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키 쥔 중국…”중간선거 앞둔 트럼프도 시진핑에 감사해야 할 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이란 전쟁이 6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올랐지만, 전쟁 초기 제기됐던 ‘유가 2배 폭등’ 전망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의 증산이 아니라 중국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막대한 비축유를 풀어 수입을 줄이면서 국제 원유 시장의 수요 압력을 낮췄기 때문이다. AP는 “고유가로 중간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악의 유가 폭등을 피한 데 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감사해야 할 처지가 됐다”고 보도했다.
◇14억 배럴 비축유가 유가 방파제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원유 저장 시설을 구축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국의 전략·상업 비축유를 합친 원유 재고가 약 14억배럴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현재 약 2억8500만배럴인 미국 정부의 전략비축유보다 약 다섯 배 많다.
이 비축유는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고,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사실상 막히자 위력을 발휘했다. 중국은 비축유를 꺼내 쓰면서 원유 수입을 10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줄였다. 세계 2위 석유 소비국의 수입 감소는 시장에 나오는 원유를 미국과 유럽 등 다른 소비국이 확보할 수 있게 했고, 유가 상승 압력도 그만큼 낮췄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의 해상 원유 수입은 전쟁 전보다 최대 하루 400만 배럴 감소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국제시장에서 사들이는 물량을 대폭 줄이면서 미국과 유럽 등 다른 소비국의 원유 확보 경쟁이 완화됐고, 유가 상승 압력도 그만큼 낮아졌다. 중국은 수입 감소분을 정유 공장 가동 축소와 석유 제품 수출 감축으로 대응하고, 부족한 물량은 원유 재고를 꺼내 메웠다.
지난 8월의 수급 상황이 대표적이다. 로이터가 중국 공식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중국 정유업체들은 하루 평균 1391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했지만, 수입과 국내 생산을 합친 공급량은 1327만 배럴에 그쳤다. 부족한 하루 64만 배럴 가량은 재고에서 충당한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이 원유 재고를 꺼내 쓴 것은 최근 4개월 가운데 세 번째다.
전기차 보급 확대도 중국의 원유 수요를 억제했다. 중국에서는 신차 판매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가 차지한다. 태양광·풍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늘린 것도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됐다. 미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의 로즈메리 켈라닉 중동프로그램 국장은 AP에 “미국이 이상한 방식으로 중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했다.
◇이란 돈줄이면서 트럼프의 ‘구원투수’
중국의 역할에는 또 다른 역설이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이다.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가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사들이는 원유 대금은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이 경제와 군사 작전을 버티게 하는 자금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고 이란을 압박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도록 설득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중국은 미국의 공격을 비판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이란의 돈줄을 유지해 전쟁 장기화에 힘을 보태는 동시에, 자국의 수입과 소비를 줄여 전쟁이 불러온 유가 충격을 누그러뜨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이란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 이견에도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공개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AP는 중국과의 불안정한 무역 휴전을 유지하려는 트럼프가 중국과 이란의 관계에 관한 공개 발언을 조심해 왔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최근 중국 측 기관이 이란에 미군 기지의 위성사진을 제공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중국이 우리를 감시한다고 하면 맞는 말이다. 우리도 그들을 감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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