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자녀 살피고 텃밭 일궈 김치나눔…노인들, 마을돌봄 ‘주역’
남양주시 ‘위스테이별내’ 사례
등하굣길 살피고 단지 주변 청소…
노년층 주민들 ‘아동돌봄’ 활동가로
택배 접수·바리스타 등 일자리 연계
“다양한 동아리 통해 우울감 떨쳐”
서울 마포구 ‘서봄하우스’ 사례
청소도 외출도 꽃구경도 이웃 함께
질환·장애 주민들 일상속 ‘서로돌봄’
도움 주체된 노년층들 ‘뿌듯함’ 채워
“돌봄 주고받고 살면 공동체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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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이미 인구가 경제의 ‘보너스’가 아닌 ‘부담’이 되는 ‘인구 오너스(Onus)’ 시대로 들어섰다. 다만 충격의 크기는 고령층의 사회 참여 방식과 돌봄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구 구조 변화를 어떻게 공동체의 활력으로 바꿀 수 있을지를 모색한 이번 기획의 마지막 편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이 발행하는 ‘단비뉴스’와 협력해 취재했다. 편집자 주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위스테이별내’ 아파트에서는 노년층 주민이 맞벌이 가정의 자녀를 돌보고, 초등학교 신입생의 등하굣길을 살핀다. 단지 내 텃밭에서 기른 배추로 김치를 담가 홀로 사는 노인에게 전달하고, 한달에 한번 단지와 인근 역 주변을 청소하는 환경 정화 활동에도 참여한다. 노년층이 돌봄을 받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이웃과 마을을 ‘함께 돌보는 주체’로 나선 것이다.

지난 10월30일 위스테이별내에서 만난 민현기(71) 대한노인회 위스테이별내경로당 회장은 “여러 활동에 참여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우울감이나 소외감도 줄었다”고 말했다. 위스테이별내는 2020년 입주를 시작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입주민은 사회적협동조합에 가입해 공동체 운영에 필요한 의사결정과 다양한 활동에 참여한다. 전체 주민 약 1400명 가운데 155명(11%)이 60살 이상 노년층이다. 이들은 공동체 활동과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며 마을 안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만들고 있다. 위스테이별내는 입주 초기인 2020~2021년 60살 이상 주민 20여명을 ‘아동돌봄 마을활동가’로 양성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정 내 돌봄 부담은 커졌지만, 외부 활동이 제한되자 마을 차원에서 돌봄 인력을 직접 키우기로 한 것이다. 주민 가운데 어린이집 원장 등 보육 역량을 갖춘 이들이 교육을 맡았고, 양성된 활동가들은 돌봄이 필요한 가정과 연결됐다. 시행 초기에는 조합 사무국이 가정과 활동가를 연계했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서로 친분을 쌓아 개별적으로 돌봄을 주고받고 있다.
노년층 주민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매년 3월 ‘녹색어머니’ 역할도 맡는다. 아파트에서 인근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있는 횡단보도 두곳에 나가 신입생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돕는다. 위스테이별내에서는 노년층 주민을 위한 1만보 걷기,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한 한글 1천자 쓰기, 독서 동아리 등 다양한 모임도 운영됐다. 민 회장은 “주민들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며 “입주 초기 낯선 환경에서 우울감을 느끼던 주민들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서로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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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주민은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효능감도 얻고 있다. 민 회장은 주 1회 3시간씩 단지 안 택배 접수처인 ‘60+일상터’에서 ‘시니어 택배 접수원’으로 일한다. 주민들이 맡긴 택배의 송장을 출력해 상자에 붙이고, 택배사에 전달하는 일이다. 위스테이별내에서는 민 회장을 포함한 60살 이상 주민 5명이 택배 접수원과 카페 바리스타, 커뮤니티 시설 청소원 등으로 일한다. 이들은 남양주시니어클럽의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급여를 받는다. 아파트 경로당인 ‘60+센터’에서는 노년층 주민들의 교류가 이뤄진다. 대한노인회에 소속된 경로당 회원들이 월·수·금요일에 함께 식사하고 라인댄스와 요가 등 정기적인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서로 안부를 살핀다.

‘서로돌봄’은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시도되고 있다.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서봄하우스’(서로돌봄하우스)는 2022년 문을 연 세대통합형 주거 공간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택을 매입해 공급했고, 마포구가 입주자 선정을 맡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인 서봄하우스는 총 23가구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가구는 현재 공실이다. 각 가구의 주거 면적은 7~9평으로, 대부분 1인 가구다. 입주민은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 1명이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주하며 입주민의 생활을 지원한다. 고령자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고려해 무장애 설계도 적용했다. 서봄하우스에는 20대부터 80대까지 입주할 수 있지만, 현재 거주하는 22가구 가운데 18가구(81.8%)가 60살 이상 고령층이다. 입주 가구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지원을 받아 주거비 부담을 덜고 있다. 주거 면적에 따라 보증금은 700만~800만원, 월 임대료는 32만원 정도다. 고명성 마포구 복지정책과 주거복지팀장은 “고령층의 신청이 많았던데다, 나이와 장애 정도, 질환 등 돌봄 필요성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입주민을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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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봄하우스에서 ‘서로돌봄’은 일상에서 주고받는 작은 도움과 관심으로 이뤄진다. 근육병으로 휠체어를 타는 박지현(가명·70)씨는 옷을 혼자 입기 어려울 때면 같은 층에 사는 이웃집을 찾는다. 이웃은 기꺼이 옷 입는 일을 거든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주민들은 주차장 한쪽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모여 앉는다. 오가던 이웃도 자연스럽게 합류해 이야기를 나눈다. 박씨는 “건강 상태나 이런저런 사정을 알게 되다 보니 누가 힘들면 서로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4급인 김륭호(64)씨는 반려견 환희(9)와 함께 2022년 들어왔다. 입주 전 홀로 지내며 환희 외에는 대화할 상대가 거의 없었던 김씨는 분기별로 열리는 입주민 전체회의에 참석해 생활 규칙을 만드는 데 참여하며 소속감과 역할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입주 전에는 몸이 아프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게 제일 답답했다”며 “여기서는 내가 할 일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김대연(68) 서봄하우스 입주자 대표는 거동이 불편하지만, 몸 상태가 괜찮을 때면 건물 주변을 청소한다. 이웃과 함께 꽃구경을 다녀오기도 한다. 외출에 앞서 이동 경로와 버스 환승 방법을 미리 알아보며 동행을 준비한다. 김 대표는 “나 혼자 갔다 온 것보다 조금 더 뿌듯함이 있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노년층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만의 몫으로 남겨둘 수 없는 사회적 과제가 됐다. 정부가 추진하는 통합돌봄이 공공돌봄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세대통합 주거와 같은 ‘서로돌봄’이 건강한 노년을 뒷받침하는 보완적 대안으로 확산하려면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지원과 돌봄 개념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 회장은 “시설 투자도 더 하고 운영비도 확보해 시니어 일자리를 확장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위스테이별내 주민 5명이 참여하는 ‘60+일상터’는 택배 접수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 떡과 빵 등 지역 업체의 상품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더 많은 노년층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어도 운영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경로당 프로그램 운영에도 한계가 있다. 민 회장은 “다양한 동아리를 운영하려면 강사비와 재료비가 필요한데,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예산이 조금 더 잘 지원돼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상우 위스테이별내 사회적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어렵고 힘들고 아픈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기 전부터 서로 잘 돌보는 마을 활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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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아 서봄하우스 사회복지사도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주민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건넬 수 있는 주민이 함께 살아야 공동체가 더 활기를 띨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타 연주나 요리처럼 자신이 가진 재능과 경험을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주민이 함께할 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도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끝> 이은지 단비뉴스 기자(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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