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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1, 2026

전어는 좀 더 기다려요…가을 주인공은 ‘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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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는 밥은 갓 도정한 쌀이 본격 산화하기 시작하는 보름 전에 지어 먹는 밥이다. 지난 8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 논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맛있는 밥은 갓 도정한 쌀이 본격 산화하기 시작하는 보름 전에 지어 먹는 밥이다. 지난 8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 논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추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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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전어가 아니라 쌀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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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문을 연 한겨레 유튜브 채널 ‘지식과몰입’의 대표 프로그램 ‘제철과몰입’ 첫 회(상·하편)에서 김진영 식품 상품기획자(MD)가 꺼낸 첫마디다. ‘가을 전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바다의 계절과 육지의 계절을 섞어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추석 무렵 육지는 가을이지만, 수온이 천천히 떨어지는 바다는 아직 늦여름이다. 전어가 진짜 달아지는 건 ‘바다의 가을’인 11월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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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초순 햅쌀 출시 ‘제철’

쌀은 다르다. 벼를 베어 도정한 그 시점에 맛이 ‘100’이 되고, 시간이 갈수록 시나브로 떨어진다. 쌀의 제철은 햅쌀이 나오는 10월 초·중순, 바로 지금이다. “가을 하면 낙지니 전어니 떠올리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맛있는 건 쌀이에요.” 제철과몰입이 첫 주제로 쌀을 고른 이유는 분명하다. 날마다 먹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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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가장 맛있는 쌀은 어떻게 고를까. 중요한 건 도정 날짜다. 도정하고 보름이면 산화가 시작된다. 그래서 김진영 상품기획자는 10·20㎏ 대포장보다 4㎏들이를 자주 사라고 권했다. 대형마트보다 하루하루 도정해 보내는 지역 단위농협 온라인몰이 낫다는 조언도 붙었다. “쌀은 활어랑 비슷해요. 생선은 숙성 회가 유행이지만 쌀만큼은 바로 도정한 것이 맛있습니다.”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과학소설 작가)는 쌀 품종의 역사를 풀었다. 1960년대 허문회 박사 등이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인디카와 자포니카를 교배해 만든 통일벼는 일본 과학자들도 해내지 못한 성과였다. 지금은 국내에서 명맥이 끊겼지만 아프리카에 같은 계통 품종이 보급되고 있다. “인디카와 자포니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한국 농학자들인 셈이죠.” 이후 아키바레(추청) 전성기를 거쳐 1990년대 동진 시리즈가 나왔고, 요즘 경기도에선 참드림이 추청을 밀어냈다. 해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장려 품종을 지정하니 쌀에도 유행이 있는 셈이다.

기록에 남은 토종벼만 4000여종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씨는 토종벼에 주목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쌀은 모두 개량종이지만, 기록에 남은 토종벼는 4천종에 이르고 실제로 복원해 기르는 것만 400종쯤 된다. 일제강점기 조사에선 1400가지가 넘었다. 지역마다 마을마다 심는 벼가 달랐다는 뜻이다. “옛날에 부산에서 한양까지 걸어 올라간다고 치면, 주막마다 밥맛이 달랐다는 얘기예요.”(김진영 상품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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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이란 오래된 씨앗이 아니라 농민이 제 논에서 씨를 받아(자가채종) 어머니에서 자식으로 건네온 종자를 말한다. 그 맨 앞을 지키는 건 여성 농민들이다. 맛과 다양성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농민이 사는 종자는 대부분 두 품종을 교배한 잡종 1세대, 이른바 ‘F1’이다. 씨를 받아 다시 심으면 같은 작물이 나오지 않아 해마다 새로 사야 하고, 이것이 농산물값을 밀어올린다. 네덜란드가 원종을 쥐었던 시절 파프리카 씨앗 1g 가격이 금보다 비쌌던 것도 그래서다. 국내에서 육종에 성공하자 값이 내려갔다. “종자주권은 농민에게 있어야 합니다.”(김진영 상품기획자)

숫자도 흥미롭다. 1980년대 중반 120㎏을 넘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금 56㎏으로 고기 소비량(61㎏)보다 작다. 밥그릇이 작아진 게 입맛 탓만은 아니다. 곽재식 교수는 식당 공깃밥 크기가 전통이 아니라 1970년대 정부가 쌀 소비를 억누르려 일부러 줄인 결과라고 했다.

한겨레 새 유튜브 프로그램 ‘제철과몰입’ 촬영 현장. (왼쪽부터) 진행을 맡은 방송인 권주현씨, 김진영 식품 상품기획자(MD), 정은정 농촌사회학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교수. 사전녹화 영상 갈무리
한겨레 새 유튜브 프로그램 ‘제철과몰입’ 촬영 현장. (왼쪽부터) 진행을 맡은 방송인 권주현씨, 김진영 식품 상품기획자(MD), 정은정 농촌사회학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 교수. 사전녹화 영상 갈무리

“버려야 할 물건은 공깃밥 온장고”

거꾸로 김진영 상품기획자는 “공깃밥만 없애도 1인당 쌀 소비량이 2㎏은 늘 것”이라고 했다. 일본 식당은 밥 짓는 솥을 따로 두지만, 우리는 지어놓은 밥을 공기에 담아 뚜껑을 덮고 온장고에 넣는다. 갇힌 열기에 수증기가 맺혔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니 밥알이 눌려 떡밥이 된다. 그가 식당 주방에서 가장 먼저 버릴 물건으로 온장고를 꼽은 이유다. “백반집에서도 밥이 주인공이 아닌 거죠. 반찬만 좋으면 밥은 안 따지니까요.”(정은정씨)

이야기는 밥상에서 출발해 농민의 현실로 이어졌다. 한 사람이 1년 먹을 쌀은 논 30평, 가로세로 10m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땅을 지키는 농민은 20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평균연령은 70살을 넘겼다. 1㏊(3천평)를 농사지어 손에 쥐는 돈이 1년에 500만원이 안 된다는 기사도 있다.

정은정씨는 “규모화하면 되지 않냐는 말은 먹는 사람 입장만 강요하는 것”이라고 했다. 칠순 농민에게 축산이나 원예로 바꾸라는 건 직업을 바꾸라는 얘기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 먹는 게 싸게 먹히는데 왜 저 연세에 끝까지 쌀농사를 짓는지 직접 여쭤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농민으로 태어나서 내 양식조차 생산하지 못하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잖아.”

올해의 쌀은 그 마음에서 올라왔다. 가장 가까이 있어 가장 모르고 지나쳤던 식재료의 제철이, 지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제철과몰입’은 한겨레의 새 유튜브 채널 ‘지식과몰입’의 첫 프로그램이다. 식품 상품기획자(MD), 과학자, 생물학자, 사회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가을과 겨울을 대표하는 주요 식재료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인류학적·영양학적 배경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매주 목요일 새로운 콘텐츠로 시청자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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