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않겠다던 그가 어느날,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끊는 사람들]⑥
[끊는 사람들]은 기자가 오랜 기간 지켜봐 온 마약류 중독 당사자들이 약물을 끊으려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연재입니다.
중독 당사자의 회복은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약물 중독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도움을 받으면 끊을 수 있지만 여전히 지원이 부족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이 공적 도움을 받으려면 여론이 있어야 합니다. ‘왜 약쟁이에게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이들을 돕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큰 어려움에 빠진다는 현실 인식이 필요합니다. [끊는 사람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을 감히 설득하고자 합니다.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약에 의한 중독 문제, 중독 당사자 가족들의 공동의존 문제, 여성 중독 당사자들이 겪는 막막한 현실 등의 문제를 전할 예정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 회복 시스템의 문제를 말합니다. 연재를 보시는 분들이 중독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⑤편에서 이어짐)
[지난 이야기] 썬(40·가명)은 11년째 필로폰 중독과 싸우고 있다. 엄마는 아들의 방문 앞에서 잠을 자고 어디든 따라다녔다. 썬 역시 그런 엄마를 보며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좀처럼 약을 끊지 못했다. ‘죽어야 끝난다’고 생각한 어느 날 육교에 올랐다. 난간에 발을 올리는 그를 지나가던 노신사가 붙잡았다. 썬은 그렇게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다시 회복을 시작했다. 그러던 2024년 9월 어느 날 밤, 기자의 휴대전화에 알림이 떴다. ‘썬 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
‘썬 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
2024년 9월의 어느 밤 휴대폰에 알림이 떴다. 썬을 알고 지낸 지 1년이 조금 안 됐을 때였다. 약을 끊겠다고 매일 새 의지를 다지며 하루를 시작하던 사람이 갑자기 텔레그램이 가입할 일이 뭐가 있을까. 바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썬은 받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문자도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그리고 하루 뒤 메시지가 왔다. “기자님, 저 어제 재발했어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있어요. 상황이 복잡해졌네요. 허허…”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사실 며칠간 불안하던 터였다. 연락이 안 되는 일이 좀처럼 없던 그였다. 썬은 단약을 잘 이어 오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일상을 곧잘 공유하곤 했다. 언젠가부터 통화가 안 되거나 문자가 띄엄띄엄해졌다. 메시지 답장이 하루 있다가 오기도 했다. 연락이 안 닿는 것만으로 상태가 안 좋아진 게 아닌가 단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썬은 의지가 강했고 가족과 친구의 지지가 굳건했으니 별 일 없을 거라 믿기로 했다.
일본의 약물 중독 재활시설 다르크(DARC)와 미국의 약물법정 취재를 간다는 말에도 반응이 없을 땐 정말로 이상했다. 썬은 자신도 자신이지만, 다른 중독 당사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회복시설이 극히 부족하다는 데 늘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한국과 달리 다르크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일본의 현실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일본 다르크와 미국 약물법정 취재하러 출장 가기로 했어요.”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해 일본과 미국 출장은 계속 썬을 생각하며 다닌 시간이었다. 썬은 ‘재발했다’. 단약에 실패했을 때, 약물에 다시 손을 댔을 때 중독 당사자들은 ‘재발했다’고 말한다. 썬은 진심으로 회복하고 싶어했다. 그는 자주 울었는데, 울 때마다 고개를 푹 숙였다. 약물 사용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자신을 믿어준 주위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죄의식, 특히 어머니를 향한 회한을 담은 눈물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런 썬도 재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썬의 재발…재발의 끝은 어디를 향하나
2023년 말 경기도의 한 회복시설에서 썬을 처음 만났다. 불미스러운 일로 2024년 초 문을 닫은 경기도 다르크에서였다. 공동체가 와해된 이후 그는 삶을 열심으로 일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찍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는 묵상 일기를 쓰고 그걸 자신의 회복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운동을 빼놓지 않았고, 중독 당사자 자조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일자리를 구했다. 하루를 닫을 때도 기도하고 글을 썼다. 썬을 가까이 알고 지내면서 내 삶을 자주 돌아보게 됐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 느슨해질 때가 있다. 실수하기도 하고,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부끄러운 선택도 한다. 그래도 대개 삶은 원래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과음한 다음날은 간밤 술김에 한 행동거지와 말 때문에 괴롭지만 이내 잊고 지내게 된다. 식욕을 며칠 조절 못했다면 후회하면서 운동을 하고 체중을 조절한다. 과소비를 한 달은 카드값 막기가 힘들지만 몇 달 절약하면 회복할 수 있다. 쇼츠에 빠져서 몇 날 며칠 생산성 없이 살아도 노력하면 삶에 큰 흔적이 남지는 않는다. 약물은 다르다. 각고로 애써서 몇 달 동안 ‘갓생’을 살아도 무너질 수 있다. 한순간에 몇 달치 노력이 무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자책하고 절망하게 된다.
2024년 9월 이후 재발이 몇 차례 더 있었다. 썬은 그해 12월에는 인천 참사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상에서 12·3 비상계엄을 지켜봤다.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윤석열도 뽕 맞고 쭈라온 거 아니냐” “참사랑병원 CR(보호실)에 데려와야겠다”며 다같이 껄껄 웃었다고 한다. 지난해 찬바람 불던 어느 날엔는 갑자기 잘 쓰던 라인 메신저에 썬이 탈퇴했다고 표시돼 있었다. 이번엔 메신저 가입이 아니라 탈퇴가 놀라게 했다.
썬은 쭈라가 온 상태로 경찰서에 가 자수를 했다고 했다. 일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 썬을 북돋았다. 미국 약물법정 취재를 갔을 때 만난 판사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미국에서는 재발이 회복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집니다. 치료 중에 재발할 수 있어요. 아니, 오히려 재발해야 극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발을 비난하기보다 원인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재발의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알맞은 대응책을 처방해줄 수 있어요.”
마약류 투약은 법이 정한 죄다. 범법을 저지른 후에는 뉘우치고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교정·교화는 누구나 누려야 할 기회다. 법무부가 조현병이나 양극성 정동장애 등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신성적인 문제로 강간·강제추행 등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치료감호하는 것도 언젠가는 교정·교화를 잘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약물 중독도 치료감호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정신질환 치료감호에 비해 규모가 현저히 작다.
중독은 질병이다. 중독 문제의 대전제다. 중독 당사자들이 이 질병과 싸울 방법을 각자 알아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누군가는 안정된 공동체를 만나지만 전체 중독자 수에 비하면 극소수다. 중독이라는 질병에서 낫지 못하면 그 끝은 ‘왜 약을 시작했을까’ 끝없는 후회, 혼자서는 끊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과 막막함, 주위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는 죄의식과 슬픔이다. 그 압도적 무력감 속에서 많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죽는 길을 바라본다. 썬도 그런 마음으로 육교에 올랐었다(⑤편 참조).
을지대·서울성모병원·경북대 연구진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추적한 연구를 보면 약물사용장애 환자 5287명 중 239명이 추적기간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약물사용 문제가 없는 집단과 비교했을 때 자살사망 비율이 16배 이상 높았다. 가톨릭대 연구진이 향정신성의약품·마약 등을 사용한 52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15명이 자살을 계획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꼴이다. 이 215명 중 120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100만 중독자’라는 말이 심심찮다. 중독 당사자들이 단약에 거듭 실패하다가 끝내 스스로 죽으려는 사람이 되어도 상관이 없는 거라면 사회가 지금처럼 회복에 무심해도 된다.
그래도 걸어간다…완전한 회복을 향해
썬의 재발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어디까지나 일로 만난 사이고, 서로에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도 아니었는데도 더 자주 연락을 해야 했을까, 연락이 뜸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뭔가 행동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가도 오히려 연락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썬과 많이 친밀해졌지만, 어쩔 수 없이 기자와 취재원 관계라는 것 때문에 내 연락이 그에게 늘 약물을 떠올리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연락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일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사람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벌어졌을 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한다.
썬은 잘 살아 있다. 그를 알게 된 지 만 3년차, 썬은 그 사이 더 단단해졌다. 가끔은 넘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사랑 속에 끊는 사람으로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임을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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