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즘 대가 오윤 작고 40주기 기리는 깊고 넓은 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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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중반 유신시대는 현실을 담은 그림은 모조리 배척하고 질식시켰다. 한국 리얼리즘의 수난기였던 이 험악한 시절, 소설가 오영수의 아들로 서울대 조각과를 갓 졸업한 청년 작가 오윤(1945~1986)은 현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눈과 손의 기운을 벼렸다. 경주에서 흙을 만지고 빚어 신라와 백제의 문양을 계승한 전돌을 만들었다. 이를 서울 종로 한복판 은행 벽에 붙여 공공벽화로 내보였다. 서울 수유리 서민촌에 살면서 집요하게 그곳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을 살펴보았다. 그 단면들을 나무판과 고무판을 깎아 날선 기운이 갈마드는 노동자·서민의 판화로 찍어 시집 등 책 표지에 풀어냈다.
현장에서 수작업하면서도 끊임없이 미학책과 화집을 읽으며 연구했다. 머릿속을 맴돌았던, 자코메티, 무어, 시케이로스 같은 서양미술사 대가들의 핍진한 선과 색감은 이 땅의 전통문화와 만나 새로운 경지를 창출했다. 신라 사천왕사 벽전과 백제 산수문전의 깊고 아득한 문양과 세상을 살피는 관세음보살의 청정수행, 한풀이 굿이 펼쳐지는 무속 세계, 찧고 까불며 세상을 꼬집다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봉산탈춤의 춤사위 등과 차례로 만나 융합되면서 1980년대 초반 한국 민중판화의 전형성을 확보한 걸작들을 숱하게 피워올렸다. 30대 후반 단숨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만 40살인 1986년 5월 생애 첫 판화 개인전에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뒤 간경화로 곧장 숨을 거두었다.

이렇게 장강처럼 흘러온 고인의 삶과 예술의 형성 과정을 지금 서울 평창동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아카이브 1·3층에 차린 특별전 ‘오윤’(내년 2월14일까지)에서 살피게 된다. 명확한 맥락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내 리얼리즘 미술의 거장이 된 오윤의 작고 40주기를 맞아 지난달부터 마련한 자리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유족한테서 기증받은 작품들과 산하 미술아카이브가 수집한 여러 자료들 중심으로 그의 작품 세계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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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작가가 생전에 남긴 작업 노트와 잡문, 원고 등의 내용 등에서 제목을 딴 6부로 전시를 구획했다는 점이다. 그가 탐독했던 홍명희 소설 ‘임꺽정’의 등장인물 이름을 따온 1부 ‘개도치 오윤’, 1985~86년 드로잉 북에 남긴 메모에서 따온 2부 ‘땅에 넋이 있지라’, 1970년대 말 서울 변두리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드로잉에 함께 적은 반야심경의 도입부 경구인 3부 ‘관자재보살행심반야바라밀다시’, 1980년대 초반 작가노트에서 미술의 사회적 언어 기능을 고민하면서 적은 글귀인 4부 ‘응당 무엇을 표현하는가’, 굿과 탈춤 판화를 찍을 당시 담론 글에서 따온 5부 ‘나가 포함된 집단적 흥’, 1961년 고교시절 여행수첩에 적힌 박용철 시인의 시구인 6부 ‘나두야 간다’가 그것이다. 각 부의 독특한 제목들을 보고 각자 다른 이미지와 사연들을 떠올릴 관객들에게, 출품된 작품 31점과 판화 원판, 습작, 드로잉, 노트 등 자료 300여점은 오윤의 삶 굽이굽이 미쳤던 생각과 상상의 단면을 다채로운 경로로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대목은 방대한 드로잉 스케치와 사색 관찰의 기록이 전해주는 사유의 폭이다. 1961년 고교 시절 통도사, 울산, 경주 등의 고적을 누볐던 답사수첩에서 시작해 서울미대 시절 습작과 단상 메모, 재학 시절인 1969년 시인 김지하 등과 감행한 ‘현실동인선언’ 관련 기록, 1970년대 초중반 경주의 테라코타 공방활동 계획, 이후 서울 수유리 작업실의 다기한 인물군상 습작들, 1980년대 이후 전통문화의 연희와 굿판, 민화 등에서 전방위로 펼쳐진 조사와 관찰 기록에 이르기까지 분량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태작이나 부실한 기록을 찾기 어렵고, 미술이 사회적 언어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필생의 화두가 대학 시절부터 정립되어 계속 가지를 치며 사유를 발전시켜나갔다는 점이 놀랍다. 새 시대에 필요한 예술과 미술의 사회적 기능, 제도권 미술의 허위성과 엘리트 주의 비판 등이 읽히는 1980~81년 현실 인식 관련 노트가 이런 맥락에서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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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이 1970년대 중반 이후 심취한 불교 수행사상을 바탕으로 민중예술작업의 밑돌을 놓고 있었다는 사실도 3부의 드로잉과 메모를 통해 알 수 있다. 1976~79년 사이 그린 당대의 남녀노소 군상 드로잉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삽을 잡은 노동자와 젊은 남녀, 아이를 데리고 광주리를 이거나 아기를 안은 여인 등의 모습이 보이고, 그 위쪽 부분에 불교경전 반야심경의 서두에 나오는 구절인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을 굵은 글씨로 적었다. 관세음보살이 세상의 소리와 현상을 살펴보는 지혜로운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이 비어있는 공(空)임을 알고 고통과 재앙을 벗어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윤이 자신의 민중지향적 작업을 불교의 실천적 수행의 성격으로 승화시켰음을 보여준다.
오윤의 장기였던 출판미술도 이 전시에서 돋보이는 영역이다.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1985년 작 ‘칼노래’의 목판화 원판이나 1984년 나온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 삽화로 실렸던 노동자 뒷모습 목판 등 책의 삽화나 표지로 쓰였던 대표작 원판들이 다수 나왔다. 거칠게 후벼판 새김면의 칼맛이 유연한 선묘와 조화를 이룬 오윤의 또 다른 조형적 수작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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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시실에 차린 5부 영역은 영기 서린 민중무속 판화의 원판과, 도깨비를 그린 습작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1985년 판화 대작 ‘도깨비’를 판각하기 전 그린, 북추임새 넣거나 씨름하는 도깨비 습작 그림은 뭉갠 연필 흔적이 그림 곳곳에 선연하게 남아 귀기가 감도는 듯 유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86년 5월 서울 인사동 그림마당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 ‘오윤 판화전’을 열었을 당시 개막 굿판을 찍은 비디오 동영상 중 일부도 40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오윤이 자신의 큰 판화 ‘도깨비’ 앞에 차린 젯상에 절 드리는 모습과 당시 이애주 춤꾼의 열정적인 굿춤판을 볼 수 있다.

출품된 작품 자료의 양이나 아카이브의 의미 등에서 획을 긋는 전시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백색아카이브 공간에 진열장 중심의 평면적 배치에 치중하고, 각각의 전시장도 관람 동선이 이어지지 않고 떨어져 있어, 정교한 큐레이팅이 부재한 ‘표본실 전시’에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크다.
오윤 판화 전시는 서울 인사동 문화거리 들머리의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창작예술인 지원 단체인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주최해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오윤 40주기 판화특별전 ‘새김에서 각인으로: 1946~1986, 오윤의 궤적’(12일까지)이다. 작가가 생전 찍은 판화들과 사후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판화들을 합쳐 187종을 처음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작품 판매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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