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자퇴에서 평범한 직장인까지…방황 절정일 때 여행 떠나 생긴 일 [장주영 기자의 여책저책]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는 합니다. 대놓고 치유를 찾기도 하고, 여행 중 뜻밖의 상황을 통해 힐링을 얻기도 합니다. 여행은 상처를 지워주진 않지만 상처를 안은 채로도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바뇨별(정반효) 작가가 쓴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는 3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인연을 통해 잊고 있던 자신을 되찾습니다. 저자는 여행이 여행지를 찾는 목적지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몸소 느낍니다. 여책저책은 방황 속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자의 모습을 만납니다.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
바뇨별(정반효) | 미다스북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문득 자신의 모습을 마주기도 한다. 그 계기가 여행지의 분위기나 특정 상황 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얼굴 내지는 대화 등을 통해서 이뤄진다. 책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행복하게’는 35개국을 여행한 바뇨별(정반효) 작가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간 기록을 담았다.
저자에게 여행은 처음부터 낭만적인 취미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방황하던 시절, 여행은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35개국을 오가며 세상을 만났다. 여행은 그에게 단순히 많은 나라를 경험했다는 이력을 남긴 것이 아니라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책을 읽다 보면 여행의 중심에 ‘장소’보다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인연, 우연히 만난 무슬림 가족과의 재회, 시간이 흘러 소녀에서 엄마가 된 이들과 다시 만나는 순간은 여행이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행에서 만난 인연은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저자는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스리나가르로 향하고, 어린 시절 만났던 아이들이 훗날 엄마가 돼 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한번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다시 자신의 삶에 등장하는 순간, 여행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현재의 삶과 연결된다.
몰타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의 음식을 대접하며 자신의 문화를 나누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가까워지는 경험도 한다. 이처럼 책 속 여행은 혼자 떠났지만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을 반복한다.
35개국의 기록에는 예술과 역사, 도시와 자연도 등장한다. 네덜란드에서는 페르메이르와 반 고흐를 만나고, 벨기에에서는 작품 속 인물들을 찾아간다. 영국에서는 꿈꾸던 축구 구장을 찾아 버킷리스트를 이루고,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와 달을 바라보며 자신의 욕망과 꿈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여행지는 결코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장소마다 저자의 삶이 겹쳐지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이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책 제목은 2013년 세상을 떠난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오래된 인력거’에 등장하는 ‘토레쿠시 토리검(조금은 행복하게, 조금은 슬프게)’이라는 표현에서 가져왔다. 저자는 이를 ‘인생의 황금률’처럼 받아들인다.
돌아보면 그의 삶에도 슬픈 순간이 있었다. 고등학교 자퇴 이후의 방황,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 실연의 아픔처럼 쉽게 꺼내기 어려운 기억들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 상처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여행을 통해 그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조금씩 자신의 일부로 여긴다.
여행은 모든 상처를 단번에 치유하는 마법이 아니다. 때로는 깨져버린 환상을 마주하게 한다. 여행자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게 한다. 폴란드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이집트에서는 여행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떠올리는 식이다. 여행이 즐거운 풍경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깊게 만든다는 의미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35개국’이라는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나라를 갔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 돌아왔느냐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저자는 새로운 꿈을 얻었다. 그리고 지나온 시간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누군가는 추억으로 일평생을 살아간다고 한다. 나도 이 이야기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은 떠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가 삶이 힘들 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쌓인 기억은 한 사람을 지금의 자리까지 데려온다.
어쩌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몰랐던 나를 만나게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나에게 새로운 꿈을 선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하며 저자가 마지막에 발견한 것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자신의 삶이다. 그리고 그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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