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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ctober 11, 2026

광주적십자병원의 문을 다시 열자! [신영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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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지난달 10일 5·18정신계승위원회를 열어 폐허로 방치되었던 (구)광주적십자병원을 활용한 ‘(가칭) 5·18 대동평화관 조성사업’을 심의·확정했다. 필자 제공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지난달 10일 5·18정신계승위원회를 열어 폐허로 방치되었던 (구)광주적십자병원을 활용한 ‘(가칭) 5·18 대동평화관 조성사업’을 심의·확정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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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계엄군이 도청에서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를 한 것이다. 밀려드는 사망자와 중상자들. 승용차에, 트럭에, 때로는 리어카에 실려… 총상 환자들을 실어 나르는 후배의 눈에 핏발이 섰다. … ‘헌혈, 헌혈을 요함!’ 지프를 통해 가두방송이 전달되자마자 수백의 헌혈자가 몰려들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헌혈자들. 부상자보다 많은 헌혈 시민 대부분이 여자들이다. 중학생도 보인다.”

지난달 18일 ‘국제인도주의 학술대회’ 류일환 박사의 발표문 ‘5.18 민주화운동과 적십자’ 속에 등장하는 1980년 5월 광주 한 전공의의 일기다. 하지만, 그곳은 굴욕과 상처의 공간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회생력의 역사적 성소이기도 했다. 저항뿐만 아니라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상처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듬던 연민과 헌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인도주의’라고 부른다. 그 중심에 병원들이 있었다. ‘병원 인턴 숙소에서 잠을 자면서 매일 거의 쉬지 않고 수술과 처치를 했던 외과 의사들’, ‘다 같이 눈물을 흘리며 부상자를 치료했던 의사, 간호사들’. 병원은 군인들에게 쫓긴 학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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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도주의의 중심에 있던 병원이 있다. 바로 광주적십자병원이다. 전쟁터 같던 상황에서 전남대병원 등 모든 의료기관의 헌신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광주적십자병원의 역할은 특별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병원이지만, 집단발포 현장인 전남도청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약 250명의 환자를 감당해야 했다. 또한 당시 3층에 혈액원이 있어 헌혈과 모든 병원의 혈액 공급을 담당했다. 무엇보다 지옥과도 같은 공간에서 모든 이들에게 인도주의를 상기시키고, 실제로 그것을 가동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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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곳에서 의지할 곳은 인도주의밖에 없었다. 당시 병원들은 인도주의의 상징인 적십자기 게양을 의논했다. “군인들이 병원인지 모르고 총격을 가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의료용 산소를 가져오기 위해 차에 적십자기를 달기도 하고, 광주로 보낸 긴급혈액의 수송이 실패하자, 당시 서영훈 적십자사 사무총장은 적십자기를 부착한 차량에 혈액과 의약품을 싣고 광주로 들어가기도 했다.

‘보호’가 절실했던 이들은 버스 등에 ‘적십자’를 붓으로 써 붙였다. 응급 약품과 산소가 떨어지자, 일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흰 가운에 적십자 완장을 찬 ‘민간 적십자대’를 만들고, 적십자기와 태극기를 차에 꽂고 응급의약품과 산소탱크를 병원들로 실어 날랐다. 의료진들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치료했다. 시위대를 뒤쫓다 대열에서 낙오되어 오히려 시민들에게 구타당하는 처지가 된 공수부대원을 적십자병원 직원들이 구출해 치료하고, “길 잃은 전투경찰 부대원 20여명이 도움을 청하자 적십자병원 지하에 피신시킨 후 사복을 입혀 내보낸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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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지난달 10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5·18정신계승위원회를 열어 그동안 폐허로 방치되었던 (구)광주적십자병원을 활용한 ‘(가칭) 5·18 대동평화관 조성사업’을 심의·확정했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오랜 고심 속 결정이었으리라. 최종적으로 기념관이 어떤 모습을 갖출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병원 문을 여는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념관이 세워진들 어디 응급실, 수술실, 혈액원을 다시 가동하는 것만 할까? 결정 소식을 듣고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왜 광주적십자병원은 문을 닫아야 했을까? 광주(1996년)만이 아니다. 부산(1986), 춘천(1987), 전주(1991), 목포(1994), 백령(1995), 대구적십자병원(2010)도 문을 닫았다. 모두 ‘만성 적자’가 이유였다. 하지만, 병원 건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광주적십자병원만은 못하더라도 이들 병원도 자기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곳은 긴 세월 동안 쪽방 주민, 노숙자 등 취약 주민들의 마지막 치유소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초고령 사회를 영리병원들만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설마 했던 계엄군이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고, 전세계 곳곳에 전쟁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이때, 인간이기를 거부한 그곳에서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냈고, 피난처를 제공했던 인도주의, 적십자의 깃발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인류는 이제 어디로 도망쳐 숨을 것인가? 누구와 함께 피를 나눌 것인가?

광주적십자병원, 아니 모든 적십자병원의 문을 다시 열자. 환자를 수송하다 계엄군 총에 맞아 사망한 3명의 ‘민간 적십자 대원’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 병원 앞 긴 헌혈 줄 속에 다시 서자. 그날 헌혈을 마치고 돌아오다 계엄군 총에 맞아 죽은 한 여자 중학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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