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강국’ 덴마크서도 학생 4만명 수업 거부···“전쟁 말고 교육에 투자하라”
4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21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교육 예산 삭감 반대 시위에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덴마크에서도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에 반발한 학생들이 대규모 수업 거부와 거리 시위에 나섰다. 유럽에서 교육·복지 예산을 줄이고 국방비를 늘리는 정부 정책에 대한 청년층의 반발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AFP통신과 덴마크 일간 코펜하겐포스트에 따르면 덴마크 고교·대학 학생단체 12곳은 4일(현지시간)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의 학생수당 삭감 방침을 규탄했다. 학생들은 ‘깨진 약속’, ‘학생수당(SU)을 지켜라’, ‘청년들을 속이지 마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청 광장에서 의회까지 행진했다.
현지 언론은 이날 집회 참가자가 3만명을 넘어 전례 없이 큰 규모였다고 전했다. 주최 측은 전국 57개 학교에서 약 4만명이 수업 거부에 동참했다고 집계했다.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는 정부의 학생수당 개편안이다. 덴마크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서 연간 소득이 71만77크로네(약 1억4300만원) 이상인 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에게 학생수당 지급을 중단하고, 그 외 학생도 부모 소득에 따라 지원금을 줄이기로 했다. 현재 학생수당은 부모와 함께 사는 학생에게 월 1154크로네(약 23만3000원), 독립해 사는 학생에게 월 7426크로네(약 149만7000원) 지급된다.
4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21개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교육 예산 삭감 반대 시위에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970년 도입된 학생수당은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학생의 독립적인 학업을 지원하는 덴마크식 평등주의 교육의 상징으로 꼽혀왔다. 덴마크 교육부는 이번 개편으로 약 1만4000명이 수당을 받지 못하고, 8000명은 지원금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고교생단체 대표 오스카 톤스베르그 호프만은 18세 이상 학생에게 지급되는 학생수당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교육제도”라고 평가하면서 “지원 축소를 막기 위해 정부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키에란 힌드쇼(23)는 “진보 정부가 들어섰는데 기업 세금을 깎고 전쟁에 돈을 쓰면서 복지예산을 줄여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을 키우고 있다”며 정부가 시위 이후 정책을 재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발은 교육예산 삭감 자체를 넘어 국방비 증액을 우선하는 정부의 재정 운용을 향하고 있다. 덴마크는 프랑스보다 재정 여력이 큰 편이지만, 2030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교육·복지 예산을 조정하고 있다. 페테르 훔멜고르 톰센 재무장관은 불안정한 안보 환경을 거론하며 “우선순위를 엄격히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4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학생들이 정부의 학생 보조금 삭감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한 시위는 유럽 각국으로 번지고 있다. 국방비 증액과 교육·복지예산 삭감뿐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 상승 등 청년층의 삶을 둘러싼 문제 전반에 대한 항의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프랑스·영국·벨기에·스페인·이탈리아·포르투갈 등 6개국 인권·노동단체 활동가들은 오는 20일 유럽 전역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열자고 촉구했다. 군비 증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연대체 ‘유럽 재무장 중단’도 같은 날 18개국에서 ‘전쟁이 아닌 복지’를 구호로 학생 수업 거부를 포함한 청년 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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