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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 2026

문예로 맺은 느슨한 유대…‘일본식 시민사회’의 토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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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무라 마사노부(1686~1764)의 우키요에(풍속화). 1740년대 초 에도 이치무라좌(市村座) 극장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오쿠무라 마사노부(1686~1764)의 우키요에(풍속화). 1740년대 초 에도 이치무라좌(市村座) 극장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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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말, 독일인 자연학자 엥겔베르트 캠퍼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의사로 일본에 머문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중 일본의 정치·사회·풍속 등에 관한 원고는 그의 사후 영국에서 ‘The History of Japan’(1727년)이란 영어판 책으로 출간됐다. 일본어판 제목은 ‘일본지(日本誌)’다. 당시 유럽인의 눈에 비친 일본은 나라 전체가 마치 예절 학교 같았다.

“신분이 낮은 농민이나 무식한 시골 사람부터 고귀한 주군에 이르기까지, 일본인의 행동거지를 볼 때 나라 전체를 정중함과 좋은 매너를 가르치는 학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당시 일본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런데 신분의 높고 낮음과 별개로 사람들의 행동에는 일정한 예절과 규범이 배어 있었다. 일본 출신 역사사회학자 이케가미 에이코(미국 뉴욕 뉴스쿨 교수)는 2005년 저작 ‘일본의 탄생’에서 이를 ‘시빌리티(civility)’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시빌리티’의 사전적 정의는 ‘정중함, 예의 바름’이다. 사회학에서는 ‘시민성, 시민적 예절’이라는 개념으로 쓰인다. 책의 원제가 ‘시빌리티의 유대’(Bonds of Civility)다. ‘미적 네트워크와 일본 문화의 정치적 기원’이란 부제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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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시빌리티’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제에서 발생하는 공적 공간을 통제하는 문화의 규율”이라고 정의한다. 이때 ‘시빌리티’는 ‘시민사회(civil society)’와 같은 맥락이지만, 정치적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문화 영역에서만 시민적 힘을 축적한 일본 사회의 특수성을 표현한다.

일본의 탄생 l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김영근 외 4인 옮김, 글항아리, 4만3000원
일본의 탄생 l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김영근 외 4인 옮김, 글항아리, 4만3000원

‘일본의 탄생’은 ‘시빌리티’를 열쇳말 삼아 전근대 시기 일본의 사교 문화를 분석하고, 그것이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를 어떻게 특징짓는지 탐구한 저작이다. 시빌리티는 단순히 예의범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동의 규칙과 취향을 매개로 관계 맺는 능력이다. 이케가미는 일본에서 그런 관계 형성의 장을 정치가 아니라 문화와 예능에서 찾는다. ‘시민사회 없는 시빌리티’라는 역설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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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설명하는 익숙한 말 가운데 하나가 ‘집단주의’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고, 자기주장보다 조화를 중시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서구적 의미의 개인이나 시민사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이케가미는 이런 전형적 통념을 뒤집고, 근대적 시민성과 공공성이 반드시 서구와 같은 경로로 생겨나는 건 아니라고 짚었다. 그는 정치제도의 바깥에서 자라난 자발적이고 수평적인 문화 네트워크에 주목했다.

1603년, 에도(오늘날 도쿄)에 본거지를 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면서 에도 시대가 열렸다. 도쿠가와 막부는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사람들의 신분과 역할을 세밀하게 구분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기에 사람들은 기존의 신분 관계와 별개의 관계망을 만들어갔다. 그 매개가 바로 아름다움(美), 구체적으로는 예능과 문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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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시를 짓고, 차를 마시고, 꽃을 가꾸고, 연극을 즐겼다. 이런 활동은 혼자 하는 취미가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집단 활동이었다. 혈연·신분·주종관계, 지역사회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력한 연대’의 속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공유하는 취향을 통해 다른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느슨한 유대’였다.

일본 중세의 ‘야스라이 하나(꽃을 진정시키는 의식)’ 풍습은 현대 일본의 많은 신사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의식이다. 화가 도 간이 벚꽃 아래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후류 춤을 묘사한 장면. 글항아리 제공
일본 중세의 ‘야스라이 하나(꽃을 진정시키는 의식)’ 풍습은 현대 일본의 많은 신사에서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의식이다. 화가 도 간이 벚꽃 아래에서 펼쳐지는 우아한 후류 춤을 묘사한 장면. 글항아리 제공

이런 현상의 기원은 에도 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이른바 ‘좌(座)의 문예’가 출현한 것은 중세였다. 렌카(連歌, 여러 사람이 한 구절씩 이어가는 시) 창작이나 여럿이 함께 차를 즐기는 다도가 독립적인 문화로 발달했다. 사람들은 신분·직업과 상관없이 같은 ‘자리(좌)’에 둘러앉아 협동적 예능을 실연하고 감상했다. 수직적·제도적 위계가 엄격한 봉건사회에서, 사람들이 ‘사적’ 공간을 통해 실질적인 ‘공적’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존의 권력 질서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결속하는 것을 이케가미는 “느슨한 유대가 지닌 강인함”으로 표현했다.

17세기 초 도쿠가와 막부는 강력한 통일국가를 세우고 무사 집단의 촘촘한 주종관계와 관료제, 피라미드형 신분 질서를 국가 조직의 기본 원리로 확립했다. 이런 변화는 “예능이나 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한계와 기회 모두를 제공”했다.

에도 시대 말기에 활약하며 우키요에 황금기를 이끈 대표적인 화가 우키요에 파의 3대 거장 삼대 가가와 도요쿠니의 작품 ‘이마요미타테 사농공상’ 중 직공 장인들을 그린 장면. 글항아리 제공
에도 시대 말기에 활약하며 우키요에 황금기를 이끈 대표적인 화가 우키요에 파의 3대 거장 삼대 가가와 도요쿠니의 작품 ‘이마요미타테 사농공상’ 중 직공 장인들을 그린 장면. 글항아리 제공

에도 시대 들어 사회가 안정되고 상업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네트워크가 덩달아 발전했다. 그중에도 “미(아름다움)를 통한 교제는 하위적이고 사적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은신처”로 번성했다. 해학적 요소가 포함된 시 형식인 ‘하이카이’를 읊고, 샤미센(3줄 현악기)에 맞춰 속요를 부르고, 원예 모임에 참가할 때 본명 대신 예명이나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계층적 규범이 통용되지 않는 사적 사회 공간이 나타났음을 보여주”는데, 그 기능은 18세기 유럽의 카페와 살롱, 독서 클럽 등과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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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목판 인쇄와 상업 출판이 발달하면서 책과 정보가 널리 유통됐다. 특정 지역에서 유행하던 문화가 인쇄물을 통해 확산하고, 예술과 취미의 규칙이 공유되고, 직접 만나지 않은 사람들도 같은 정보를 읽고 같은 취향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이와사 마타베에岩佐又兵衛(1578~1650)의 작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추모 축제에서 발생한 광란의 춤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예술 공연에서의 집단적 열광은 일본 중세에 빈번하게 일어난 현상이었으며 당국에 위협이 되었다. 글항아리 제공
이와사 마타베에岩佐又兵衛(1578~1650)의 작품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추모 축제에서 발생한 광란의 춤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예술 공연에서의 집단적 열광은 일본 중세에 빈번하게 일어난 현상이었으며 당국에 위협이 되었다. 글항아리 제공

이케가미는 이처럼 사람들이 교류하고 뭔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상호 행위의 공간과 권역을 ‘미적 공공권’으로 개념화했다. 이때 ‘공공’이 꼭 정치적 의제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혁명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일본인이 막부의 정치 질서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기존의 사회적 범주와 다른 관계를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으로는 위계적인 사회에 문화적으로는 수평적인 공간이 생겨난 셈이다.

지은이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횡적 유대 관계를 만든다는 의미에서의 이런 네트워크 문화는 현대 일본 사회를 활성화할 가능성을 내재한 사회 자본이고 역사로부터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고유의 ‘원근대성(proto-modernity)’이라 할 만하다.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시대에도 사람들은 공통의 취향과 문화적 실천을 매개로 자발적 관계망을 만들었고, 그것이 실질적인 사회적 유대로 작동했다는 뜻이다.

일본의 근대성을 서구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사회 내부에서 자라난 ‘느슨한 유대’의 힘에서 찾은 독창적 해석과 설득력 있는 논지 전개가 놀랍고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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