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도감] ‘쫄깃쫄깃~ 오동통통~’ 캐릭터의 반전···라면 ‘너구리’ 봉지에는 너구리가 없다🦝
‘야생의 ○○가 나타났다!’
숲이 아닌 도시 한복판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동식물을 마주칩니다. 어떤 생명은 도시로 밀려들고, 어떤 생명은 하루아침에 베이고 뽑혀 나갑니다. [이웃도감]은 도시에서 인간과 어색하게 공존하는 동식물을 기록합니다.
지난해 11월13일 서울 양천구 서서울호수공원에서 너구리가 앉아 있다. 우혜림 기자
라면 ‘너구리’ 캐릭터도, <가오갤> 로켓도 너구리가 아니다
라쿤. 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산림지역이나 강, 개울 부근 풀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너구리는 한반도 전역에 서식해 온 토착종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너구리가 한때 ‘라쿤 카페’ 등에서 만날 수 있었던 라쿤과는 전혀 다른 종이라는 점입니다.
최태영 박사의 책 <동물의 향기, 인간의 풍경>에서 자세한 설명을 찾았습니다. “원래 너구리는 동아시아에, 라쿤은 북미에만 산다. 너구리는 갯과, 라쿤은 라쿤과에 속한다. 우선 영어 이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라쿤은 ‘라쿤’이고, 너구리는 ‘라쿤 도그’다. 즉 영어로 너구리는 ‘라쿤 닮은 개’라는 뜻인데, 여기서 우리는 유럽인이 라쿤을 먼저 알고 너구리를 나중에 알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주인공인 ‘로켓’도 라쿤입니다. 너구리는 꼬리에 줄무늬가 없고 짧고 뭉툭합니다. 심지어는 농심 ‘너구리’ 봉지에 그려진 캐릭터도 꼬리에 줄무늬가 있는 라쿤입니다.
서울살이가 너구리 버릇을 바꿔놨다
지난해 11월13일 서울 양천구 서서울호수공원에서 너구리가 앉아 있다. 우혜림 기자
야행성인 너구리는 주로 밤에 나타납니다. 인천대 연구진이 홍천·양평·보령·청양에서 너구리 23마리를 GPS로 추적한 결과, 너구리는 사람이 주로 활동하는 낮에는 산림과 초지 등 사람이 적은 곳에 머물다 사람의 활동이 줄어드는 시간에는 도시나 농업지역을 더 많이 이용했습니다. 서울연구원 연구 결과도 비슷합니다. 연구원이 서울 시내 58개 지점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했더니, 너구리가 촬영된 332회 중 약 90%가 오후 7시~오전 5시 사이에 집중됐습니다.
다만 도시 너구리는 농촌 너구리보다 낮에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서울대 산림환경학과 야생동물학연구실의 최서윤 연구원은 2022년부터 65마리 너구리의 위치를 GPS로 추적한 결과,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대를 피하는 농촌 너구리와 달리 도시 너구리는 낮 시간대 활동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최 연구원은 “사람의 시간을 피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활동 패턴 자체에 익숙해진 결과”라며 “도시 너구리에게 사람은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원래 너구리는 갯과 동물 중 드물게 겨울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진 종입니다. 다만 깊은 동면을 하는 것은 아니고, 겨울철 활동량을 크게 줄이는 얕은 겨울잠에 가깝습니다. 특히 먹이를 구하기 쉬운 도시에 사는 너구리는 겨울에 활동하는 모습이 자주 관찰됩니다.
너구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감염병 매개자는 맞습니다만
서울시 안내문
동네 생활 앱인 ‘당근’에는 ‘너구리를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집니다. 너구리를 목격했다는 게시글에는 으레 “가까이 가면 안 된다. 광견병 걸린다”는 댓글이 달립니다.
늑대와 여우는 우리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고 개는 사람이 관리하는 시대, 너구리는 도시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야생 갯과 동물이자 광견병 매개동물입니다. 광견병은 치사율이 매우 높지만, 다행히 백신이 있습니다. 방역 당국은 매년 백신을 넣은 미끼를 너구리 서식지에 살포합니다. 덕분에 국내 동물 광견병은 2013년 마지막 발생 이후 10년 넘게 보고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사람의 공수병 발병이 마지막으로 보고된 것은 2004년입니다.
너구리는 포유류 피부에 파고드는 기생충인 ‘개선충’도 옮깁니다. 털이 빠진 너구리는 개선충에 감염된 개체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도 감염되면 반점이나 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만 동물에 기생하는 개선충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피부에서 지속해서 번식하지 못합니다. 특히 반려동물이 개선충에 감염되지 않게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을, 길 위에서 죽다
강화군 석모도 순환도로에 너구리 한마리가 길바닥에 누워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구리는 고라니에 이어 두 번째로 로드킬을 많이 당하는 동물입니다.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2019~2023년 전국 로드킬 정보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너구리 로드킬은 5년간 1만132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10월이 2316건(20.4%)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다음엔 9월이 1831건(16.2%), 11월이 1555건(13.7%)이었습니다. 가을철인 9~11월에 전체의 절반가량이 집중된 건데요, 연구진은 봄에 태어난 새끼 너구리들이 가을에 부모에게서 독립해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할 때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도로는 너구리에게 넘기 어려운 벽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이 수도권 너구리 226개체의 유전적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너구리들은 총 세 개의 개체군으로 나뉘었습니다. 연구진은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와 서부간선도로 등이 너구리의 이동을 가로막아 개체군 사이에 유전적 단절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거대한 도로가 단순히 교통사고 위험을 넘어 너구리의 서식지를 단절시키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시 너구리는 농촌 너구리보다 행복할까요? 최 연구원에 따르면 도시 너구리들은 농촌 너구리보다 체중과 영양 상태가 양호했지만, 차량 충돌과 질병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을 위험은 더 컸습니다. 농촌 너구리는 도로를 강하게 회피하는 반면, 도시 너구리는 도로를 피하는 경향이 약하고 횡단 빈도도 높았습니다. 너구리들이 좁은 서식지에 밀집하면서 개체 간 접촉이 늘고, 개선충증이 확산할 위험도 커질 수 있습니다. 풍부한 먹이로 야생동물을 끌어들이지만 정작 생존에는 불리한 도시가 너구리에게는 ‘생태적 함정’인 셈이라고 최 연구원은 말했습니다.
이미지 |챗GPT
■참고문헌
곽재식, 『팔도 동물 열전』, 다른, 2025
최태영, 『동물의 향기, 인간의 풍경』, 돌베개, 2026
최서윤, 「도시의 어색한 이웃, 너구리: 우리 동네 야생동물의 모순된 일상에 대하여」, 서울환경연합 제2차 다종도시포럼 발표자료, 2026
송의근·김기현·김세희·이한비·김지윤, 「로드킬 정보시스템으로 수집된 너구리의 로드킬 발생 현황 연구」, 『GEO DATA』 제6권 제4호, 2024.
유동균, 「너구리(Nyctereutes procyonoides)의 활동과 인간의 영향을 포함한 환경요인의 연관성」, 인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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