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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November 4, 2026

‘녹색멘토’와 ‘디딤돌 선배시민’…“누군가 돕는 주체로 삶의 의미 되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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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등 반려식물 멘토 명옥씨
“아이들의 손 뽀뽀에 감동 받았죠”
중원노인종합복지관서 활동 조규섭씨
“돌봄받기 넘어 봉사활동 통해 새삶”

노년층 사회참여 의지 정책화 필요
“선배시민 역량 펼칠 기회 계속돼야”

명옥씨가 지난 8월 ‘녹색멘토’로서 공주 지역 어린이집을 찾아가 다육식물을 설명하며 화분 심기를 진행하고 있다. 공주시니어클럽 제공
명옥씨가 지난 8월 ‘녹색멘토’로서 공주 지역 어린이집을 찾아가 다육식물을 설명하며 화분 심기를 진행하고 있다. 공주시니어클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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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이미 인구가 경제의 ‘보너스’가 아닌 ‘부담’이 되는 ‘인구 오너스(Onus)’ 시대로 들어섰다. 다만 충격의 크기는 고령층의 사회 참여 방식과 돌봄 체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인구 구조 변화의 위기를 어떻게 공동체의 활력으로 바꿀 수 있을지를 3회에 걸쳐 모색한다.

“제 손에 뽀뽀를 해주는데 감동을 받았어요.”

명옥(63)씨는 아이가 입을 맞춰주던 짧은 순간, 삶이 다시 열리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지난여름, 그는 ‘시니어 반려식물 녹색멘토’로서 어린이집을 찾았다. 동료 멘토들과 함께 기른 다육식물을 설명하고, 아이들과 같이 화분에 심는 시간을 가졌다. 화분을 든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새로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퇴직한 지 3년. 고령의 친정 부모님을 가까이서 돌보며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던 그는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 만난 것이 녹색멘토 사업이다.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노인들이 직접 키운 반려식물을 아동과 고령 가구에 나누고, 화분 심기와 관리법을 알려주며 정서 안정을 돕는 노인역량 활용 사업이다. 지난해 정부의 신규 노인일자리 개발 공모에 선정돼 공주 등 여러 지역에 보급됐다.

지난 10월19일 충남 공주시니어클럽에서 만난 명씨는 “이 일을 하며 긍정적이고 규칙적인 삶으로 바뀌었다”며 “아버지가 ‘나를 돌보느라 네가 하는 일에 못 가는 상황이 없게 하라’고 격려까지 해주신다”고 했다. 그는 하루 5시간씩, 주 3회 참여한다. ‘찾아가는 이동복지관’ 관계자들과 함께 버스가 뜸한 마을에 방문해 식물을 나눠주고, 노인들의 안부도 살핀다. 이 일로 활동급여도 받지만, 경력을 살려 지역사회 돌봄에 기여하고 일상의 활력을 되찾은 점이 더 기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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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시민으로 다시 설 수 있게 돕는 현장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성남 중원노인종합복지관은 노인을 복지 수혜자로만 보지 않고, ‘선배 시민’이란 개념으로 바라본다. 나이 많고 고집 센 선배가 아니라, 먼저 걸어온 경험을 살려 동료 시민의 권리와 공동체 안전을 지키는 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주체라는 뜻이다. 복지관은 호칭도 ‘어르신, 어머님’ 대신 ‘선배님’을 사용한다. 신명희 관장은 “복지관에 일자리나 프로그램 참여, 식사 등 여러 목적으로 오시지만, 그 이면에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연세가 드시면 관계가 많이 끊어지는데, 의미는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며 “복지관은 이분들이 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역할을 만들 수 있게 관계를 확장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복지관은 복지 서비스를 충실히 제공하면서도, 자발적 모임을 지원한다. 쓰레기 분리배출·수거 등 지역 문제를 얘기하고 해결에도 나서는 ‘디딤돌’, 노인·중장년·청소년이 함께 기후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소리통’, 사회봉사 처분을 받고 복지관에 온 청소년들의 멘토가 돼주는 ‘그루터기봉사단’, 텃밭에서 가꾼 작물을 이웃과 나누는 ‘중원농부’ 등이 대표적이다. 모임 참가자들은 인근 학교 특별활동 수업에 들어가 ‘내가 꿈꾸는 마을’ 등을 주제로 대화하고 학생들과 발표하는 기회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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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섭씨가 지난 10월15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일대에서 환경정화 활동 및 쓰레기 분리배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성남 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조규섭씨가 지난 10월15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일대에서 환경정화 활동 및 쓰레기 분리배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성남 중원노인종합복지관 제공

10년 넘게 복지관에서 활동한 조규섭(81)씨는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사업에 실패한 뒤 큰 실의에 빠져 있었다”는 그는 복지관의 선배시민대학 1기로 졸업한 뒤 삶의 새 문을 열었다. ‘디딤돌’을 비롯한 4개 모임에 참가 중인 그는 시의원 정책질의 모니터링, 담배꽁초 없애기, 살던 곳에서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재가복지 운동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홀로 지내지만 봉사활동을 하며 외로움을 극복하고 있다”며 “돌봄을 받는 게 아니라, 선배 시민으로서 지역사회를 함께 돌보는 주체로 바뀐 게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했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수석부회장인 신명희 관장은 초고령사회에서 노인 정책과 관련해 “최소한의 소득 보장이 이뤄지면 노인은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참여할 것”이라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이들에게 사회적 관계의 고리를 계속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김용학 공주시니어클럽 관장도 “노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활용해 참여하고 싶은 활동과 지방자치단체가 하고 싶은 것과의 미스매치(불일치)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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