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한인 살인' 10주기…주범 처벌 뒤 추모공원 조성은 지연

무기징역 확정·도주 주범 검거로 일단락…올해 유족 홀로 현장 찾아
"남편 영정 볼 면목 생겨…일상으로 돌아가되 형 집행 끝까지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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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인 사업가 고(故) 지익주 씨 살인 사건 10주기를 맞아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경찰청(PNP) 본부 내 한쪽에 위치한 고목 아래에 유족 측이 조용히 두고 간 보라색 꽃다발과 하얀색 초가 놓여 있다. [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무기징역 확정과 약 2년간 도주 중이었던 주범 검거까지 끈질긴 추적 끝에 사법적 정의는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참극 현장인 필리핀 마닐라 경찰청(PNP) 본부 내 추모 공원 부지에는 푸른 천막과 자재들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홀로 찾아온 유족의 향불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2016년 10월, 마닐라 경찰청 본부 한복판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한인 사업가 고(故) 지익주 씨. 그로부터 꼬박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일 동포사회에 따르면 유족이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사건 발생 10주기를 맞아 현장을 찾았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지난여름 필리핀 열도를 덮친 기록적인 태풍과 장마로 인해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추모 공원 공사 현장이었다.
오는 12월 사건 현장에 조성되기로 했던 공식 추모 공간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여전히 공사가 멈춰 서 있었고, 유족은 차분하게 홀로 향을 사르며 조용히 고인에게 추모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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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한인 사업가 고(故) 지익주 씨 살인 사건 10주기를 맞은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 경찰청(PNP) 본부 내 추모 공원 공사 현장. 당초 연내 완공을 목표로 조성 중이었으나, 지난여름 필리핀을 덮친 기록적인 태풍과 장마의 영향으로 공사가 일시 중단돼 푸른 천막과 자재들이 쌓여 있다. [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폭우에 멈춰 선 PNP 추모 공원…내년 상반기 완공될 듯
당초 필리핀 경찰청은 한국인 대상 범죄에 대한 반성과 재발 방지 의지를 담아 본부 내부 부지에 추모비 설치와 함께 공식 추모 공원을 조성해 올해 안으로 완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 여름 태풍과 장마 등으로 인해 기반 공사 현장과 자재들이 크게 손상돼 공사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우리 정부는 필리핀 당국이 내년 2월 등 상반기 내 추모 공원 완공을 목표로 재복구 작업과 공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날 공사 현장 한쪽에 자리한 커다란 고목 아래에는 10주기를 맞아 유족 측이 조용히 현장을 찾아 두고 간 보라색 꽃다발과 하얀색 초 하나가 정갈하게 놓였다.
올해 지씨의 10주기에는 과거처럼 필리핀한인총연합회나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이 참여하는 공식 추모제는 열리지 않았다.
오랜 세월 법정 투쟁과 공론화 과정에서 피로가 누적된 유족 측이 "이제는 조용히 남편을 추모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기 때문이다.
유족 최경진(59) 씨는 "주변에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가서 꽃을 놓아두고 촛불을 켠 채 한동안 서 있었다"며 "10년이 됐는데도 현장에 서니 계속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다.
유족은 지난 6월 도주 중이던 주범이 검거됐을 당시 "이제야 남편 영정을 제대로 바라볼 면목이 생겼다"며 오열한 바 있다.
유족은 최근에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주범의 면회까지 직접 다녀오며 10년에 걸친 사법적 단죄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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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EPA=연합뉴스) 2016년 10월 필리핀에서 발생한 현지 경찰관들의 한인 사업가 살인 사건을 규탄하는 인권 단체의 시위가 2017년 1월 마닐라 경찰청 앞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10년의 끈질긴 공론화가 바꾼 변화…사법 정의·치안 결실
이 사건이 묻히지 않고 필리핀 사법 역사의 이정표로 남게 된 데에는 지치지 않는 유족의 투쟁과 함께 오랜 기간 이어진 언론의 연속 보도와 공론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6년 사건 발생 직후부터 1심 무죄 판결의 허점 지적, 2심 종신형 판결과 주범 도주 파문 보도, 대법원 확정판결과 주범 검거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향한 보도가 이어졌다.
특히 결과가 뒤바뀐 2심 판결 직후 주범의 도주 사실이 크게 보도되면서 한-필리핀 사법당국의 허술한 공조 체계와 사법주권의 한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는 국회 국정감사 쟁점화는 물론 양국 정상회담에서 적극적인 대응과 범인 신병 확보 요청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언론의 이러한 끈질긴 공론화와 지속적인 관심은 현지 사회와 치안 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닐라·세부·앙헬레스 등 한국인 밀집 지역 8곳에 24시간 체제의 '코리안 헬프 데스크'가 설치됐다. 폐쇄회로(CC)TV와 오토바이 순찰대, 한-필 경찰 공조 체계 등도 구축됐다.
운영 1년을 맞이한 헬프 데스크가 최근 1년간 한인 피해 사건 범죄 해결률 100%를 기록하는 등 현지 동포사회의 든든한 방패로 자리 잡은 것도 이러한 아픈 역사 속에서 빚어진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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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 "형집행 끝까지 지켜볼 것"…'수형자 이송조약' 등 과제 남아
하지만 재외공관과 수사기관이 타국에서 수사권이나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형사사법 전문가들은 범죄인인도조약과 형사사법공조조약에 이어, 양국 간 사법 협력의 마침표를 찍을 '수형자 이송조약'의 조속한 체결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범죄자가 본국에서 엄정하게 형을 복역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완성돼야 재외국민 대상 범죄 억제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은 주범 검거 직후부터 필리핀 대통령실과 법무부 등에 주범에 대한 철저한 형 집행을 주문하고 있다. '마약왕' 박왕열 송환 당시 필리핀 측이 보여준 협력 선례를 바탕으로 형 집행 과정을 지속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10년에 걸친 긴 싸움 끝에 주범 검거와 법원의 확정판결, 추모 공원 조성 합의라는 결실을 끌어낸 유족과 현지 동포사회는 이제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유족 측은 "이제는 우리 가족도, 동포사회도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만 사법 정의가 종이 위의 판결문으로 끝나지 않도록 끝까지 감시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유족 최씨는 "가해자들이 실제 교도소에서 법이 정한 징역형을 엄정하게 살고 있는지, 솜방망이 처벌이나 특혜 수감 없이 제대로 형이 집행되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10년 전 한 한인 사업가의 희생은 끈질긴 진실 추구와 유족의 투쟁을 거쳐 필리핀 치안과 사법 시스템을 바꾸는 이정표가 됐다. 비바람으로 잠시 멈춘 추모 공원 조성 현장에는 사법 정의 실현이라는 값진 성과와 남겨진 이들의 담담한 추모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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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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