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없었으면 술 못 끊었어요”···13년간 알코올 중독 탈출 도운 ‘회복자상담가’ 사업 흔들, 왜?
일러스트 | 챗GPT
“술을 끊은 게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에요.”
서울에 사는 이대형씨(55)는 1년 8개월째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한때는 하루에 막걸리 7병을 마셨다. 고된 하루를 술로 마무리하는 생활이 굳어졌던 이씨는 늦둥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어느 날 손이 떨려 서류 작성을 하지 못했다. 이때 술을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지난해 2월 구청을 통해 ‘회복자상담가’ 정진완씨를 만났다. 정씨는 알코올 중독을 겪고 회복한 당사자로 19년째 단주 중이다. 정씨는 자신의 중독 경험부터 꺼냈다. 술을 끊은 뒤 겪게 될 몸과 마음의 변화도 하나씩 알려줬다. 화나거나 배고플 때, 힘들거나 외로울 때 특히 조심하라고 했다. 두 사람은 지금도 일주일에 1번 상담한다.
이씨는 “초반에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지만 알려주신 대로 따라갔다”며 “선생님이 없었으면 술을 못 끊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부터 상담가로 활동한 정씨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가족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일 하기를 잘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회복자상담가는 알코올 중독을 겪은 뒤 오랜기간 술을 끊으며 전문 교육을 받은 ‘동료지원가’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상담가를 양성해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에 파견해왔다. 상담가들은 센터를 찾은 중독 당사자를 만나거나 방문상담을 하고, 자조모임을 운영한다. 서울 전역에 활동 인원은 20명 규모다.
하지만 서울시 회복자상담가 사업은 도입 13년 만에 축소 위기를 맞았다. 서울시가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단위에서 지원해온 상담가 활동비를 올해 하반기부터 자치구가 부담하도록 사업 구조를 바꿨기 때문이다. 일부 자치구는 이미 사업을 중단했다. 다른 곳도 내년 사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다.
시는 올해 회복자상담가 사업 예산을 1억7000만원 규모로 줄였다. 지난해 예산(2억7000만원)에서 약 1억원을 깎은 것이다. 사업비의 약 90%는 생활임금 수준의 인건비다. 서울시는 4개 자치구에 있는 중독센터의 경우 올해 말까지 회복자상담가 활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 지원이 끊긴 마포구와 관악구는 이미 지난 7월부터 사업을 중단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올해는 다른 사업비를 아껴서라도 운영할 예정이지만 이미 다른 예산도 많이 깎인 터라 내년에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독 관리 현장에선 자치구별 재정 여건과 우선순위에 따라 사업 지속 여부가 갈릴 수 있는 만큼 광역 중심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회복자상담가 송용근씨는 “알코올 중독 분야 회복자상담가 활동이 또다른 중독 영역에서 초석이 될 수 있다”며 “사회적 안전망이 확대돼야 하는데 오히려 축소될 수 있다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센터 관계자는 “서울시가 상담가나 현장 실무자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고 결정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회복자상담가와 중독 관련 단체는 오는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광역 운영 유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시는 마약 중독이나 청소년 중독 문제 등 다양한 정신건강 수요에 한정된 예산을 배분해야 하는 만큼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0년 넘게 사업을 이어온 만큼 이제는 지역 수요에 따라 자치구가 적극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자치구에 회복자상담가 활용을 독려하고 교육과 새로운 활동처 발굴 등 광역 센터 차원의 지원은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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