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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October 23, 2026

은행나무 물들면 내 마음은 ‘퍼플피시’를 찾는다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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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시인 앤 카슨. 2024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의 모습. Jay Dixit·위키미디어 코먼스
캐나다 시인 앤 카슨. 2024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의 모습. Jay Dixit·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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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단어들을 배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프랑스 시인 랭보에게서 두개의 단어를 배웠다. 하나는 ‘에너지 도둑’(에너지를 빼앗는 상황이나 사람. ‘에잇! 이 에너지 도둑 같으니라고!’ 이렇게 쓰기에 좋다.) 또 하나는 ‘구원자 단어’(말 그대로 구해주는 단어. 랭보에게는 ‘희망’이 구원자 단어였다. ‘너의 말은 나의 구원자 단어’. 이렇게 쓰기에 좋다.) 202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앤 카슨에게도 새로운 단어를 배웠다. 그의 책 ‘플로트’의 겉장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정해진 순서도 없고 주제도 제각각인 스물두권의 소책자 모음. 읽기는 자유 낙하가 될 수 있다.”

플로트 l 앤 카슨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2023)
플로트 l 앤 카슨 지음,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2023)

스물두권의 소책자는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들어 있다. 독자는 마치 타로를 뽑듯 소책자 몇권을 뽑아 쭉 늘어놓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침묵하고 있을 권리에 관한 변주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소책자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주색을 뜻하는 영어 단어 퍼플(purple)은 퍼플피시를 지시하는 그리스어 명사 포르피라(porphyra)에서 유래한 단어 푸르푸레우스(purpureus)에서 유래한다. 고대에는 이 해양 연체동물, 정확하게는 자주삿갓조개 또는 뿔고둥에서 온갖 자주색과 빨간색 염료를 얻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어에서 퍼플피시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칼케’라는 이름인데, 이 단어에서 골치 아픈 동사와 은유들이 생겨났다.

“‘퍼플피시를 찾다’라는 뜻의 동사 칼카이네인(kalchainein)은 요동치는 깊은 감정, 즉 불안으로 점점 음울해지기, 걱정으로 속 끓이기, 암울한 생각 품기, 마음속 깊이 골똘히 생각하기 같은 것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렇게 쓰인다. “무슨 일이야? 넌 어떤 소식을 듣고 마음이 어두워져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칼카이누스)이 틀림없어!” ‘칼카이네인’은 외우기 어려웠지만 ‘퍼플피시를 찾다’는 금방 각인되었다. “어떻게 지내?” “나, 퍼플피시를 찾는 중이야”(잘될 리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점점 어두워지는 중). 나는 가을에, 은행나무 노랗게 물들 때 꼭 퍼플피시를 찾는다. 돌아가신 아빠가 은행을 무엇보다 좋아했기에 아빠가 그립고 힘이 없어진다. 그 외에도 퍼플피시를 찾을 일은 많다. 그때는 대체로 내 영혼이 앤 카슨의 책 ‘녹스’에 나온 한 구절처럼 된다. “더 나은 용어를 결핍하여 바람에 휩쓸린 영혼”. 그럴 때는 나를 끄집어내 줄 더 나은 생각(구원자 단어)이 필요하다. 다행히 올가을에는 사랑스러운 통영 친구가 이런 글귀를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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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이로운 계절의 따스함과 햇볕과 기쁨과 향기가 어찌 쓸모없이 사라져서야 되겠는가? 꽃이나 어디 다른 데에 그런 것이 응축되어 손에 닿을 곳에 매달려 있어서, 나중에 춥고 험한 시기에 우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아서는 왜 안 된단 말인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한 주머니씩 가득 담아서 아쉬울 때를 위해 보관해 둘 수만 있다면!”(헤르만 헤세, ‘보리수꽃’) 이 아름다운 구절 때문에 마음이 서서히 밝아졌다. ‘퍼플피시를 찾다’는 마음속 혼란과 추락을 표현해 주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어와 우리의 연결자인 앤 카슨이 ‘퍼플피시를 찾다’의 반대말도 알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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