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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 2026

[단독] 퀴어 시인들, 국내 첫 문집 ‘예사롭지 않아’ 출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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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문학주간 행사(아르코 주관)의 하나로 지난달 19일 저녁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진행된 ‘옆집 사는 퀴어’ 대담. 왼쪽부터 시인 송희지·권누리, 작가 오종길·이아로, 사회를 본 시인 김현. 이날 청중 가운데 성소수자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 최근 전역했다는 한 남성의 “‘언니’라는 단어와 달리 ‘형’이란 단어는 남성성 때문에 꺼려진다”는 객석 질의에, 송 시인은 ‘12·3 계엄’ 뒤 윤석열 사진 밑에 “어, 형이야”라고 적힌 한줄 문장에 “혐오감을 느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 뒤 쓴 시가 ‘금속음―음경의 시’다. 아르코 제공
2026년 문학주간 행사(아르코 주관)의 하나로 지난달 19일 저녁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진행된 ‘옆집 사는 퀴어’ 대담. 왼쪽부터 시인 송희지·권누리, 작가 오종길·이아로, 사회를 본 시인 김현. 이날 청중 가운데 성소수자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 최근 전역했다는 한 남성의 “‘언니’라는 단어와 달리 ‘형’이란 단어는 남성성 때문에 꺼려진다”는 객석 질의에, 송 시인은 ‘12·3 계엄’ 뒤 윤석열 사진 밑에 “어, 형이야”라고 적힌 한줄 문장에 “혐오감을 느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 뒤 쓴 시가 ‘금속음―음경의 시’다. 아르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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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단지에 성소수자, 그러니까 퀴어가 있던가, 보이던가? 퀴어 당사자들도 마주치기 쉽진 않은 모양이다. “주변엔, 이웃 중엔 왜인지 없더라” 입을 모은다.

“가까이 노인 퀴어가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요. 정신적으로 돌봄을 받는 느낌을 공유하면 좋겠습니다.”

“전 퀴어로서 좀 부족한 사람인데… 그래서 퀴어 친구를 별로 못 사귀고 문화도 많이 알지 못했어요.”

“‘부족한 퀴어’란 뭘까요? (웃음) 저도 ‘게이티’가 별로 나지 않아서, 오늘 양말에 ‘퀴어티’ 좀 입혔어요.” (좌중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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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들로 권커니 잣거니, 지난달 19일 저녁 7시 서울 대학로 한편에서의 퀴어들 대담은 시작되고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주최한 2026년 문학주간 ‘곁눈질’의 나흘차 프로그램. 이름하여 ‘옆집 사는 퀴어’다. ‘퀴어’ 작가들이 이만큼 한데 모인 문학 행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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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색 양말을 반바지에 받쳐 신은 시인 김현이 사회를 보고, 시인 송희지·권누리, 작가 오종길·이아로가 나란한 무대와 객석은 작가 자신들뿐 아니라, 여러 청중들에게도 잠시나마 안전한 공간이었던 모양이다. “안전”은 작가들 사이 실제 오갔던 말이거니와, 그날 60석을 채운 청중은 세상 각박한 ‘안전감’을 그러모았다 풀어놓은 듯한 모종의 실내 공기로 낮게 들썩였다.

2018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기획한 박상영-김봉곤의 대담부터 퀴어 소설가들의 2~3인 행사는 드물게 있어 왔다. 시인들이 무대에서 보인 건 훨씬 뒤다. 퀴어 소설가보다 시인이 더 희소해서일까, 소설보다 시가 더 ‘위험’해서일까. “6학년 때, 나는 건전한 동성애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기억의 습작’, 시집 ‘잉걸 설탕’)는 시인 송희지(24)조차 “유년 시절 내 음경을 힘껏 당겨본 적 있다 갈아 끼우려고” “소년 시절 내 음경을 갈라본 적 있다 이해해보려고”라며 은유(‘금속음―음경의 시’, 시집 ‘시 보다 2026’)하고, 세상 각층의 “신호등을 깨뜨리고 싶다”(‘나의 시적 전경’, 시집 ‘잉걸 설탕’)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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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간된 ‘예사롭지 않아’는 퀴어 시인들이 집결해 “칼춤 추”듯 써 모은 문집이다. 19일 대담 중 시집을 소개한 송희지와 김현의 우스개를 인용한 것인데, 읽자면 ‘칼’은 억압적 세계를 향한 노혐보다, 저마다의 ‘퀴어한 정체’를 난도하여 직시하고 정체성 너머를 보는 예리한 감각적 사위에 가깝다.

시와 산문으로 엮어진 ‘예사롭지 않아’에 참여한 시인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리윤·김선오·정재율·황인찬·권누리·송희지·김현. 작가·아르코 제공, 한겨레 자료 사진
시와 산문으로 엮어진 ‘예사롭지 않아’에 참여한 시인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리윤·김선오·정재율·황인찬·권누리·송희지·김현. 작가·아르코 제공, 한겨레 자료 사진

“일곱 퀴어 시인의 시와 산문”이라는 표명대로, ‘예사롭지 않아’는 국내 최초의 ‘퀴어 시인 앤솔러지’다. 20대부터 40대 중반에 이르는, 시인 권누리·김리윤·김선오·김현·송희지·정재율·황인찬이 참여했다. 혐오와 대체로 불가한 안전, 벼락같은 에로스와 대체로 지난한 연애, 하염없는 사랑과 대체로 불가한 결혼, 원가족과의 ‘원거리’, 그 반면 또 달리 소외된 이들-가령 난민, 참사·전쟁 희생자 등-과의 원초적 지근거리 등을 고백하기에 시는 에둘러도 진솔하고, 산문은 더덜없이 적나라하다.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을 꼽으라면 ‘안전’ 아닐까. 사랑하고 싶다, 살고 싶다의 속내가 ‘안전’일 터, ‘안전’은 안전하지 않은 상태의 숱한 사례들에 의해 오직 귀납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다.

“어느 날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고 어느 날엔 모르는 사람들에게 맞는 꿈을 꾸었다 어떤 것이 먼저였는지 헷갈렸다 친구 한명이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고 해명해 주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갔고 나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친구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밥을 먹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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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율의 시 ‘성당과 식물’이다. 이 시의 주석과도 같은 산문이 ‘형체 없는 슬픔’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 종종 사랑에 빠졌을 때 내 자신이 유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번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또 그렇게 매번 살고 싶어 했다.”

여기서 미래는 ‘시간’으로 읽히지 않는다. 미래는 엄연한 ‘공간’이다. 숱한 성소수자들이 그 공간으로 ‘이주’하길 포기해 왔다. 황인찬·김선오·김리윤·권누리 등의 시든 산문에든 구체적 공간성이 연루하는 까닭일 것이다. 더불어 책엔 개별적으로 내밀했을 일화들이 품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일 리 없겠다. 황인찬의 말대로 “퀴어 정체성이란 어느 좌표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꾸 움직이고 흔들리며, 이리저리 뒤집혀버리기도 하는 것”이라면, 어떤 이유에서건 ‘정상 사회’를 불온하다 감각하는 누구건 퀴어다.

‘정상 사회’는 누구의 공간인가, 그 흔한 ‘집’이 왜 누군가에겐 집이 될 순 없는가. 가장 퀴어한 질문이 이 문집에 있는 셈이다.

“꿈은 너무 기니/ 우리 딸을 하나 가져요 여보/ 딸?/ 그래요 딸/ 그게 뭔지 몰라도 그냥 하나/ 당신과 나/ 우리도 딸이었잖아//…// 둘은 자매세요 물으면 조용히 웃고/ 우리 딸 잘 있지 묻는 전화에/ 응 잘 있다 너무 잘 지낸다/ 대답할 수 있는/ 우리를 무겁게 따라다니는/ 몸이라는 입체와/ 입체를 따라다니는 우연과 연약함” “…/ 시끄럽게 웃으며 새 형광등을 계산하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시간이 흘렀는지/ 구하기 쉬운 동물들을 구조하고/ 그 애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밥 먹고 먹이고/ 우리 중 먼저 잠든 동물의 잠은/ 다른 누군가 지켜보면서/ 이 집을 짓는 데/ 평생을 사용했는지”

하지만 알잖는가. ‘모두의 정상 사회’는 만불성설이요, 단 한번도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을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김리윤은 저 아름다운 ‘집의 원리’를 이렇게 더 쓴 게 아닐까.

“껴안기는 일종의 웅크린 몸이고/ 웅크린 몸 곳곳에는 어둠이 숨어 있어서/ 자꾸 뭘 잃어버리게 되잖아” “당신 등을 밟고 새것이 된/ 불이란 불은 모두 켜두어도/ 어두운 구석을 만들고야 마는/ 우리의 웅크린 몸이 있소”(‘웅크리기 껴안기’)

‘예사롭지 않아’를 혹자는 퀴어로부터의 문집이라 규정할지 모른다. 아니다. 시와 긴 산문은 무엇으‘로부터’ 쓰인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까지’ 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여 맨 먼저 “그제는 비관했다. 어제는 낙관했다. 오늘 아침엔 낙관했고, 밤엔 비관할 것이다.”(산문 ‘스와이프’,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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