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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October 14, 2026

내면의 그리스도를 깨달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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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이 ‘내면의 그리스도를 깨닫기 위해 내면의 에고를 제어하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해 제미나이가 인공지능으로 합성한 이미지.
조현이 ‘내면의 그리스도를 깨닫기 위해 내면의 에고를 제어하는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해 제미나이가 인공지능으로 합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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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강한 자의 손을 묶지 않으면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강제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없다. 먼저 그의 손을 묶은 후에야 그의 집을 털 수가 있느니라.’(도마복음 35)

위 구절은 마태(12:29), 마가(3:27), 누가(11:21)가 기록한 것처럼 강한 사탄(귀신)을 굴복시키고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그리스도(참나)를 깨닫기 위해 ‘강한 자’(에고)의 손을 제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요한복음 14:20). 이원적인 강한 육의 ‘나’(자기 목숨)를 제거하고 영원한 생명인 영의 ‘나’(참나)를 깨닫는 자는 하나가 되는 구원을 이루게 된다(요한복음 6:63). 하나(Oneness)가 되는 영생의 길은 고통의 원인인 이원성(에고)을 제압하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인 우주적 그리스도(참나)를 회복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 ‘나의 옳음’에 집착하는 ‘강한 자’(에고)의 손인 육의 ‘나’(제 목숨)를 제어하고 영원한 신성(참나)을 찾는 것이다. 성경은 ‘신성(One)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로마서 1:20)고, 불경도 ‘우주 삼라만상에 불성(One)이 있다’(열반경)고 하여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성(불성)의 보편적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모든 종교의 목표는 비 이원성의 신성(참나)에 눈을 뜸으로써 이원성(애고)을 근절하는 것이며, 신학자 한스 큉, 요한 바울 2세는 ‘타 종교의 공동체 안에도 구원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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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나는 나를 장례 치렀다’(오상아·吾喪我)고 한 것은 생명인 영의 ‘나’(참나)를 자각한 자가 ‘강한 자’(에고)의 손인 육의 ‘나’(에고)를 소멸하였다는 것이다. 사망의 이원성(에고)에서 벗어나는 자는 하나의 생명(참나)으로 옮겨진다(요 5:24). 이때 신과 인간, 정신과 물질, 시간과 영원 등을 분별하는 ‘육의 몸’인 에고가 사라지고, ‘신령한 몸’인 생명(참나)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5:44). 영적 ‘죽은 자’(에고)가 하나의 생명(참나)으로 부활하면 거짓된 분별심이 만들어 낸 고통, 두려움을 벗어나서 절대 자유의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요 8:32).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다’(고전 3:16)고, 불경은 ‘부처는 그대 자신의 마음이다’(심즉시불·心卽是佛)라고 하여 내면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내면의 신성(불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강한 자’(에고)의 손을 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원성(에고)을 제어하고 하나의 신성(참나)을 자각할 때 만물에는 음양의 조화가 있으며(도덕경 42장), 서로 보충하는 ‘상보성의 원리’(양자물리학)를 이해하게 된다. 상보성의 진리는 분별에 의한 혼란스러운 산업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너와 나를 나누는 물질문명 사회의 여러 가지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분별을 넘어선 전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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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에서 ‘물체가 입자인 동시 파동이다’(입자-파동의 이중성)라고 하는 것은 물체가 있는 동시에 없다는 말이며, 허상인 개체적 자아(거짓 나)의 존재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환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상인 ‘강한 자’(에고)의 손을 제어하는 자는 실상의 영원한 생명(참나)을 깨달을 수 있다. 불경은 ‘만약 너와 나라는 두 마음(에고)으로 분별하면, 부처(예수)를 마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경덕전등록)라고 한다. 너와 나를 나누는 이원성(에고)을 벗어나서 마음 밭에 감추어진 하나의 보화(참나, 골 2:3)를 자각한 예수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막 3:33)라고 반문하셨다.

이원적인 ‘강한 자’(에고)의 손을 제어하는 본성(참나) 깨달음으로 마음이 청결하게 된 자는 신(부처)의 광명을 직관한다(무량광불·無量光佛). 불교는 ‘마음을 밝혀서 본성을 깨친다’고, 유교는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키운다’고, 도교는 ‘마음을 닦아서 본성을 단련한다’고 하여 본성(참나)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종교는 외적 계율이나 교리보다 분별과 무지의 이원성(에고)을 벗어나는 본성 깨달음, 즉 ‘하나 됨’(Oneness)을 강조한다. 깨달음은 AI 로봇 시대에 대응하여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는 영성의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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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경은 ‘모든 것은 하나의 생명이다’(요한복음 17:21)라고, 불경도 ‘모든 것은 상호연결된 하나의 생명이다’(연기법)라고 한다. 현대물리학은 ‘우주는 상호 연결된 사건들의 역동적인 그물이다’라고 하여 ‘하나의 생명’을 증명하고 있다. 이원적인 ‘강한 자’(에고)의 손을 제어하는 순간 모든 존재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새 하늘과 새 땅’(천국, 열반)의 경지가 고요하고 즐거움으로 찾아온다(열반경). 주와 객, 득과 실 등의 이원성(에고)을 제어하지 않고는 내면의 영원한 생명(참나)을 자각할 수 없다. 인간의 정체성(참나)은 원죄로 인한 죄인이 아니라 완전한 생명(참나)이며(마태복음 5:48), 본래 마음속에 신(부처)의 씨(생명)가 있다(본래시불·本來是佛). ‘강한 자’(에고)의 손을 무력화하고 내면의 생명(참나)을 깨닫는 자는 신(부처)이 되며(성불, 요한복음 10:34), 보이는 이원성의 현상계(허상)를 버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의 진리(실상)를 체험하는 환희심을 맛본다(법희선열·法喜禪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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