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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November 1, 2026

“과거 시대정신이 민주화였듯…지금 필요한 건 사회통합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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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만난 도법 스님. 올해로 출가한 지 60년이 된 그는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본인이 가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말했다.  박경은 선임기자

지난달 23일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만난 도법 스님. 올해로 출가한 지 60년이 된 그는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본인이 가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말했다. 박경은 선임기자

평생 ‘생명평화’ 말하고 실천
박근혜 정부 지리산 댐 갈등
정부·시민 테이블에 마주 앉혀
만나기 꺼리던 ‘악마 대 악마’
대화 통해 ‘인간 대 인간’으로
“시민운동서 희망 찾을 수 있어”

종단 권력의 중심에 섰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과 거리를 둔 것은 아니었다. 갈등이 있는 곳이면 찾아갔고 서로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화해의 길을 찾았다. 평생 생명평화를 이야기하고 실천해온 수행자, 도법 스님이다. 세찬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달 23일,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 실상사를 찾았다. 올해는 스님이 출가한 지 60년, 스님이 펼쳐온 생명평화 운동의 한 결실인 실상사작은학교가 문을 연 지 25년 되는 해다. 소박한 거처에서 만난 스님에게 “겸사겸사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하자 스님은 “난 싸구려요” 하며 농을 던졌다. 기회만 되면 누구든 만나 이야기한다는 뜻이었다.

- 속세의 환갑처럼 불가에서도 출가 60년을 기념하나요.

“그런 거 하자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한데 가급적 안 하려고요.”

- 수행자로 60년이나 사셨으니 처음과는 달리 보이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절에 들어올 적에 무슨 생각이 있어서 들어온 사람이 아니에요. 자의 반 타의 반, 인연 따라 들어왔지.”

특별한 뜻을 품고 시작한 수행자의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새 서로 기대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그의 평생 화두가 됐다. 그에게 오늘의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 스님은 오랫동안 생명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해오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싸우고 더 갈라졌습니다.

“요새만 그랬나요. 2000년 전에도 늘 말세라고 그랬잖아요.”

- 요즘은 정도가 더 심한 것 같아요. 이런 세상에서 화쟁이 가능할까 싶고요.

“정치권은 국민들이 더불어 함께 잘 살도록 역할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하고 있어요. 화합을 말해야 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종교가 그런 역할을 안 한다기보다 그럴 실력이 없다고 봐요.”

-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일까요.

“언론의 사명과 취지에 충실하기만 해도 길이 열릴 거라고 보는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지 않나요. 시민사회 역시 진영으로 갈라져 있고요. 제대로 된 시민운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까요.

“해볼 수 있는 것은 시민운동이라고 봐요. 과거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다면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통합과 화해입니다. 어느 진영의 운동이 아니라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운동 말입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 서로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을 마주 앉힐 수 있을까요.

“가능해요. 실제로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도법 스님은 박근혜 정부 시절 지리산댐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 이야기를 꺼냈다. 댐 건설 문제로 정부와 주민·시민단체는 극심하게 대립했다. 조계종 화쟁위원장이던 스님은 중재에 나섰다. 서로 만나기조차 꺼리던 양측이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서로의 주장을 펼쳐놓고 무엇이 사실인지, 무엇이 잘못된 정보인지부터 함께 확인했다.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이 진짜로,진짜인 줄 알았던 것이 가짜로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악마 대 악마의 만남이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바뀐 거예요. 이거 굉장한 일이잖아요.” 이해해서 대화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대화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생각 다른 사람과 부딪칠 일이 많잖아요.

“간단해요.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요.”

-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누구나 그 답과 길을 알고 있어요. 문제는 그 길을 가지 않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본인이 가지 않으면 소용없는 거죠.”

제주 4·3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스님은 열일곱 살에 절에 들어왔다. 출가한 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을 품었다. 수행에 대한 고민은 불교가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졌다.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에 참여했고 1998년 종단 분규 때는 총무원장 권한 대행을 맡아 수습에 나섰다. 이후 스님은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인드라망 사상을 바탕으로 생명평화 운동에 힘을 쏟았다. 한편 실상사에는 승려와 재가자가 함께 수행하고 생활하는 사부대중 공동체가 자리 잡았다. 절이 있는 산내면에도 서로 돕고 살아가는 공동체 문화가 형성됐다.

- 앞으로 10년 뒤 이곳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십니까.

“지금 정도만 유지되어도 좋겠어요. 농촌 마을들이 점점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공동체가 여기저기 쌓이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내는 힘이 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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