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Follow live: Ramirez's error paves way for Rays' rallyESPN DeportesOhtani estará en alineación de Dodgers en J3 vs. BrewersPunchTinubu has done more for North — YilwatdaThe Jerusalem PostIDF chief vows to apply October 7 lessons, pledges to pursue Israel's enemies at military ceremonyCNN TürkKırmızı bültenle aranan cinayet şüphelisi Mardin’de yakalandı한겨레“부가 흘러나가는 도시에서 머무는 도시로”…부를 쌓는 해법 찾다UOLPGR diz que não há evidências de que Mendonça foi alvo de arapongagem por cúpula da PFZDF heuteEntdecken Sie das ZDF-NachrichtenstudioEl ComercioTemblor en Chile hoy, martes 13 de octubre: hora exacta, epicentro y magnitudReality Blurred3 new reality competitions, including Assassin, and 2 revivals中国新闻网A股开盘:超3400只个股飘绿,三大指数集体低开La NaciónMurió Netinho, el artista detrás de la exitosa canción “La isla del sol”
The Daily Newsstand · Free, Always
Wednesday, October 14, 2026

[에프워드] ⑮ 여자도 고양이도 죄가 없다

Translate
일러스트 | 이아름 기자

일러스트 | 이아름 기자

페미니즘(Feminism)이 새로운 에프워드(F-word: 성적인 욕설을 우회적으로 의미)가 된 시대, 여성(F)의 관점으로 금기에 반기를 드는 칼럼 [에프워드]입니다.

얼마 전 ‘새 전문’을 표방하는 한 유명 유튜버가 길고양이를 ‘살처분’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큰 논쟁이 일었다. 이 유튜버는 길고양이가 (생긴 것과 달리) 생태계 상위 포식자이고, 조류를 사냥하고 공격해 새 개체수를 감소시키는 원인이라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길고양이가 “성역화됐다”고도 주장한다. 이 유튜버만이 아니다. 그를 비롯해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은 ‘악의 축’, 측 길고양이를 비호하는 세력으로 ‘캣맘’을 지목한다. 이 구도에서 캣맘은 ‘무분별하게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번식시켜서 도시 생태계를 왜곡시키는 생각없고 이기적인 여성’으로 형상화된다.

고양이를 비롯한 여러 동물을 보살피는 이들이 꼭 여성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선 오로지 캣맘만이 논쟁의 구도에 놓여 있다. ‘캣대디’란 말은 있어도 잘 쓰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회에서 마찬가지다. ‘동물을 돌보는 자’는 으레 여성을 지칭하고, 캣맘을 비롯해 그러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에는 부정적 뉘앙스가 따라붙는다.

이번 [에프워드]는 여성이 동물을 돌보는 행위가 가부장적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맥락을 짚어봤다. 이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길고양이인지 집고양이인지의 문제도 아니다. ‘여성이라면 마땅히’ 돌봐야 할 대상을 규정하는 가부장적 가치 판단의 문제이자 그것을 거부하는 여성을 향한 뒤틀린 혐오의 문제다.

어디에나 있는 ‘여성과 고양이’

한국의 캣맘, 영미권의 ‘미친 고양이 아줌마(Crazy cat lady)’, 이탈리아의 ‘고양이 돌보는 여자(Gattara)’, 일본의 ‘고양이 아줌마(猫おばさん)’ 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통적으로 부정적 젠더 고정관념을 내포한다. 이 고정관념은 주로 나이들고 외로운 독신 여성, 괴짜 여성이라는 경멸적 의미로 재생산된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여성’, 혹은 바꿔서 ‘여성과 함께 있는 고양이’가 사악한 존재로 고착화된 역사로는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을 꼽을 수 있다. 서양에서 ‘여성+고양이’ 조합의 부정적 뿌리를 찾아 올라간 연구들은 대부분 이 시기를 언급한다. 당시 고양이는 마녀의 표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마녀는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사나 마술사와는 거리가 멀다. 전근대 유럽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당했던 여성 대부분이 결혼하지 않은 혹은 과부가 된 여성, 즉 혼자 사는 여성이었다는 연구들에서 보듯, ‘마녀’는 당시 시대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떠한 유형의 여성을 지칭했고, 고양이는 그러한 마녀가 곁에 두는 동물이었다. 마녀사냥은 수많은 여성들의 죽음으로 귀결됐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집단 광기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한 대목이다.

‘여성+고양이’를 둘러싼 부정적 이미지는 세월만큼 착착 쌓이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과 함께 선거를 뛰었던 JD 밴스 부통령이 2021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향해 ‘애도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여자들(childless cat ladies)’이라고 말했던 것이 재발굴됐다. 밴스 부통령은 당시 이 여자들이 “자신의 삶도 불행하면서 온 나라를 불행하게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 발언은 고양이와 함께 하는 여성을 향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뿌리깊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플랫]자식없는 캣 레이디

인간성 내려놓은 학대…왜 이렇게까지 하나

캣맘 일러스트 | 이아름 기자

캣맘 일러스트 | 이아름 기자

한국에서 고양이와 여성을 싸잡은 혐오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다. 그러나 그 강도는 절대 약하지 않다.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면 온라인상에서 길고양이와 그것을 돌보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조롱과 폭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캣맘을 표적으로 한 범죄 예고와 물리적 폭력도 종종 발생했으며, 실제 길고양이를 학대한 사례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이를 들여다보면 순전히 ‘도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자행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뒤틀리고 잔혹한 면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는 2021년 이른바 ‘길고양이 고어전문방’ 사태다.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해당 텔레그램 채팅방 구성원들은 길고양이 학대 영상과 사진을 올리는 ‘인증’ 과정을 거쳐 채팅방에 입장했으며 주기적으로 길고양이를 학대, 살해하는 행위를 공유하고 독려했다. 조주빈의 ‘N번방’과 유사한 구조였다. 참여자 일부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가 인정됐지만, 문제는 이와 유사한 제2의 ‘길고양이 고어전문방’이 잇따랐다는 점이다. 텔레그램뿐만 아니라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도 고양이 학대 콘텐츠가 계속해서 올라왔다.

학대 콘텐츠의 잔혹성은 일반인이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대방을 관찰하던 연구자 이진은 2022년 논문에서 “약 3일간에 걸친 잠복 관찰 끝에 더이상 이러한 방법론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올라오는 영상들은 매우 잔혹했다. 실제로 첫날 2시간 관찰 이후 나는 정신이 멍해지고 구토를 겪는 일시적 신체적 반응뿐만 아니라, 약 한 달 넘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고통 끝에 그는 연구 방법을 수정해야만 했다.

문제는 왜 이렇게까지, ‘생태적 우려’를 넘어 인간성마저 포기한 수준으로 고양이를 적대시하느냐는 것이다. 길고양이 학대를 연구한 자료들은 2010년대 초반 정도까지는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고양이 이미지가 긍정적인 쪽에 가까웠다고 서술한다. 고양이 특유의 엉뚱함과 귀여움을 소재로 한 ‘밈’이 활발히 유통됐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도둑고양이’에서 ‘길고양이’로 언어를 바꾸는 쪽으로 흘러갔다.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2017년 2월 27일 국책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이 ‘고소득·고학력 여성의 눈 낮춘 결혼 유도’ 등 부적절한 출산율 제고 대책을 제안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도현 기자

‘불꽃페미액션’ 회원들이 2017년 2월 27일 국책 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이 ‘고소득·고학력 여성의 눈 낮춘 결혼 유도’ 등 부적절한 출산율 제고 대책을 제안한 것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도현 기자

분위기가 뒤집히고 새로운 구도가 형성된 배경으로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꼽힌다. 비혼·비출산을 내세운 젊은 여성들이 ‘결혼하느니 고양이랑 살겠다’ 등의 구호를 내걸었고, 고양이가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동기화되며 남초 커뮤니티의 반감을 샀다는 설명이 존재한다. 실제로 캣맘을 비난하는 댓글에서는 ‘캣맘=페미니스트’라는 등식이 흔히 등장한다. ‘캣맘=페미니스트=비건’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있다. 이 등식이 내보이듯 어느 시점부터 캣맘과 페미니스트는 하나로 묶이게 됐다. 이는 고양이가 사냥의 대상으로 전환된 배경을 일정 부분 설명한다. 어쩌면 그들이 문제삼는 것은 고양이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여성이 해야 마땅한’ 돌봄의 잣대

예나 지금이나 고양이는 여성의 애정을 받아내는 하나의 대상에 불과하다. 본질은 여성이 무언가를 돌보고 아낄 때 그 행위를 재단하고 평가하려는 시선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다룬 한국 안팎의 연구자들은 ‘가부장적 시선에 근거한 가치 승인의 문제’를 지목했다. 여성이 아이, 남편(남자친구), 가족 등을 제외한 대상을 돌보는 행위는 가부장제 하에서 ‘가치 있는 돌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중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등장한 ‘애도 없이 고양이나 키우는 여자들’란 표현이 중국 소셜미디어에 ‘무자녀 고양이 여자(无孩爱猫女·CCL)’란 용어로 수입됐다. 동일한 사전적 의미를 지닌 표현으로 현지화된 것이다. 중국 소셜미디어의 CCL 관련 텍스트를 분석한 지난 6월 연구는 “중국에선 고양이와의 직접적 관련성은 약화됐다. 이제 초점은 출산을 장려하는 주류 이데올로기와 충돌하는 ‘무자녀’ 선택에 더 맞춰졌다”고 평가했다. 연구자 장리쥔은 CCL이 “전통적 모성을 거부하고 반려동물 동반을 선택하는 미혼 여성을 지칭하는 차별적 꼬리표가 됐다”고 전한다.

연구는 “이 CCL들은 너무 이기적이다. 가족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나라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이익만 생각한다”, “이 여자들은 후손이 없으니 결국 멸종할 운명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고 매일 자기 재미만 좇다 죽는다면 그건 문제다” 등을 대표 사례로 꼽았다. 이러한 주장 속에서 고양이는 여성의 출산 및 양육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 그려지며, 고양이 돌봄은 여성으로서 해야 마땅한 역할을 방기하는 행태로 간주된다. 연구자는 “모성을 도덕적 의무로 규정하고 무자녀 여성을 이기적이거나 일탈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지배적 담론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는 재생산 노동을 도덕화하는 유교적 가부장제와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참정권 운동과 관련해 고양이의 이미지가 활용된 사례

여성참정권 운동과 관련해 고양이의 이미지가 활용된 사례

그렇기 때문에 고양이를 개로 치환해도 위의 등식은 얼마든지 성립한다. 실제로 대만에서 개를 돌보는 여성들이 사회적 혐오 대상으로 놓이는 맥락은 한국에서 캣맘이 다뤄지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만 출신 연구자 장자루는 대만에서 길거리 개를 돌보는 ‘개 엄마(狗媽媽)’를 둘러싼 맥락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대만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개 엄마’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중성화·구조·보호 등 말 거리의 개를 돌보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면서 때로 남성들로부터 적대와 위협을 겪었다.

연구자는 “정상적인 인간 어머니라면 오직 자신의 합법적이고 생물학적인 자녀만을 양육하고 돌봐야 하며, 여성의 돌봄은 생물학적 명령이자 가부장제의 수호자로서 수행해야 할 의무에 불과하다는 논리”가 대만 사회에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만약 거리 동물을 돌보는 행위가 ‘모성의 긍정적 확장’으로 여겨진다면, 개 엄마를 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개 엄마’가 돌보는 길거리 개는 “여성의 공간적·모성적 경계 위반에 대한 적대감의 직접적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다시 한국의 길고양이 혐오로 돌아오면, 길고양이는 보호자를 갖지 못하며 혈연을 비롯해 인간과 그 어떠한 연도 맺어져 있지 않다. 또한 집 안도 아닌 집 밖에서 거처없이 떠도는 동물로 일종의 ‘비천함’을 갖는다. 여성의 돌봄과 관심은 아주 다양한 존재를 대상으로 하는데, 이때 이렇게 취약하고 비천한 존재보다도 순번이 밀렸다고 느끼는 이들이 분노를 품는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고양이는 죄가 없다

‘여성이 해야 마땅한’ 돌봄의 대상을 규율하고 지정하는, 이 가부장적 잣대에서 털끝만치라도 벗어난 여성을 감지하는 레이더는 언제 어디서나 작동한다. 그 레이더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여성을 향한 분노가 고양이와 개로 대표되는 약한 존재에게 향하는 것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동물을 돌보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경멸과 혐오의 원형이다.

‘나이 먹고 ○○나 좋아하는 여자’, ‘혼자 ○○이나 하는 여자’란 비난 공식에서 ‘○○’의 자리에는 고양이와 개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을 집어넣을 수 있다. 남성, 연애, 임신, 출산, 육아 등 가부장제 하에서 가치있다고 승인받은 대상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말이다. 제도와 문화는 개인을 그렇듯 촘촘히 에워싼다.

18세기 영국 풍자화 ‘고양이 장례식의 노처녀들’. 미국의회도서관

18세기 영국 풍자화 ‘고양이 장례식의 노처녀들’. 미국의회도서관

이러한 비난은 가부장제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1789년 ‘고양이 장례식의 노처녀들’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영국 풍자화는 한 무리의 여성들이 각자 고양이를 껴안고 모여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을 그려냈다. 이들의 얼굴과 표정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됐다. 남편과 아이로 구성된 ‘정상가정’을 꾸리지 않고 고양이에 애정을 쏟는 여성을 향해 ‘비정상이며 우습다’는 낙인을 찍은 것이다. 한편 오늘날 한국에서 혼자 개를 산책시키는 젊은 여성들은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서 “개가 아니라 애를 키워야지”, “개 키우면 애 안 들어선다”는 류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보면 18세기 영국과 현대 사회의 ‘고양이+여성’, ‘개+여성’ 멸시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경멸과 혐오는 끝없이 이어지는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캣맘, CCL, 개 엄마 등으로 지칭 대상이 된 여성들이 스스로 ‘우리는 ○○이다’라고 선언하며 적극적으로 용어를 재정의하고 뜻을 더해가는 움직임이 곳곳에 존재한다. 이처럼 의미를 되찾아오는 작업에는 선례가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고양이는 여성 참정권 반대 광고에 자주 등장했다. 여성 참정권을 반대하는 이들은 ‘여성의 연약함’을 고양이의 속성과 등치시키며 여성 참정권은 고양이 참정권만큼이나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응해 일부 서프러제트들은 고양이를 여성참정권 캠페인의 마스코트로 내세우며 고양이의 상징성을 뒤집었다. 전세계에서 ‘애도 없이 개·고양이나 키우는 여자’를 자처하고 나선 수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전복의 계보를 이어받고 있다.

어쩌면 ‘여성의 동물 사랑’을 향한 혐오는 가부장제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근래에 들어 이런 혐오가 더욱 심해졌다고 체감되는 건 그만큼 가부장제의 불안이 커졌기 때문일까.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고양이는 죄가 없다”.

View the original on 경향신문 →

KioskNews shows a cleaned-up reading view extracted from the publisher’s page — the original always lives on their site, not 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