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있어도 못 씁니다”…연령·급여 장벽에 갇힌 크론병 환자들의 호소 [건강한겨레]
입에서 항문까지 염증 발생하는 평생 질병
한 종류의 약 몇 년 사용하면 효과 떨어져
일상 지키려면 선택지 넓히는 게 정말 중요
외국선 어린이 사용 가능한데 한국선 불허
판매 허용됐지만 급여 안된 약은 ‘그림의 떡’
“환자 잘못 없는데 약 못쓰는 상황 개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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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치료제가 정말 절실합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연)가 지난 16일 저녁 7시부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강당에서 진행한 제27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터져나온 크론병 환자와 가족들의 목소리다.
환자샤우팅카페는 환자와 가족이 치료 과정에서 겪은 고충·울분·피해를 마음껏 이야기하고(Shouting), 참석자들이 함께 위로하며(Healing),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Solution) 소통공간이다. 환자가 무대에 올라 의료 현장에서 겪은 피해와 어려움을 증언하면, 전문가와 환자단체, 청중이 함께 듣고 해결책을 모색해온 것이 특징이다. 2012년 6월 항암제 투약오류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증언에서 시작된 이후 환자안전법과 중증질환 산정특례 개선, 폐암치료제 건강보험 등재 등 여러 제도 변화의 발화점이 되어왔다. 이날 샤우팅 주제가 바로 ‘크론병 환자의 치료제 접근권’이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어디에서나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할 수 있는 염증성 장질환으로, 증상이 악화와 호전을 반복해 장기간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 완치 개념보다는 평생 관리가 필요하며, 특히 소아·청소년 환자는 질환 자체와 영양 상태 악화로 성장과 발달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생물학적제제를 포함해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만, 소아·청소년에게 허가된 약제는 제한적이고, 성인에게 허가된 신규 치료제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늦어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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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샤우팅카페는 샤우팅을 한 두 명과 자문단 세 명으로 구성됐다. 샤우팅에는 소아 크론병 환아 정로운 군의 아버지 정찬희 씨와 크론병 환자이자 크론가족사랑회 회장인 김정은 씨가 나섰다. 자문단에는 박성민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와 배은영 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그리고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참여했다. 사회는 이은영 환연 이사가 맡았다.

첫 번째 샤우팅에 나선 정찬희 씨는 수영 국가대표를 꿈꾸는 아들 정로운 군(만 10살)이 ‘쓸 수 있는 약이 없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소아 크론병 치료제의 적응증 확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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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 군은 만 5살에 크론병 진단을 받았지만 당시 필요한 생물학적제제의 허가 연령에 해당하지 않아 만 6살이 될 때까지 약 1년을 기다린 뒤에야 항TNF 제제(종양괴사인자 억제제)인 램시마(인플릭시맙)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약 3년이 지나면서 약물 농도가 떨어지고 치료 효과가 감소해 다시 건강 상태가 나빠지고 있지만, 로운군이 사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제제는 램시마와 휴미라(아달리무맙) 두 종류뿐이라 같은 계열 약제를 돌려 쓰는 것 외에는 사실상 선택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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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샤우팅에서 거듭 언급한 치료약은 기존 항TNF와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는 생물학적제제 스텔라라(성분명 우스테키누맙)였다. 스텔라라는 국내에서 성인 크론병 치료제로 허가돼 있지만, 소아 크론병에는 허가되지 않아 로운 군과 같은 아이들은 사용할 수 없다.
정 씨는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서는 스텔라라의 소아 크론병 적응증이 확대된 점을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신속하게 허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로운 군의 어려움은 약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식사 제한 때문에 학교 급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면역억제 치료와 감염 위험 탓에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에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럼에도 로운 군은 수영 국가대표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이어가며 “수영장은 학교에서 얻지 못하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주는 곳”이라고 말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다.
정 씨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처럼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며 “치료제의 선택권 확대는 그런 평범한 일상을 지켜 주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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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샤우팅에 나선 김정은 크론가족사랑회 회장은 약 20년 동안 크론병과 함께 살아오며 겪은 치료 경험과 선택지의 의미를 전했다.
김 회장은 2007년 크론병 진단 후 합병증으로 2013년에만 두 차례 이상 장 절제 수술을 받았다. 김 회장은 “이후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통해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지난해에는 부작용으로 치료제를 변경하면서 새로운 치료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환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크론병 환자들은 평생 질환을 관리해야 하고, 처음에는 효과가 있던 치료제도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감소하거나 부작용으로 변경해야 할 수 있다”며 “치료 선택지가 하나라도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은 환자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특히 짙은 아쉬움을 표한 치료제는 IL-23 억제제 계열인 스카이리치(리산키주맙)다. 스카이리치는 기존 건선 치료제로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약이다. 이 약은 2023년 11월 중등도에서 중증 성인 크론병 치료제로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크론병 적응증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는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들이 비급여 치료비 부담으로 이 약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 회장은 같은 IL-23 억제제 계열인 트렘피어(구셀쿠맙)가 최근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받은 점은 환영하면서도, “성분과 환자별 치료 반응이 다른 만큼 스카이리치에도 합리적인 급여 결정이 필요하다”며 “특정 약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환자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치료제를 선택하고 지속할 기회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요구했다.

안기종 대표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이미 필요한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는데도 허가 연령 제한이나 건강보험 급여 문제로 환자가 사용하지 못한다면 제약회사와 정부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며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운영되는 우리나라에서 환자의 잘못은 전혀 없는데도 건강보험 급여가 지연된다는 이유로 필요한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앞으로 크론가족사랑회 등 관련 환자단체와 함께 스텔라라 소아 적응증 확대 신청과 식약처 심사 진행 상황, 스카이리치 건강보험 급여 평가 과정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정부와 제약회사에 공식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후속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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