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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3, 2026

무질서 속 질서 유지하는 생명…세포 방향 잃고 따로 놀면 ‘암’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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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세포의 구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동물 세포의 구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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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쉬운 질문 같지만 정작 설명하기는 어렵다. 질문을 바꿔보자. 세포는 어떻게 에너지를 만들고,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며, 분열·증식하는가. 생명은 어떻게 수십억년을 이어 진화했을까. 생명은 어떻게 자신을 유지하면서도 끝내 노화하고 죽음에 이르는가.

생명과학의 관점에서 ‘살아 있음’은 생명체의 모든 세포가 제 기능을 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연구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박문호 박사는 “세포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보는 것은 야구장 밖에서 들리는 소리로 야구 경기를 상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야구장 안으로 들어가 선수들의 실제 움직임을 보듯, 생명 현상의 실체를 보려면 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변환되는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책 제목으로 삼아 가장 작은 물질의 세계에서부터 ‘살아 있음’의 실체를 추적한 역저를 내놨다. 전자와 분자에서 출발해, 단백질과 디엔에이(DNA), 세포와 미토콘드리아의 작동 원리, 암과 노화의 이유를 살피고, 37억년에 걸친 생명의 역사로 나아간다. 물리학과 생화학, 분자생물학과 뇌과학을 넘나들며 생명 현상을 하나의 연결된 체계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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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l 박문호 지음, 오아시스, 4만3000원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l 박문호 지음, 오아시스, 4만3000원

지은이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전자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30년간 재직했다. 하지만 관심 분야는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2008년 ‘뇌, 생각의 출현’(휴머니스트)을 시작으로 10년에 걸쳐 뇌과학 3부작을 썼다. 2022년에는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 의식의 출현까지 137억년 우주 역사를 정리한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김영사)를 출간했다.

그뿐 아니다. ‘대중의 과학화’를 모토로 공익사단법인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을 18년째 운영한다. 현재 약 1만5천명의 회원이 자연과학 강의와 학습 모임, 탐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박문호 TV’에 지금까지 올라온 강의 영상만 2500여개, 구독자 수는 7만6천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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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살아 있음’은 분자 수준에서 시작해, 세포 수준, 개체 수준, 사회 수준까지 확장되며 서로 연결돼 작동하는 ‘관계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각 단계를 이해하기 위한 지식도 다르다. 세포 수준에서는 생화학과 유전학, 개체 수준에서는 생리학과 신경해부학, 사회 수준에서는 진화학·생태학·뇌과학이 필요하다. 이 책은 분자 수준에 집중했다.

책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대사(代謝, metabolism)’와 ‘연결’이다. 대사는 생명체가 외부에서 영양물질과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몸 안에서 분해하거나 합성하는 화학 반응을 통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불필요한 부산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작용이다. 대사 과정의 대부분은 세포 안에서 이뤄진다. 세포는 생명 활동의 기본 단위이자 그 자체로 생명체(단세포생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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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핵이 강조되도록 염색된 예쁜꼬마선충.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포핵이 강조되도록 염색된 예쁜꼬마선충. 위키미디어 코먼스

세포 내 화학반응은 서로 연결된다. 포도당의 분해 과정에서 에너지가 확보되고, 그 에너지는 세포가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고 생명 활동을 지속하는 데 쓰인다. 디엔에이(DNA)에 기록된 정보 역시 단백질 합성이라는 과정을 거쳐 실제 생명 현상에 관여한다.

생명은 유전정보만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유지된다. 지은이가 생명을 ‘붕괴를 유예하는 시스템’이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열역학이다. 자연계에서 주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 상태를 ‘열평형’이라고 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열평형 상태로 안정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생명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며 움직이는 ‘비평형 시스템’이다.

생명체가 무질서로 향하는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 몸의 재료이자 에너지의 원천은 크게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 핵산(DNA·RNA)이다. 특히 탄수화물에서 얻어지는 포도당은 지구상 많은 생명체가 의존하는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식물은 광합성으로 유기물(탄소화합물)을 직접 만든다. 태양의 빛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CO₂)와 물(H₂O)로부터 포도당(C₆H₁₂O₆)을 비롯한 유기물을 합성하고 산소를 배출하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꿔 저장한다.

동물은 탄수화물을 섭취해 소화기관에서 분해하는 방식으로 포도당을 얻는다. 포도당이 혈액을 통해 세포로 전달되면 다른 분자(피루브산)로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전자를 운반하는 분자(NADH)도 만들어진다. 전자는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서 이동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에너지는 세포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전달 분자인 에이티피(ATP)의 생성에 이용된다. 그 전자의 최종 수용체가 바로 산소다. 동물이 세포호흡을 위해 산소를 공급받는 핵심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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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생명체가 세포 안에서 일련의 화학반응으로 에너지를 얻는 대사 과정이 세포호흡이다. 이때 필요한 기체를 몸 밖에서 공급받고 부산물로 생긴 다른 기체를 배출하는 것을 ‘외(外)호흡’이라고 한다. 세포의 에너지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본디 독립적으로 산소를 이용하던 생명체였다가 세포 안에 들어가 공생하며 진화했다는 게 통설이다. 오늘날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암과 노화는 어떻게 생겨날까? 세포는 필요에 따라 분열하고, 손상된 구성 요소를 제거하며, 때로는 스스로 죽는 방식으로 생명체 전체의 질서를 유지한다. 노화는 그런 생명 네트워크의 항상성이 조금씩 약해지는 시스템 붕괴의 과정이다. 암은 세포질서의 파괴다. 지은이의 설명은 문학적이면서 직관적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박문호. 오아시스 제공
과학 커뮤니케이터 박문호. 오아시스 제공

“생명체는 항상 열 속에서 살아간다. 온도가 있다는 것은 모든 분자가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열 요동은 본디 양방향이어서 그냥 두면 평균은 ‘0’이다. 그런데 생명은 에이티피(ATP, 에너지를 전달하는 분자)를 사용해 한 방향만 선택하고 무질서 속에서 방향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다.(…) 분자도 춤추고, 세포도 춤춘다.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추면 생명이다.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대로 각자 따로 춤추기 시작하면 암이다. 협력이 무너지고 방향을 잃은 세포가 자기 리듬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지은이는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분자에서 세포로, 세포에서 생명의 역사로 확장한다. 생명과학의 세부 지식이 낯선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여정일 수 있겠다. 202장의 도판도 모두 전자의 이동과 분자의 결합을 표시한 화학식이거나 다이어그램이다. 하지만 지은이의 세밀하고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점차 ‘살아 있다는 것’의 경이로움, 뭇 생명의 연결과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발견하게 된다. 생명 현상을 설명한 대중 과학서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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