 있다. 판단 시점이 피상속인의 사망 당시라는 점도 중요하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살았더라도 노년에 국내로 복귀해 생활하다 사망했다면 사망 당시 거주지가 대한민국이므로 거주자로서 상속세를 부담하게 된다.
유언으로 준거법 바꾸면 유류분도 피한다
다음으로 상속제도에 관하여 본다. 국내에서 상속설계를 할 때 가장 큰 부담은 유류분이다. 이를 피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다. 유언대용신탁을 설정하면 일정한 요건 아래 유류분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읽히는 하급심 판결이 나오면서 한동안 논의가 확산되었지만(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 1. 10. 선고 2017가합408489 판결), 다른 하급심 판결들과 대법원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기준으로 무상처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 신탁재산도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된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2024. 7. 11. 선고 2019다294466 판결).
2024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상속법이 개정되면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법원의 선고로 상속권 자체를 잃게 하는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이런 사정이 없는 한 피상속인의 의사만으로 유류분을 배제할 방법은 여전히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국경을 넘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외국과 관련된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서는 상속에 관해 다른 나라 법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미법계 국가에는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예가 거의 없고, 대륙법계 국가도 유류분에 관한 규정이 우리보다 훨씬 완화되어 있다. 따라서 준거법이 대한민국법이 아닌 다른 나라 법으로 정해진다면 유류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국제사법은 상속의 준거법을 사망 당시 피상속인의 본국법에 따르도록 하고 있어(국제사법 제77조 제1항), 해외로 이주하더라도 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이상 여전히 대한민국의 민법이 적용된다. 하지만, 피상속인이 유언에 적용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거소지국 법을 명시적으로 지정하면 그 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같은 조 제2항 제1호).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일상거소를 두고 있는 사람이 유언으로 일상거소지법인 미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그곳에서 사망하면, 그 상속에는 대한민국 민법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주법이 적용된다. 국적을 바꾸지 않고도 유류분의 제약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이처럼 국경을 넘어선 Estate Planning은 상속세와 유류분을 함께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하지만 그 이익을 온전히 누리려면 단순히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국내로 되돌아오지 않는 완전한 이주여야 한다. 조건을 모두 갖추었더라도 국내로 복귀해 거주자 지위에서 사망하면 그 효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떠나는 길목의 비용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출국 전 10년 중 5년 이상 국내에 주소나 거소를 둔 대주주가 이민 등으로 출국하면 출국일에 주식을 양도한 것으로 보아 국외전출세를 부과한다. 이주했던 국가에서 우리나라로 복귀하려 할 때 국외전출세가 부과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미국은 시민권을 포기하거나 최근 15년 중 8년 이상 보유한 영주권을 반납하는 사람 가운데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사람(covered expatriate)에게 국외전출세를 부과한다(IRC §877A).
국경을 넘어선 Estate Planning은 우리나라의 무거운 세금과 엄격한 유류분 제도를 넘어서는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다만 나라마다 우리에게는 없던 제약이 있고, 국내에 재산이나 가족이 남아 있다면 계산이 달라지며, 훗날 복귀할 경우 추가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떠나는 결정은 보다 신중해야 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면, 떠난 뒤의 일까지 미리 촘촘하게 준비해야 한다.
[바른 상속·기업승계 리포트]에서는 개인자산의 상속∙증여, 기업승계 전 과정의 설계, 실행, 관련분쟁과 관련된 법률 이슈를 해설합니다. 조웅규 변호사는 상속설계, 상속분쟁, 기업승계 분야를 전문적으로 수행해 온 변호사로, 바른 Estate Planning Center 설립을 주도했으며 현재 자산승계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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