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믿고 따라오라”고 호소하지만… [문정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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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 연세대 명예교수
지난 8월10일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차관은 필리핀 마닐라의 한 싱크탱크 연설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우리는 아시아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손을 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미국의 변함없는 목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리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제1도련선을 따라 거부 기반 억지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사실상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억제하겠다는 기존 전략을 재확인한 셈이다.
또한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간주하는 것은 커다란 오판이라고 지적하며 트럼프 행정부가 상식에 기초한 유연한 현실주의를 전개하고 있는바, 미국의 안보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역내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도 공동 방어를 위해 합당한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없는 중견국 동맹’이라는 담론을 “허황하고 무익한 시도”라고 규정하고, “진정한 억제력은 실제로 배치된 하드파워와 이를 사용할 정치적 의지에서 나온다”며 미국만이 그럴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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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 8월5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시에서 개최된 미 전략사령부 주최 ‘억지 심포지엄’ 비공개 간담회에서 콜비 차관은 미국의 핵전략과 관련해 다음 세가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첫째, 재래식 전쟁이 핵무기 사용으로 확전할 수 있는 지역 전쟁이 미 본토에 대한 대량 공격보다 더 우려스럽다. 둘째, 이와 관련해 저위력 전술핵 무기 사용이 하나의 합리적인 핵 선택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최고 지도부에서 이러한 핵무기 사용 지침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전술핵 무기를 한국이나 일본에 전진 배치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콜비 차관의 이러한 메시지는 ‘인태지역 방어는 미국의 최우선 과제이며 이에 대한 미국의 능력, 의도, 의지를 의심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그러나 몇 가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미국이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버드대학 스티븐 월트 교수는 최근 ‘포린 폴리시’ 기고문에서 2차 대전 후 미국이 관여해서 완전히 승리한 전쟁은 1991년 1차 걸프전 정도이고, 한국전에서는 비겼고 나머지 전쟁에서는 모두 패배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국력, 전투력, 군의 사기 문제가 아니고 ‘잘못된 목표를 위한 잘못된 전쟁’(wrong war for wrong objectives)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과거 전력을 가진 미국을 신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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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의 전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의 명분도 실리도 분명하지 않고 걸프 지역의 현상을 유지, 개선하기보다는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과 동참했던 역내 아랍 국가들에 대한 부수적 피해는 막대했고 하루가 다르게 전략적 결정이 뒤바뀌는 미국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는 한층 깊어졌다. 오죽했으면 미국에 목을 매던 사우디아라비아가 튀르키예, 파키스탄과 수니 군사 동맹을 맺었을까. 아마 아태 지역 국가들도 이런 고민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콜비 차관의 호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역내 국가들 사이에 위협인식의 공유가 필수적이다. 일본이나 필리핀의 경우, 중국에 대한 위협인식을 미국과 공유할 수 있지만 한국이나 다른 아세안 국가들은 달라 보인다. 한국의 일차적 위협은 북한에서 온다. 반면 미국은 중국에 있다. 미국이 동북아 사령부를 새롭게 구축하고 주한미군을 그 산하의 전투사로 개편하는 동시에 중국을 겨냥한 전술핵 무기를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이재명 정부가 수용할 수 있을까. 한국은 동북아에 신냉전 구도가 대두되고 그 대결의 최전방에 한반도가 놓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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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미국 정부나 의회가 ‘윤 어게인’과 ‘이재명 대통령 타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한·미 극우 세력을 비호하고 관세, 투자, 쿠팡 문제 등에 대해 과도한 외압을 가할 때 한국 정부나 시민사회는 계속 침묵할까. 그 역풍은 거셀 것이다.
‘미국은 건재하니 믿고 따르라. 아시아는 미국의 최우선 지역이다’라는 콜비 차관 메시지가 전하는 의미를 잘 이해한다. 그러나 역내 동맹국들이 미국을 당연시해서는 안 되듯이, 미국도 이들을 당연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뢰성의 확실한 담보가 요구된다. 게다가 억제와 세력균형만으로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담보되지는 않는다.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동시에 전쟁을 사전에 막는 ‘예방 외교’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미국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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