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재단 "2차 시흥농민봉기, 광명 철도항쟁 명명해야"

이원혁 이사장 "당시 시흥군, 현 광명시 일대…핵심 연루자도 광명 주민"
(광명=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1904년 일제의 경부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자행된 노동자 강제동원과 수탈에 맞서 일어난 대규모 민중운동인 '제2차 시흥농민봉기'의 명칭을 '광명 철도항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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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캡처]
25일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1904년 9월 14일 안양천 한천교 일대에 집결한 민중 수천 명은 일제의 철도 노역 동원과 부패 관료의 횡포에 맞서 시흥 관아를 습격하는 등 거세게 항거했다.
이 사건은 1898년 발생한 반봉건 농민운동과 묶여 그동안 학계 등에서 '1·2차 시흥농민봉기'로 불려 왔다.
이 이사장은 2차 사건이 1차 때의 단순 농민운동과 구별되는 일제에 대항한 노동 항쟁이며, 주도 세력과 공간적 배경 역시 현재의 광명시 일대라는 점에서 기존 명칭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 당시 시흥군은 현재의 광명시와 서울 금천·구로구, 안양시 등을 아우르는 행정구역으로 현재의 경기 시흥시와는 관할 구역이 겹치지 않는다.
또한 사건의 도화선이 된 언론 투서를 작성한 남중희와 42개 동리에 사발통문을 돌려 주민을 규합한 민용훈, 주모자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성우경 등 핵심 연루자의 절반 이상이 당시 광명 주민이었다는 것이 재단 측의 설명이다.
'농민봉기'라는 성격 규정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 등이 이 사건을 철도노동자 징발에서 비롯된 대한제국 말 초기 노동운동 사례로 평가하고 있는 만큼 '철도항쟁'으로 명명하는 것이 역사적 실체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광명 철도항쟁'으로 정립될 경우 광명의 항일운동사는 1919년 3·1운동에서 15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KTX 광명역을 중심으로 철도 허브로 성장한 광명시가 120여년 전 철도 침략에 맞선 저항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학술 검증과 인근 지자체와의 공동 기념체계 구축 등을 제안했다.
KBS PD 출신으로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이 이사장은 2013년 항일영상역사재단을 설립한 뒤 독립운동 관련 기록을 디지털 콘텐츠로 구축하는 사업 등을 이어오고 있다.
gaonnuri@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6년09월25일 09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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