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개입, 무엇이 과장됐나…일본 경제 파멸론이 놓치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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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달러 환율은 2027년 7월19일 164엔까지 상승했다. 엔화 가치는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합의(1985년 미국·일본·서독 등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달러를 엔과 독일 마르크에 비해 평가절하한 것) 이후 약 40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명목환율뿐만 아니라 물가와 교역 비중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REER) 기준으로도 1970년대 고정환율제 붕괴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일본과 미국은 공동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기축통화국인 두 나라가 엔화를 떠받치기 위해 나섰다. 비상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시장 일부에서는 ‘일본의 종말’ ‘법화의 몰락’이 멀지 않았다며 공포감을 증폭한다. 과연 그럴까?
일본이 깊어진 엔저를 되돌리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엔저로 인한 수입물가 급등과 내수 침체를 막기 위해서다. 일본은 에너지의 90%, 식량의 6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엔화 가치가 폭락하면 수입 단가가 치솟아 가계의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소비심리가 얼어붙는다. 국외 생산 혹은 수출 비중이 높은 대기업은 엔저로 막대한 영업이익을 볼 수 있지만, 원자재를 수입해 내수시장에 파는 중소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판매가격에 온전히 전가하지 못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생활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로 불만이 커지면서 정권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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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 개입에 나섰나
미국은 왜 개입할까?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국채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다. 일본이 독자적으로 엔화를 방어하려면 보유한 미국 국채를 시장에 대량 매각해야 한다. 이는 국채 가격 급락을 일으켜 미국 내 주택담보대출 및 기업 차입 비용을 밀어 올리는 부메랑이 된다. 또, 엔화의 극단적 저평가는 일본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키운다. 이는 미국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을 약화해 무역적자를 키운다. 마지막으로 엔화의 무질서한 폭락은 위안화·원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의 연쇄적 평가절하 경쟁을 촉발해 신흥국 외환 불안으로 확산할 위험이 있다.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한 방책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이 미국 국채를 던져 엔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헛소문까지 난무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이 미국 국채를 헐값에 매각해 금리가 급등하는 걸 막기 위해 조용히 ‘스와프 라인’을 개설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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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일본이 미국 국채를 파는 걸 원하지 않는다.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4% 후반대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국채 약세 현상이 심화하는 때에 최대 국채 보유국까지 팔게 되면 시장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분명한 것은 일본은 미국 국채를 팔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국채를 팔지 않고도 달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여기에 더해 달러가 아닌 보유 유로화를 통해 엔화를 사들였을 뿐이다.
일본은 엔화를 사들이기 위한 달러를 어떻게 마련했을까? 국채를 팔아서 마련한 게 아니라 해외·국제통화당국(FIMA) 환매조건부채권(Repo·레포) 매매 제도를 이용했다.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담보로 맡기고 달러를 단기에 빌릴 수 있는 상설 창구다. 기본 작동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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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연방준비은행(연준)에 계좌를 둔 외국 중앙은행은 보유한 미국 국채를 연준에 담보로 제공.
연준은 해당 국채를 담보로 외국 중앙은행에 오버나이트(익일물) 기준 달러 현금 대출.
거래 만기시 이자를 더해 달러를 상환하고 담보 국채를 돌려받음. 필요에 따라 매일 롤오버(만기 연장)가 가능.
일본은 미 국채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달러를 조달한 것이다. 담보로 맡긴 국채는 유통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 FIMA 레포는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입용 달러를 조달하는 파이프라인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연준에는 동맹국의 환율 방어로 인해 자국 국채 시장이 교란되는 걸 막는 방화벽이다.
미국이 스와프 방식으로 개입했다는 주장도 팩트가 아니다. 미국 재무부는 미국 내 채권 시장이나 달러 유동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엔화를 지원하는 영리한 방식을 선택했다. 미국 재무부는 비상시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안정기금(ESF)이라는 별도의 외환 계좌를 운용한다. 이 기금 안에는 달러뿐만 아니라 유로화, 엔화, SDR(국제금융기구 특별인출권) 등 외국 통화 자산이 들어 있다. 미국이 달러로 엔화를 사들이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추가 달러 조달 필요: 정부 현금 잔고(TGA), 즉 미국 재무부 일반 계정에서 대규모로 달러를 빼내야 하므로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미국 국채를 새로 발행해야 함.
국채 금리 상승 압박: 시장에 국채 매물이 늘어나면 채권 가격이 내려가고 국채 금리가 상승해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음.
한데, 미국은 이미 금고에 보관하고 있던 유로화 현금을 꺼내서 외환시장에 팔고 엔화를 매입했다. 이로써 미국 국채를 단 한 장도 발행하거나 팔지 않았으므로 미국 국채 시장의 영향은 제로였다. 달러 유동성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엔화 방어 효과는 달성했다. 미국은 자국 국채 시장과 금리에 흠집을 내지 않으면서 쥐고 있던 유로화 현금만으로 일본과의 동맹 공조 신호를 시장에 확실하게 보낸 셈이다.
스와프 라인은 중앙은행 간 무담보 대출이다. 반면 FIMA는 완전 담보 환매조건부채권 거래다. 일본은 이미 연준의 국외 레포 풀에 약 3500억달러를 예치해두고 있다. 이는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에 대한 구제금융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안전장치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 ‘비밀 구제금융’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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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종말일까
일본의 공공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에 이른다. 숫자 자체만 보면 선진국 중 압도적 1위다. 일반적인 신흥국이라면 진작 국가부도가 났을 수치다. 월가와 국내외 미디어가 주기적으로 일본 경제 파멸론을 제기하는 이유다. 비관론자들이 수십 년간 경고해온 시나리오는 단순하다.
금리 상승이 이자 폭탄을 부른다. 부채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정부 세수의 상당 부분이 국채 이자 상환에만 쓰여 재정이 마비된다. 국채 투매가 시작되고 가격은 폭락한다. 시장이 일본 정부의 상환 능력을 의심해 국채를 던지기 시작하면 금리가 통제 불능으로 치솟아 금융시스템이 붕괴한다.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다 엔화 가치가 폭락하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온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일본은 망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유가 있다.

비관론자들은 총부채와 순부채의 착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250%란 수치는 일본 정부가 가진 자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총부채 기준이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외환보유액, 공공 연기금, 정부 소유 기업 지분 등 방대한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총부채에서 이를 빼면 순부채 비율은 130~140% 수준으로 내려간다. 일본은 전세계 1위의 순대외채권국이다. 경상수지 흑자도 꾸준히 내고 있다. 빚의 절대 규모는 크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알짜 국외 자산을 굴리고 있는 채권자다.
국채를 쥔 주체가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일본 국채의 85~90%는 일본 시중은행, 보험사, 연기금 등 국내 거주자가 보유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일시에 자금을 빼내 국가를 파산으로 모는 외화 유출형 디폴트가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부채는 달러 표시 부채가 아니라 엔화 표시 부채다. 그 비율은 100%에 가깝다. 미국 달러나 유로화 등 외화로 원리금을 갚아야 하는 중앙정부 직접 부채는 사실상 없다. 국제협력은행 등 특수 정부계 기관이 국외에서 외화를 조달할 때 일본 정부가 보증을 서는 일부 외화보증채가 존재하지만, 이는 전체 나랏빚 규모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극단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일본은행이 윤전기를 돌려 엔화를 찍어내면 빚 자체는 원천적으로 다 갚을 수 있다.
사실 일본은 인플레이션과 엔저를 통해 빚을 해결하고 있다. 돈을 풀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물가를 올려 실질적인 빚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있다.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가 파산 직전이라 생기는 지급불능의 징후라 보기 어렵다. 외려 방대한 국가부채의 무게를 통화가치를 낮춰 조용히 털어내는 과정이라 봐야 한다.
미국과 일본 등의 국가부채 문제는 분명 현실이다. 다만 현재의 비관적 담론은 마치 지구의 종말이 머지않은 듯, 혹은 법화의 몰락이 필연인 듯 현실을 과장하고 있다. 법화 시스템 내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화폐가치 하락이나 개별 국가의 통화 약세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 문명의 무역금융 인프라 전체를 지탱하는 법화 및 기축통화의 프레임워크 자체가 무너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상호 의존성으로 특정 국가, 특히 기축통화국의 시스템 붕괴나 이탈은 있을 수 없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순간 현재의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비관론에 매료되기 쉽다. 성행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그것이 진실을 담보하진 않는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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