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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November 5, 2026

편의 기능이 공격 통로로…바이낸스 해킹에 악용된 이더리움 지갑 업그레이드[엠블록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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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의 핫월렛에서 10월 29일(UTC·한국 시간 30일 새벽) 가상자산이 빠져나갔습니다. 바이낸스가 추정한 피해 규모는 약 63억달러입니다. 11월 2일 서울 외환시장 원·달러 환율 종가인 1343.8원을 적용하면 약 8조4700억원입니다.

이번 엠블록레터에서는 바이낸스 지갑 하나를 4분도 안 돼 비우는 데 쓰인 이더리움 기능 ‘EIP-7702’를 살펴봅니다. 이 기능이 공격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내 거래소 보안 규제에는 어떤 질문을 남겼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서명 하나로 바뀌는 지갑

사진설명

EIP-7702는 2025년 5월 7일 이더리움 ‘펙트라(Pectra)’ 업그레이드 때 도입됐습니다. 개인 키로 거래에 서명하던 일반 지갑에 스마트컨트랙트 기능을 붙일 수 있게 해 줍니다. 지갑 주인이 “내 지갑에서 이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허용한다”는 위임 서명을 하고, 이것이 네트워크에 등록되면 지갑 주소를 바꾸지 않고 지정한 프로그램의 코드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 거래를 한 번에 처리하거나 다른 사람이 수수료를 대신 내는 등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은행의 자동이체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계좌 주인이 한 번 신청하면 해지하기 전까지 정해진 조건에 따라 돈이 나가는 것처럼, 지갑에 등록한 위임도 변경하거나 해제하기 전까지 효력이 이어집니다. 다만 권한의 범위는 다릅니다. 자동이체는 정해진 금액을 보내는 기능이지만 EIP-7702는 지정한 프로그램을 지갑에서 실행하도록 허용합니다. 주인이 서명한 신청서를 다른 사람이 대신 접수하듯 위임 서명도 다른 사람이 네트워크에 제출할 수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편의 기능이 될 수도, 자산 탈취의 통로가 될 수도 있는 셈입니다.

4분도 안 걸린 탈취, 4시간 가까이 이어진 위임

사진설명

코인데스크와 프로토스(Protos)의 온체인 분석에 따르면 공격자는 10월 29일 오후 8시 20분 59초(이하 UTC 기준), 거래 하나에 위임 서명 50개를 담아 제출했습니다. 모두 ‘Binance 14’로 표시되는 바이낸스 핫월렛의 키로 생성된 서명이었고, 자금을 쓸어 담는 ‘스위퍼(sweeper)’ 컨트랙트를 가리켰습니다. 코인데스크는 출금이 계속 이뤄져 거래 순번인 ‘논스’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 대비해, 공격자가 서로 다른 논스를 넣은 서명을 준비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3분여 뒤인 오후 8시 24분, 공격자는 스위퍼를 실행했습니다. 거래 한 번으로 16만7464ETH와 약 16억달러어치 USDT를 포함한 토큰 63종이 빠져나갔습니다. 당시 가치로 약 25억달러입니다. TRM랩스(TRM Labs)는 공격자가 Binance 14의 권한을 이용해 별도 지갑에도 명령을 내려 USDC 8억2300만달러어치를 추가로 빼냈다고 분석했습니다.

위임은 바이낸스가 이튿날인 30일 오전 0시 10분에 해제할 때까지 약 3시간 50분 동안 유지됐습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그사이에도 바이낸스 시스템은 고객 입금액을 이 지갑으로 계속 보냈고, 공격자는 두 차례에 걸쳐 추가 입금액까지 빼냈습니다.

핵심은 서명 권한이 어떻게 뚫렸느냐

EIP-7702가 이번 공격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보안업체 블록에이드(Blockaid)의 이도 벤나탄(Ido Ben-Natan)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는 이 기능이 자금을 한꺼번에 쓸어 담는 수단이 됐으며, 검증 절차를 우회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EIP-7702가 없었어도 탈취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지갑 개발사 앰비르(Ambire)의 이보 게오르기에프(Ivo Georgiev)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는 공격자가 이미 거래에 서명할 수 있었던 만큼 EIP-7702가 만든 차이는 크지 않다고 봤습니다. 대신 시스템 통제권을 되찾더라도 악성 위임을 해제하지 않으면 위험이 남는다고 경고했습니다.

바이낸스는 데브옵스(DevOps)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침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리처드 텅(Richard Teng) 공동 최고경영자는 추가 침해 지점도 발견됐지만 개인 키가 유출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격자가 어떻게 바이낸스의 키를 이용한 서명을 얻었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피해가 여러 블록체인에 걸쳐 발생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비트코인 1만8270개를 비롯해 XRP·솔라나·트론 등의 자산은 EIP-7702가 없는 체인에서 일반 송금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앞서 살펴본 EIP-7702 관련 탈취액은 약 33억달러로, 전체 피해액의 절반을 조금 넘습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이 기능은 자금을 한꺼번에 빼내고 이후 입금액까지 계속 탈취하는 데 활용된 수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테더(Tether)와 서클(Circle)은 탈취된 자사 스테이블코인의 동결에 나섰습니다. 바이낸스는 파트너들과 함께 약 30억달러어치를 동결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ETH와 비트코인에는 발행사가 개입해 자산을 동결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다만 동결은 자산의 이동을 막는 조치로, 회수가 완료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이낸스는 손실을 전액 부담하겠다며 63억4000만달러를 마련했고, 11월 1일에는 피해 자산의 약 95%를 자체 자금으로 보충했다고 밝혔습니다.

콜드월렛 80% 규제만으로 충분할까

금융위원회는 11월 2일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주요 거래소와 긴급회의를 열었습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감독규정은 거래소가 이용자 가상자산의 경제적 가치 중 80%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합니다. 금융위는 이 비중을 더 높이고 준비금을 추가로 적립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핫월렛 출금의 승인·서명 절차와 관리자 권한 관리도 중점 점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1월 27일 업비트의 솔라나 계열 지갑에서 445억원 규모의 자산이 유출된 바 있습니다.

콜드월렛 비중을 높이면 인터넷에 노출되는 자산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보관 비율과 함께 살펴야 할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줬습니다. 서명 하나로 악성 코드 실행이 허용됐고, 위임이 해제되기 전까지 새로 들어온 자금도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서명 시스템이 어떤 요청을 허용하는지, 악성 위임을 즉시 탐지하고 해제할 수 있는지, 침해된 지갑으로 추가 자금이 들어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지까지 점검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바이낸스의 전체 사고 보고서입니다. 공개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명 권한 관리와 사고 대응의 허점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밝힐지가 관건입니다. 금융위는 11월 5일 금감원·금융보안원·금융권 협회들과 해킹 대응 회의를 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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