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도 안 나오는데…수컷은 왜 굳이 젖꼭지를 달고 태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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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노정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이 기후변화와 맞닿은 동물과 인간의 몸에 남은 진화의 흔적을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소개한다. 노 관장은 서울대 생물학과에서 말의 행동생태와 진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장과 동물원장을 지냈고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을 역임했다. 동물과 인간의 진화 이야기를 격주로 싣는다.
사자도, 고양이도, 돼지도 수컷에게 젖꼭지가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수컷은 단 한 마리도 없다. 젖을 만드는 것도 물리는 것도 오로지 암컷의 몫이다. 수컷의 가슴에는 젖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수컷의 젖꼭지는 쓸모가 없는데 왜 달고 태어날까?
그 답은 새끼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살펴봐야 알 수 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된 뒤 몸의 형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암수가 결정된다. 그런데 암컷과 수컷으로 갈라지기 전부터 몸에는 이미 젖꼭지가 될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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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의 몸속에는 ‘염색체'라는 아주 작은 설계도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그 안에는 아기가 남자가 될지 여자가 될지를 정하는 특별한 신호가 들어 있다. 이 신호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엄마 배 속에서 아기가 자란 지 약 7주쯤 되었을 때부터 작동하기 시작하며 이때부터 아기가 남자 또는 여자로 되는 길을 걷는다.
그런데 젖꼭지와 젖샘으로 자랄 조직은 이보다 앞서 성별이 결정되기도 전 발생 초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즉 몸이 '남자가 될 것'이라는 신호를 받기도 전에 가슴에는 이미 젖꼭지의 밑그림이 그려져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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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자로 자랄 태아는 젖꼭지가 필요 없으니 더 크게 자라게 할 필요가 없다. 아예 없애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런데 이미 만들어진 젖꼭지를 없애는 별도의 장치는 없다. 그 결과 출생 시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젖꼭지와 유방 조직은 겉모습이 거의 동일하다. 둘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벌어지는 시점은 한참 뒤인 사춘기다. 이때 호르몬의 영향으로 여성의 젖샘 조직은 자라 가슴이 부푼다. 그러나 남성의 젖샘 조직은 성장을 멈추고 젖꼭지만 작게 남아 있다.
그렇다면 포유류에서 젖샘이라는 구조 자체는 애초에 왜 생겨났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포유류의 아주 먼 조상인 단궁류(Synapsida)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먼 조상은 새끼를 낳을 때 알로 낳았다. 그러다 나중에 새끼를 배 속에서 키워서 낳는 동물로 진화해 오늘날의 포유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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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먼 조상이 어떤 알을 낳았는지는 화석 증거가 부족해 확실치 않다. 다만 지금도 알을 낳는 포유류인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를 통해 살펴보면 우리가 먹는 달걀처럼 딱딱한 껍질이 아니라 종이처럼 얇고 가죽 같은 껍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알은 수분이 쉽게 마른다는 게 문제였다. 쉽게 말하면 알이 말라서 새끼가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단 얘기다.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가 둥지에서 알을 품고, 새끼를 돌보는 것처럼 포유류의 먼 조상 역시 알을 품고 돌보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때 어미의 배 쪽 분비샘에서 나온 촉촉한 액체가 알 표면에 닿아 알이 마르지 않도록 수분과 여러 성분을 계속 공급했을 것이라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말하자면 젖샘은 애초에 새끼를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을 적셔 주던 분비샘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살아 있는 증거가 바로 오리너구리와 가시두더지다. 이들은 지금도 알을 낳지만 부화한 새끼에게는 젖을 먹인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우리가 아는 젖꼭지가 없다. 대신 배 쪽 피부의 넓적한 분비 부위인 '젖반(mammary patch)'에서 젖이 배어 나오면 새끼가 그 젖은 털을 핥아 먹는다.
이는 젖샘이 원래 땀샘에서 갈라져 나와 발전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알을 촉촉하게 지키던 이 오래된 분비샘이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새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오늘날의 젖가슴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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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꼭지 흔적은 모든 척추동물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새는 먹이를 토해 새끼를 기르고, 파충류는 대체로 알을 땅에 묻은 뒤 떠난다. 이처럼 이들에게는 젖으로 새끼를 기르는 양육 방식 자체가 없다. 그래서 젖샘을 만들지 않았고 젖꼭지 같은 흔적도 없다. 결국 젖꼭지는 포유류가 젖으로 새끼를 기르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결과,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공통으로 남아 있는 흔적이다.

그렇다면 이런 수컷의 젖꼭지는 앞으로도 영영 쓸모가 없을까? 동남아시아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다야크과일박쥐(Dyacopterus spadiceus)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성체 수컷 박쥐의 가슴을 눌러 짜니 젖샘에서 실제로 소량의 젖이 배어 나왔다. 그 양은 암컷의 젖가슴에서 나오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고, 수컷이 왜 젖을 분비하는지 그 진화적 이유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례는 수컷도 젖을 분비할 수 있는 조직과 잠재력이 남아 있으며 다만 대부분의 포유류에서는 호르몬 신호가 그 잠재력을 깨우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결과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보자. 몇만 년 후, 수컷도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쪽으로 진화할까? 만약에 이런 변화가 일어나려면 그럴 만한 뚜렷한 선택압이 필요하다. 암컷 혼자 새끼를 기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수컷의 수유가 새끼의 생존율을 높인다면 그것이 선택압이 될 수 있다.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으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검증된 예측이 아니라 그저 추측일 뿐이다.
왜 자연선택은 수컷의 젖꼭지를 없애지 않았을까? 진화생물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답을 제시한다.
첫째, “굳이 없앨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몸에 어떤 구조가 있는 것 자체가 별다른 부담을 주지 않는다면 자연선택이 애써 없앨 이유가 없다. 수컷의 젖꼭지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데나 자손을 남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둘째, 유전적 상관의 문제다. 젖꼭지를 만드는 유전자는 남녀에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유전자에서 발현된다. 그래서 여자에게는 발현되게 두고 남자에게만 끄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려면 몸에 새로운 장치가 하나 더 필요한 데다 남성의 젖꼭지를 없앤다고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굳이 그런 장치를 새로 만들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결국 수컷의 젖꼭지는 특별한 이유로 남겨진 게 아니라 그저 없앨 이유가 없어 남은 흔적이다.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형질은 세대를 거치며 줄어들지만 아무런 불리함이 없는 형질은 그대로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수컷의 젖꼭지는 그렇게 지워질 이유 없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설계도의 흔적이다.
참고로 이참에 아주 오래전부터 젖을 분비해 온 오리너구리를 직접 보시길 권한다. 다만 야생에서 만나기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현지인에게도 쉽지 않다. 대부분 물속에 숨어 지내고 새벽과 해 질 무렵에만 활동하기 때문이다. 가장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동물원이나 보호시설이다. 시드니 타롱가 동물원, 멜버른 힐즈빌 야생동물보호구역, 더보에 있는 타롱가 웨스턴 플레인즈 동물원이 대표적이다. 호주 밖에서는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 사파리 파크가 사실상 유일하다. 살아있는 개체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서울 연희동 서대문자연사박물관 3층에서 표본으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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