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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October 31, 2026

[주말의 취향]“네가 가장 친했잖아, 이유를 몰라?”···친구의 죽음 앞에 남겨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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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빈자리 없음>. 설명되지 않는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28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빈자리 없음>. 설명되지 않는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주말의 취향]“네가 가장 친했잖아, 이유를 몰라?”···친구의 죽음 앞에 남겨진 사람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친구와 가장 가까웠던 나에게 이유를 묻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답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빈자리 없음>은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자살로 잃은 이들이 겪는 슬픔과 죄책감, 원망 등 복잡한 감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고등학생 예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시작됩니다. 예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인 주은에게 질문이 쏟아집니다. 주은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친구들은 그를 의심하며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주은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수학 교사 이림입니다. 예지와 주은의 담임이었던 이림은 다시 주은의 담임을 자청하고, 매주 금요일 수학 보충수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은은 자신이 예지를 죽였다는 뜻밖의 말을 꺼냅니다. 과연 두 친구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연극 <빈자리 없음>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빈자리 없음>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빈자리 없음>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빈자리 없음>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작품은 언뜻 예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극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선은 죽음의 원인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옮겨갑니다. 이들은 저마다 죄책감과 자기방어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주은은 예지에게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 자살의 원인을 찾으려는 데 분노하죠. 누군가를 탓하면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작품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독특한 극의 구성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연극은 모두 25개의 장면으로 이뤄진 퍼즐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16개 장면이 짧고 빠르게 이어지며 주은이 예지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2부에서는 9개 장면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펼쳐집니다.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관객도 사건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무대 역시 퍼즐을 닮았습니다. 무채색 공간에 교실과 상담실, 미술실, 옥상 등이 뒤섞여 있고 과거와 현재의 장면이 교차합니다. 인물들의 복잡한 기억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인데요, 장면마다 달라지는 인물들의 입장과 감정에 주목하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헌 작가. 두산아트센터 제공

이경헌 작가.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빈자리 없음> 무대.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빈자리 없음> 무대. 두산아트센터 제공

극본을 쓴 이경헌은 202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된 젊은 극작가입니다. <빈자리 없음>은 그가 자살 사별자를 소재로 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앞선 <서재 결혼 시키기>와 <감정 연습>이 남겨진 이들의 연대와 애도의 과정에 주목했다면, 이번 작품은 죽음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원망하고 상처 주는 인간의 모순과 복잡한 내면을 파고듭니다.

앞선 두 작품을 연출했던 신명민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는 연출 노트에서 “애도에는 정답이 없다”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군가의 슬픔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이 존재할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썼습니다. 박세인(남주은 역), 정다함(안예지 역), 김빛나(강다미 역) 배우가 학생을, 신윤지(이이림 역), 박용우(임윤준 역), 우미화(노현희 역) 배우가 교사를 연기합니다.

연극 <빈자리 없음>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연극 <빈자리 없음>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작품의 자문을 맡은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는 “애도는 알 수 없는 것을 끝내 알아내는 일이라기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남아 있음을 견디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연극 제목인 <빈자리 없음>도 곱씹어볼 만합니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지우거나 다른 것으로 채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부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공연을 보고 나면 우리가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 같습니다.

공연은 11월15일까지 이어집니다. 11월1일에는 이경헌 작가와 신명민 연출가가, 8일에는 고선규 박사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도 열립니다. 공연 시간은 휴식 10분을 포함해 180분이며 13세 이상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 회차 한글 자막이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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